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찰을 기다린다.





그래서 저는 당장 내려가서 아이를 구해야 한다는 정의감을 최선을 다해 억누르며, 닥치고 앉아서 경찰이 도착하길 기다렸습니다.

저 같이 전투력 떨어지는 하찮은 존재가 달려가봤자 일만 더 커질 게 뻔했으니까요.

한 20분 후 순경 두 명이 도착했고, 저는 그 둘을 탱커로 앞세워 반지하 방으로 내려갔습니다.
지하방은 현관문이 반쯤 열려 있었는데, 그곳에는 일전에 감지했던 그 이상한 냄새와 소름 끼칠 듯한 무거운 적막이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탱커 중 하나가 문을 열었고, 차마 믿기 힘든 상황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어떤 중년의 남성이 머리에 피를 흘린 채 바닥에 쓰러져 죽어 있었습니다.
학생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곧바로 경찰들이 현장에 추가되었고, 빌라 주변은 어느새 구경꾼이 몰려들어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경찰의 대화를 엿들어봤더니, 쓰러져 있던 중년의 남성은 아이의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아마도 반항하는 아이게 떠밀려 쓰러지다가 영 좋지 않은 곳을 부딪혀 즉사한 것 같다고 하더군요.

학생은 겁에 질려 도주를 한 모양인데, 다행히 근처에서 경찰에게 바로 잡혔다고 했습니다.

저는 곧장 경찰서로 달려가 최초 신고자임을 밝히고 학생에게 도움이 될 법한 정황을 증언하였습니다. 다행히 저 말고도 평소 학생 아버지의 기이한 행동을 증언해 준 이웃이 여러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학생은 정당방위 판결을 받고 풀려났습니다. 아직 만 16세라 형사 처벌 대상이 아니었고, 정황상 죄를 묻기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뒤 학생은 근처 친척집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괜히 궁금한 마음에 전화를 해봤더니 이 새끼가 겁대가리도 없이 “선생님 아직 저와의 과외가 남아 있지 않습니까?” 라고 되묻더군요.

짜식...
뭘 해도 될 놈이구나..

저는 차마 남은 과외비를 돌려줄 수 없어 그냥 가서 더하기 빼기나 알려주고 퉁치자는 마음에 아이의 친척집을 찾았습니다.
다행히도 그 집은 깨끗하더라구요. 이상한 냄새도 나지 않았고요.

학생은 이번에도 혼자 있었는데, 저를 보자마자 또 보리차를 대접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근데 이상하게도 그 보리차를 보는 순간, 제 마음 속에 평생 존재하지 않을 것 같았던 ‘학생에 대한 책임감’ 이라는 게 슬쩍 고동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선생님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자 그럼, 이제 웃대질은 그만하고 이 학생과의 수업에 집중해야겠네요.
우선 보리차부터 마시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