약 2주가 넘는 기간 동안 수빈은 자신이 가진 힘을 연구하고 개발하는데 전념했다. 혹시나 능력을 쓰다가 다른 사람에게 들키는 일이 없게끔 그는 밤에만 연습을 했다. 마치 꾸준한 운동으로 체력이 향상되듯, 연습을 계속할수록 수빈이 가진 힘은 점점 커졌다. 이제 수빈은 서울에서 대전까지의 거리라면 두 번 정도 왕복이 가능할 정도로 힘을 쌓았다.
특히 수빈이 중점을 두고 노력한 것은 다른 사람과 함께 공간이동을 할 방법이었다. 처음엔 그 방법을 몰라 고민하던 그는 자신이 소지한 물건은 고스란히 함께 이동한다는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첫 시도는 노트북과 함께 이동하는 것이었다. 그는 정신을 집중해서 노트북이 자신의 몸과 일부라고 생각하며 공간이동을 시도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수빈은 당장 선우와 함께 실험을 해보고 싶었지만, 선우는 냉장고를 옮기기 전까진 함께 하지 않을 것이란 입장을 고수했다. 노트북과의 첫 시도가 성공한 이후, 3일 만에 수빈은 냉장고를 옮길 수 있었다.

이후의 일은 일사천리였다. 바로 그 다음날 수빈은 겁에 질린 선우와 함께 공간이동을 성공했다. 선우는 눈을 감았다 뜨니 자신이 아파트 놀이터에 있는 것을 보고 무척이나 신기해했다. 비록 수빈의 힘이 달려서 맨발로 걸어 수빈의 집으로 돌아와야 했지만.
그 날 이후 수빈은 선우의 전용 기사가 되었다. 매일 밤 연습으로 지친 수빈은 새벽이 되어서야 잠이 들었지만, 아침마다 선우가 찾아와 학교에 늦었다며 능력으로 데려다 달라고 성화를 부리는 탓에 잠에서 깨기 일수였다. 처음엔 수빈의 집에는 찾아올 정도의 정성이라도 보였지만, 최근에는 자신의 집으로 와서 학교까지 데려다 달라고 생떼를 부리는 일도 있었다. 진상도 이런 진상이 없었다.
이처럼 그의 능력에는 큰 발전이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누나를 찾는 일은 진척이 없었다. 하나가 불철주야 노력을 하고 있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그런 아쉬움과 그리움을 뒤로한 채, 수빈은 오늘은 물건을 공간이동 시키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수십 번을 시도해도 모래 한 줌 정도를 옮기는 것이 고작이었다.

띵동

4월의 늦은 오후. 오래간 만에 초인종이 울렸다. 수빈은 자잘한 힘의 사용으로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문을 열었다. 하나와 수빈, 소은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을 보자마자 수빈은 하나가 했던 부탁을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오랜만이네?”

하나가 먼저 반갑게 인사했다.

“아, 혹시 내일이……”

“맞아. 예견된 날짜는 내일. 4월 7일이야. 내일이 되면 우리는 우리의 적이 누군지 알 수 있을 거야.”

“장소는 찾았어?”

“그럼. 내가 누군데. ‘당신을 데리러 왔어요.’ 말 한 마디로 사람을 찾는 수 있는 건 세상에 나밖에 없을 걸?”

정순정이 꾼 꿈은 몹시 짧고 정보가 부족했다. 그녀가 알려준 것은 몇 없었다. 4월 7일. 집에서 나가려는 여인. 녹색 페인트 칠의 낡은 아파트. 철제 현관문에 붙은 이라는 치킨집 광고지. 그리고 ‘당신을 데리러 왔어요.’라고 말하는 테러리스트.

“사실 지난 2주간 엄청 헛물켜다가 기적적으로 어제 찾았어. 무식하게 서울의 아파트들을 다 조사하다가 지칠 무렵 ‘혹시 테러리스트들도 초능력자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이상한 일이 일어난 곳을 중점적으로 훑어봤지.”

하나는 뽐내듯이 말했다.

“장소는 서울 성북구에 있는 아파트야. 주변에 이라는 치킨집도 있고, 아파트 내벽이 녹색으로 칠해져 있어. 무엇보다 내가 확신을 한 것은 최근 이곳에서 수 많은 여자 연예인을 봤다는 목격담이 들려오는데, 실제로 목격되었다는 연예인들은 이곳에 발도 들이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야. 그렇다면 왜 수많은 목격자들이 나타났을까? 그들이 단체로 헛것이라도 본 걸까?”

선우가 퀴즈의 답을 맞혔다.

“초능력자구나. 무슨 능력이지? 혹시 변신 능력이야?”

“맞아. 이름은 문시연. 스물 다섯살. 이 아파트의 103동 702호에 살고 있어. 대학에서 연극영화과를 나와서 몇 년째 연극 단역으로 일하고 있지. 연기력은 좋은데 외모 때문에 늘 주연은 못 맡는 모양이야.”

“와. 그 사람이랑 사귄 다음에 전지현으로 변신해달라고 하면……”

“쓸데없는 소리 하지마.”

하나의 손이 선우의 등짝을 후려갈겼다. 수빈은 하나에게 물었다.

“어떻게 그 사람이 초능력자인 걸 알았어?”

“문시연이라는 여자는 변신 능력을 얻고 나서 좀 생각 없이 능력을 썼어. 나중엔 최대한 조심스럽게 움직인 것 같지만, 처음 돌아다니는 모습은 CCTV에 다 남았지. 조심한다고 애쓴 것도 이리저리 다 찍혔고. 내 생각에 아마 테러리스트들은 이 여자를 포섭하러 나타날 것이 확실해.”

“난 뭘 하면 되지?”

“넌 소은이랑 움직이게 될 건데,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닐 거야. 그냥 아파트 계단에 몰래 숨어서 그들이 나타나면 그냥 사진 한번만 찍어서 돌아오면 돼. 혹시 뭔가 중요한 이야기를 하거나 정보를 준다면 숨어서 듣고 오면 더 좋고. 제일 좋은 것은 상대의 힘이 무엇인지 알아오는 건데, 그걸 알기 위해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어.”

‘윽.’

수빈은 속으로 침음을 삼켰다. 소은과 단 둘만 간다니. 벌써부터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그는 소은의 눈치를 살폈지만 그녀는 오늘도 휴대폰 삼매경이었다.

“나는?”

선우가 물었다. 하나는 다소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선우에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넌 여기 있어. 솔직히 말해 적이 초능력자라면 아무런 힘도 없는 너는 큰 도움이 안 될거라 생각해. 게다가 넌 너무 무거워. 수빈이의 능력이 무게에 따라 체력 소모가 달라지는 만큼 이번 일은 소은이랑 수빈이 둘만 가는 게 제일 적합해.”

“알았어.”

선우는 풀이 죽었다. 하나는 그 모습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미안해. 어쩔 수 없어.”

“아냐. 이해해. 그냥 좀 부러울 뿐이야. 뭔가 첩보 영화 같고…… 잘 다녀와라. 그냥 사진만 찍으면 된다니까 괜히 쓸데없이 일 벌이다가 다치지마.”

“걱정 마.”

“그럼 오늘 하루는 푹 쉬어. 내일 최고의 컨디션으로 일할 수 있도록. 알았지? 아, 그리고 수연씨는 매일 최선을 다해 찾고 있어. 거짓말 아냐. 비록 성과는 없지만…… 조만간 좋은 소식 들려줄 수 있으면 좋겠다.”

“응. 늘 고마워. 누나.”

"자, 내일 일에 대해서 몇가지 더 이야기 할게 있는데……"

수빈은 갑자기 긴장감을 느꼈다. 내일의 일이지만 벌써 손에 땀이 차는 것 같았다. 긴장감을 해소하기 위해 심호흡을 하고 TV에서 봤던 단전 호흡도 해보던 수빈은 이내 거실 바닥에 벌렁 드러누웠다. 그리곤 누나의 귀환을 위해 믿지도 않는 신들에게 소원을 빌었다.

‘누나는 잘 있겠지? 하느님 부처님 우리 누나 좀 멀쩡히 돌아오게 해주세요. 네?’

4월의 늦은 오후. 저녁 햇빛이 눈이 부신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