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병때였나..
오전에 관사 보수작업이 있어서 우리 소대는 천장 기왓장 교체및 페인트칠..정화조청소하고 있었다.

나는 천장에 있었는데 갑자기 준비태세 걸리더니 저 멀리서 상황병이 사색이 되서 달려오는게 보였다.
"큰일났습니다아!!! 전쟁났습니다!!!!!!!!"
"탄약고로 가서 고폭탄, 실탄 수령하고 gop로 출동해야합니다!!"

"잉???!!!"
고참들은 그대로 후다닥 뛰어들어가고 우리는 똥푸던 삽들 5개씩 안고 막사로 뛰어들어갔다.
준비태세의 지침대로 내무반 정리를 하고.. 탄약고 가서 탄 수령하고 거점으로 출동했다...

산길을 따라 꼬불꼬불 올라가며 흔들리는 트럭 뒤에서 실탄 250발씩 받고 탄창에 한발한발 밀어넣으며 정말 죽으러 가는길이 이런거구나... 체감했다..
어머니, 애인 얼굴이 떠오르고... 하고 싶었던일...못한일 생각나서 눈물을 꾹꾹 참고 있는데 키작고 성질더럽던 상병왕고가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무슨노랜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가락이 너무나 구슬프고도 아름다웠다.

그렇게 거점 도착해서 포를 방렬하고 탄약수들은 고폭탄 까서 바로 발사하게 조취하고 나는 바닥에 무전기 내려놓고 무릎을 꿇은채로 한손엔 수화기 한손엔 좌표를 받아적을 팬을 들고 무전대기를 시작했다.

이미 무전에선 쉴세없이 좌표가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거기에 맞춰 우리는 계속 포를 움직였다. 아마 북한군 여럿이 MDL을 넘나들며 무엇인가를 하고 있었나보다. 전면전은 아니라 다행이라 안도했지만 우리 거점으로 적들도 방렬이 되어있을터... 국지전에서 누가 먼저 쏘고 죽나가 중요하니까 죽더라도 우리가 먼저 쏘고 죽자라는 생각으로 최대한 무전에 집중해서 발사명령만 기다렸다.

북한놈들의 도발은 끊임이 없었고 그렇게 7시간을 기다렸다.

날이 저물고도 한참후에 무전에서 "알파소대 날개접어"라는 말이 나왔다.
나는 재차 확인무전을 날렸고 마지막 무전에서

"날개접고 오늘 대단히 수고 많았다"

라는 말을 듣고 그때까지 움직이지 못하고 무릎을 꿇은채로 있어서 인지 다리에 힘이 풀렸다. 소대원들도 기밀하게 철수준비를 하고 이미 칠흙같은 어둠이 깔린 산길을 내려오는 트럭에서 아무도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탄반납을 하고 내팽겨졌었던 작업공구들 정리하고.. 야간 식사 하니 이미 자정을 넘긴 시간이었고, 오늘은 수고했많이했고 야간근무 없다는 중대장의 훈시를 듣고서야 이제 살았구나라는 안도감이 몰려왔다.
그날은 진짜 편하게 잔거같다.....


그 담날부터 그 상황병 별명은 "전쟁났습니다"가 되었고 한참을 놀리면서 웃을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 소대는 군생활의 에피소드를 하나더 쌓을수 있었고 왠지 모르게 자신감들이 더 생겼고 한층 진짜 군인이 된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