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당장 뛰어내려간다.




정신을 차려보니 저는 어느새 계단을 뛰어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불타는 정의감이 저의 전두엽을 지배한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애타는 마음으로 반지하방 현관문을 여는 순간,

퍼억!!

어떤 검은 그림자가 단단한 둔기로 저의 머리를 강타했습니다.
저는 균형을 잃고 그대로 쓰러졌습니다. 그나마 의식은 남아 있었는데, 상대는 저의 눈을 가리고 두 손을 묶더니, 제 입에 어떤 액체를 부어넣기 시작했습니다.

그 액체에서는 보리차 냄새가 났습니다.

보리차..


그 순간, 아무런 의미 없이 지나쳤던 사소한 일들이 퍼즐처럼 맞춰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이 집에 왔을 때 그 학생은 저에게 보리차를 대접했습니다. 그리고 카페에서 공부하는 동안 몇 번이나 투정을 부렸죠.

자기 집에 가서 과외를 받고 싶다고요.

눈이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었습니다. 절 공격한 건 그 학생이었습니다. 방금 전 전화는 함정이었던 겁니다.

몇 모금 보리차를 억지로 삼키자, 이내 몸의 감각이 상실되는 게 느껴졌습니다.
의식은 급속도로 희미해졌고, 저는 그렇게 끝이 보이지 않는 검은 심연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
..
.

정신을 차렸을 때 저는 병원 응급실에 있었습니다.
제 곁에는 어떤 순경이 제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는데 자초지정을 물었더니 믿기 힘든 끔찍한 말을 해주더군요.

그 학생은 처음부터 저를 표적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같은 빌라에 사는 저에게 자연스럽게 접근하기 위해 과외를 신청했던 것이죠. 하지만 일이 계획대로 풀리지 않자, 구해달라는 거짓 애원으로 절 유인했던 겁니다.

하지만 천만다행으로 절대 절명의 순간에 저를 구해준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다름 아닌, 그 학생의 아버지였습니다

학생의 아버지는 몇 년 전부터 아들의 사이코패스적인 성향을 눈치 채고, 애타는 마음에 어떻게든 애를 고쳐보려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화도 내고 소리도 질렀던 것이죠.
그래서 어느 정도 그 기질을 고쳤다고 생각했던 찰라,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아버지가 일터에서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왔고, 집 안에 묶인 채 기절해 있는 저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학생의 아버지는 분노했고, 아들을 심하게 폭행했다고 합니다.
죽을 때까지 말이죠.

저는 그날 이후 부모님댁으로 돌아와 방에서 칩거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방문을 모두 걸어잠그고 있으면 심리적 안정감을 느낄 수 있지만, 꿈속에서는 항상 그 학생의 집으로 끌려가곤 합니다.

도대체 그 학생은 화장실에서 뭘 씻어냈길래 그런 끔찍한 냄새가 났던 걸까요..

저는 오늘도 그날 경찰을 기다리지 않고 혼자 학생의 방으로 달려갔던 저의 선택을 후회하며 눈물로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