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릴땐 동네에 하나 이상 만화대여점이 있었음
요즘처럼 뭐 굴방이 있고 소파가 있는 그런 카페가 아니라
목욕탕 의자 같은 쪼그만 의자 몇개 있는
몇시간씩 머물러서 책을 볼만한 그런 편의시설이 없는
그야말로 '대여'점이었음

대충 9살, 10살 그쯤이었던거 같음
호적메이트의 손에 이끌려서 처음 가본 만화대여점은
데뷔한지 얼마 안된 풋내기 밴드인
엠씨더맥스의 신곡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입구로 들어가면 바로 왼쪽에 카운터가 있고
그 앞으로 세 개 정도 책꽂이가 서있었음
그 사이로 걸어다니는데 모르는 책 밖에 없는거임
그러다가 가끔 티비에서 본 기억이 있던 드래곤볼을 발견해서
이거나 봐야지 하고 보게 되었음

당시 내가 간 대여점은 권당으로 계산해서
빌려가면 300원 가게에서 읽으면 100원이었음
무슨 내용인지 제대로 이해도 못하면서
한권.. 한권.. 백원... 백원... 알바 입장에선 참 감질나게
그렇게 며칠동안 한 권씩 읽어나가다가
손오공이 처음 초사이어인이 되는 장면에서
전율을 느꼈음
그 어린 꼬맹이가
죽음을 이해조차 하지 못하는 꼬마애가
어렴풋이 손오공의 분노를 공감하고
그가 분노로 강해지는 모습에 카타르시스를 느꼈던거 같음

아마 마인부우 전에서 더이상 이해가 안돼서 그만 본거 같은데
어쨋든...
본인조차 알지 못하는 감정을 건드렸던거 보면
조산명 선생은 정말 만신 그자체였다는 생각이 든다

RIP RIP to my sweet 조산명...


P.s.
당시 내가 본 드래곤볼은 그 유명한
'날 물로 보지마!!'
'지금 개그콘서트 하는 줄 아시나요..?'
'이게 무슨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야...'
번역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