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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모닝! 굿 모닝!'

모닝콜이 온 집안에 울려 퍼진다. 지금 시각은 오전 5시를 조금 넘긴 5시 7분.
이 빌어먹을 아침이 뭐가 그렇게나 좋은지, 나의 핸드폰은 '굿 모닝'을 연신 외쳐댄다.

"굿 모닝은 개뿔."

의미 없는 한 마디를 던지며 알람을 끈다. 끄고 나서도 한동안 이불 속에 누워있는다.
이 놈의 이불은 너무 편안한게 문제다. 벗어날 수가 없어.

"으으으아아!"

기지개로 간신히 이불을 벗어난 나는 몽롱한 상태에서 엉망진창인 머릿속을 헤집는다. 다음 할 일이 뭐지?
지금부터 양치하고 씻고 출근할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하다. 매일 아침 경험하는 거지만
항상 이런 기분이다. 씻은 후 주름 투성이인 티셔츠와 무릎이 다 헤져 찢어지기 일보 직전인
청바지를 입고 집을 나선다.

지금은 5시 30분. 공장은 6시 반까지 도착하면 되니 여유가 있는 시간이다. 지하철 역에 도착한
나는 서둘러 플랫폼으로 내려간다.

'지금, ○○행, ○○행 열차가...'

지하철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헐레벌떡 뛰어가 겨우 문 옆 구석자리를 골라 앉는다.
첫차인데도 생각보다 사람이 많다. 다들 나처럼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인 걸까.
의자 옆 봉에 기대 졸면서 생각한다.

나는 현재 종이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내가 맡은 일은 종이를 주문받은 크기대로 자르는 일.
공장 자체도 소규모라 사람이 적지만, 내가 맡은 분야는 특히나 적다. 일의 특성상 그다지 많은
인원이 필요하지도 않을 뿐 더러, 다루는 장비도 위험성이 높아 다들 잘 하려 들지 않는다.
물론 나라고 이런 위험한 일이 하고 싶어서 하는 건 아니다. 젠장. 다 그 새끼 때문이다.
그 새끼? 그 새끼가 누구였지. 아, 아버지다. 내 안에서 아버지라는 이름은 이미 1년 반 전에 사라지고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1년 반 전, 아버지는 우리 집을 통채로 말아먹었다.
1년 반 전의 반년 전, 즉 지금으로부터 2년 전, 내가 고3이 되던 해 아버지는 회사에서 잘렸다.
해고 사유는 '공금 횡령'. 아버지는 잘리기 얼마 전부터 불법 도박을 시작했다는 것 같다.
계기는 아직도 알수 없지만, 불법 도박에 빠져버린 아버지는 자기 통장의 전 재산을 다 퍼붓고도 모자라
회사의 돈까지 빼다 쓴 것이다.

회사에서 잘린 아버지는 그저 망연자실한 채 집 구석에 쳐박혀있었다. 자연히 전업주부였던 어머니가
일을 하게 됬다. 하지만 사회경험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 전업주부가 제대로 된 벌이가 되겠는가? 어머니가
벌어온 돈으로는 가정을 꾸려 나가기에 턱없이 부족했고 나 역시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했다. 일주일 내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부를 하는건 쉽지 않았지만, 나의 변호사라는 꿈을 생각하며 이를 악물고 버텨왔다.

하지만 반년 뒤 기어코 사건이 터진 것이다. 집에 갑자기 웬 폭력배들이 들이 닥쳐선 되는대로
깨 부쉈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믿을 수가 없었다. 원인은 말할 것도 없이
아버지였다. 여전히 도박을 끊을 수 없었던 아버지가 사채를 빌려다 도박을 했던 것이다.

그 날, 우리집이 다 부서지고 난 후에도, 아버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 날 이후로 난 아버지를
본 적이 없다. 우리를 버리고는 무책임하게 떠나버렸다. 그 날 맛본 기분은 표현할 수가 없다.
젠장. 찢어죽여도 시원찮을 자식.

사채업자는 아버지가 없어진 것을 알고는 우리가 불쌍해지기라도 했는지, 원금만 갚는 것으로 흥정
해 주었다. 뭐, 원금만 이라곤 해도 엄청난 액수다. 앞으로 내 인생을 십 몇년은 허비해야 겨우 갚을
만 한 액수다. 그리 된 연고로 지금은 공장에 들어가 일하고있다.

젠장. 젠장. 젠장. 그 새끼만 없었더라면. 그 개같은 새끼만 없었더라면 내 인생은 이보다 몇 백 배는
더 나았을 테지. 유명한 변호사가 되어 권세를 누리고 있을 터이다. 그 개같은 새끼 때문에 내 인생은
나락으로 추락했다. 단 한번의 선택권도 주어지지 않았다.

"개 같은 새끼!"

화를 참을 수 없어 소리를 질렀다. 나를 보는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그 시선이 우스워,

"큭큭큭크크..."

하고. 미친놈처럼 웃는다. 내 옆엣놈은 날 정신병자로 알았는지 엉덩이를 슬그머니 들고는 자리를
옮겨버린다. 이렇게 미친놈처럼 웃고 나니, 조금은 나아진 기분이다. 하지만, 그래도 견딜수 없는 건
매한가지다. 그 새끼를 죽이는 상상을 한 두 번을 한 게 아니다. 갈가리 찢어도, 손가락 하나하나를
잘라버려도 시원찮을 새끼. 혹시나 길을 걷다 그 새끼를 만나면 그 자리에서 찔러 죽여버리려고
가방엔 늘 날카롭게 갈린 과도 한자루를 넣고 다닌다. 아아, 나도 점점 미쳐가나 보다.

그러는 사이 공장이 있는 역에 열차가 도착했다. 짐칸에서 가방을 내려 공장으로 향한다.
공장 문에 들어서자 저 멀리서,

"어이, 박 사원!"

하고 팀장님이 인사한다. 정말 착하고 푸근하신 분이다. 나를 마치 친아들처럼 아껴주신다.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분이다.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을 정도다.

"박 사원이라뇨, 그냥 정수라고 부르세요 팀장님."
"그래, 정수야. 아침은 먹고왔니?"
"아.."
"안에 도시락 있으니까 먹고해라."

아침을 안먹고 온 날이면 늘 이렇게 챙겨주시곤 한다. 들어온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나에게 이런 친절을
베푸는 건 여기서 팀장님 뿐이다.

도시락을 5분만에 뚝딱 해치우곤 내가 배정받은 구역으로 간다. 새로운 기계를 들일 돈이 없어 벨트 옆에
절단기를 따로 설치했다. 이걸 본 첫날은 예리한 칼날에 베일까 부들부들 떨면서 일을 했더랬지.

본격적인 일은 7시 부터다. 아직 충분한 시간이 남았기에 휴게실 소파에서 쪽잠을 청한다.





"정수야 일어나라! 일하자!"

팀장님이 부르는 소리에 잠에서 깬다. 작업복으로 갈아입고는 내가 배정받은 구역으로 갔다.

'위이이이이이....'

컨베이어 벨트가 작동하는 소리. 이 소리를 하루 웬 종일 듣고있노라면 청각을 스스로 포기하고 싶어진다.
젠장할, 이 놈의 종이는 잘 잘리지도 않는다. 툭 하면 북 하고 찢어지던 종이가 이렇게나 단단하다는
것을 안 것은 여기 들어오고 난 후 부터였다. 두, 세번은 칼질을 해야 겨우 잘린다. 요즘 들어 날이
더 무뎌진 느낌이야.

이런 생각을 하던 찰나, 컨베이어 벨트가 갑자기 멈췄다.

"끄으으아아아악!"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피가 솟구친다. 으. 젠장. 뭐가 어떻게 되가는거지.
눈 앞이 아득해진다. 고통을 참을 수가 없다.

"박 사원!!"

그 소리를 마지막으로 기억이 끊겼다.





아, 하얀 천장이다. 여긴 병원인건가. 내가 왜 병원에 있는거지. 여기가 병원이긴 한건가. 머릿속이 혼란하다.
젠장. 이것도 다 그 새끼 때문이다. 하고 생각하면서 일어서려다, 손가락의 감촉이 없다는걸 깨달았다.
아무리 휘저어 봐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 정말인건가. 팔을 흔들어봐도. 손가락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저 손바닥의 중간즈음부터 깨끗하게 잘려
남은 손가락은 엄지 손가락 뿐, 붕대에 감긴 반 토막난 덩어리만이 내 팔 끝에 위치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때, 문을 열고 팀장님이 들어왔다.

"정수야.. 정신은 드나?"
"예.. 팀장님.."

"지금 무슨 상황인지는 알겠나?"
"아뇨.. 잘은.."

"니가 작업하고 있었던건 기억나?"
"예. 그건 기억납니다."

"니가 작업하던 도중에, 갑자기 컨베이어 벨트가 멈춰버렸다. 쥐들이 전선을 갉아먹어 전선이 매우
얇아진 상태에서 기계를 돌린게 화근이라더라. 전압때문에 전선이 끊어졌어. 잘려나간 네 손은
여기까지 오는 데 시간이 너무 지체된 바람에 봉합수술이 어렵게 됬다. 전부 내탓이야. 미안하다."

이 말을 마지막으로 팀장님은 방을 나갔다.

팀장님의 말을 듣고 다시 한 번 머릿속을 정리해 본다.
그러니깐, 내가 작업할때 전선이 끊어져서 컨베이어 벨트가 멈춰서 벨트 위에 있던 내 두 손이 잘려
나갔고, 그 고통으로 난 기절을 했던 모양이다.

아, 정말로 이제 손가락 8개 없이 살아야하는 건가. 이 놈의 세상은 인정머리가 없다. 설상가상, 엎친 데 덮친 격이
이런 데 쓰는 말인가. 어머니의 얼굴이 떠오른다. 나는 그렇다쳐도, 어머니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거지.
평생 나만 보고 살아오신 분이다. 그 자식이 우릴 버리고 나간 뒤부터, 어머니는 '미안하다'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신다. 그러면서 그 병약한 몸으로 일하러 나가시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 놈의 아버지란 작자를
패 죽여 명동 사거리 한복판에 효수형을 해버리고 싶다. 이제 내가 일을 하지 못하면, 어머니는 어떻게 되는거지.
눈 앞이 막막하다. 왜 세상은 나에게 미래를 주지 않는 걸까.

가슴이 꽉 막힌 기분이 싫어 방 밖으로 나왔다. 문 옆에 문패가 있다.

'박 정 수 환자'

꿈은 아닌가 보다.

기분 전환은 못해도 냉정해져 보려는 생각에 옥상으로 올라오지만, 가슴속에서 자꾸만 응어리가 올라온다.
젠장. 이것도 다 우리집을 버리고 도망간 그 새끼 때문이야.

밑을 내려다 보니 더 이상 살고싶지가 않다. 난간을 건너가 보니 그 생각은 두배로, 세배로 되어서
내 가슴을 마구 때린다.

어, 이게 뭐지. 발 옆에 어느샌가 빨간 봉투가 놓여 있다. 누군가가 떨어뜨리고 간 물건인가.

양 손 합쳐 두개뿐인 손가락으로 봉투를 주웠다.

봉투엔 『시간을 되돌리고 싶습니까?』 라고 써져있다.

'시간을 되돌린다'라. 지금의 나에겐 참으로 매력적인 말이 아닐 수 없다.
되돌아간다면 어디로? 2년전의 그때로 돌아가서. 그 새끼를 찔러 죽이고싶다.

나도 모르게 봉투를 뜯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봉투 안의 종이를 펼치자, 종이엔 이런 말이 써져 있었다.

『시간을 되돌릴 기회를 드립니다』

『실패시 개봉자는 어떤세계에서든 소멸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