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한 점 없이 파란색 크레용으로 갈겨놓은것같이 높고 새파란 하늘, 등굣길 한가득 피어있는 달콤한 벛꽃이 알리는 싱그러운 봄내음이 콧끝을 간질이며 매사에 의욕에 불타게 한다.


'후~음-'


나는 창가에 기대어 서 아침의 맑은 기운을 마음껏 들이마셨다.


아직 추위가 다 가시질 않았지만 그 어설픈 추위 속에서 느껴지는 희미한 따스함이 내 심장을 쿵쾅쿵쾅뛰게 한다.


"선배,오늘 같이 맑은 날에는..무언가 떠오르지 않으세요?"


아-아- 오늘같은 날에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럴듯한 시적심상이 마구마구 떠오른다.



"에?..갑자기 무슨..?"


내 물음에 아까부터 나를 계속 노려보던 이 동아리실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으로 추정되는 아리따운 미소녀가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아- 역시..선배는 부장이시면서 너무 사회의 속세에 물들어 순수함을 잃으셨네요..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저는..머릿속에 그려져요.. 순수한 여성들의 정조관념을 무참히 깨뜨리는 망가말이에요.. 이를테면 '성 마가렛타 학원'이라든가..'왕녀자매 해체음미'라던지..끼앗! 상상만으로도 온 몸에 전율이 흐르는 것 같ㅇ.."


"자,자,잠까아안!!! 너 말야, 이 '문학 부'에 가입하러 온 게 아니지? 뭔가 다른 속셈이 있어 보이는데.."


후후..나를 그렇게 정면으로 마주보며 노려보고 있지만 내 눈에는 보인단 말이지, 얼굴을 살짝 분홍빛으로 물들인 부끄러운 얼굴이.


그나저나 이렇게 보니 상당한 미소녀군. 이 학교에 이름좀 날리는 사람들은 입학날부터 스캔을 끝냈었는데..가공되지 않은 다이아몬드인 격인가..? 안경에 가려져 있긴 하지만 맑고 큰 눈, 뒷머리를 포니테일로 촌스럽게 땋고 있는 전형적인 모범생 스타일 게다가 희다못해 투명한 피부.. 흐음..그러고보니 자주 등장하는 시놉시스군. 머리를 풀고 안경을 벗으면 굉장한 미소녀가 된다. 마구마구 더럽히고 싶은 욕망이 샘솟으려 하는걸..? 낄낄낄..



"하핫..당연한 것 아닙니까..아무런 쾌락도 능욕도 없는 하찮은 문학따위에 흥미를 가지고 직접 찾아오는게 이상한거죠. 뭐, 원하신다면 '여고생'이나 '고교생'같은 야설은 읽어드릴 수 있습니다만..?"


"우우으..!! 하찮다니.. ㄴ..너같은 파렴치한 녀석은 우리 부에서 받지 않아!! 당장 꺼져버려엇!!"
눈앞에서 손까락질을 해가며 소리쳤지만 그런 울음섞인 목소리로는 나에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오히려 악영향만 낳을 뿐.
"쿠쿡..농담입니다. 농담. 사실 견학겸 들린 겁니다."



"어..어쨋드은!! 이 '문학 부'는 'IQ84','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원미동 사람들' 같은 청소년 시기에 올바른 정신체계를 갖도록 도와주는 책들을 연구하고 서로 의견을 나누며 긍정적인 토론을 나누는 아~주아~주 도움이 되는 부니까 알아서 잘 생각하도록 해,"


이 동아리의 부장으로 보이는 상당히 자랑스러운 듯한 표정을 지으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또 이 동아리의 주된 활동인.."



"아, 잠깐만요. 선배, 그러면 이렇게 좋은 부에 왜 선배 혼자이신건가요?"


"에.? 에..에.. 사실..작년에 계시던 선배들이 졸업하면서..아,아니, 그게 아니라. 사,사실 부원이 많ㅇ..아니..거짓말은..어쨋든.."


내 급작스러운 돌발질문에 선배는 상당히 당황했는지 얼굴을 발갛게 물들이고는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지으며 목소리가 점점 작아져갔다.



흐음..좋아,이정도면..내가 찾는 이상의 동아리에 부합하는군..크큭.. 사실 처음부터 부원이 많은 상태에서 시작하는게 좋았지만..이런것도 나름 나쁘지 않으려나..?


둘러보니 동아리실이 그렇게 좁은 것도 아니고..집에있는 컬렉션들을 쌓아놓을 책꽂이도 상당하고..좋아,



"뭐, 결론적으로 이 동아리에 가입하면 읽고싶은 책을 읽으며 그에 대한 이야기나 나누면 된다는거죠..?"


"우음..간단히 말하면 그렇긴 하지만..그..그래도 그..야..야설같은 건 안되엣..!!"



야설은 안읽습니다...쿠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