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에.. 3편에서 최종민 일병이 고깃덩어리화된 시체를 보고도 토악질을 하지 않았다거나 전투 도중에 졸았다거나 하는 부분의 고증에 관해서는 참전용사분들이 계시는 월남전 사이트를 돌거나 몇몇 주위 어르신들의 말씀을 들어가며 고증한 부분입니다. 2차대전 당시에도 그런 일화는 얼마든지 있었다고 하죠 -_-?

그 부분의 고증에 관해서는 별로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본 소설은 www.powercorea.com에서 글로리 오브 페이스라는 제목으로 연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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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쟤들 어디간대?”

박격포의 공격을 대비해 튼튼하게 만든 막사 속에 들어가 있으니 상당히 시원했다. 막사라기보다는 땅속 벙커에 가까웠지만 여하튼 이 안은 반쯤 당 속에 묻혀 있어 상당히 시원했다. 만들 당시는 땅이 상당히 단단해서 파기는 힘들었지만 만들고 보니 상당히 좋았다. 더군다나 우리가 땅 파기 어려웠던 만큼 적들도 땅굴을 파기 어려웠다. 즉 방어적 입장으로도 아주 좋았다. 여하튼 난 군화를 벗어놓고 무좀으로 가려운 발가락을 긁다가 완전 군장을 하고 밖으로 나가는 애들을 보면서 별 생각 없이 물었다. 그냥 보여서 말했다는 것이 옳았다.

“아? 쟤들? 국경선 부근에 베트콩들이 집결하는 것 같다고 정찰 보내는 거야.”

상식이가 반합에 물을 떠오면서 말했다. 손에는 미군 초코바 2개가 들려 있었는데 아마도 담배를 피지 않는 상식이 지금까지 모아왔던 담배를 부대 내 미군 전차병과 바꿔온 모양이었다. 상식은 나에게 던지듯 초코바를 주고 자신은 봉지를 까서 입에 물었다.

“국경선? 왠 국경선?”
“넌 정말 깜깜 무소식이구나? 여기 정글은 캄보디아랑 가까워 그래서 국경 주변에 베트콩들이 많아. 미군으로써는 캄보디아 까지 쫒아 갈 수 없으니 베트콩들은 이곳에서 전투를 벌이지. 싸우다가 캄보디아로 도망도 가고 말이야.”
“그래? 그렇구나.......”

상식은 이 이후에도 우리가 이곳에 투입된 이유가 이 부근이 베트콩들의 보급선이 있는 곳이라는 말 등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줬다. 난 별로 알아듣지 못하기에 이야기를 넘겼지만 장교들에게는 중요한 이야기인 듯 했다. 초코바를 우물거리다가 왠지 갑자기 안 좋은 기분이 들어 벽에 세워둔 M-1 개런드를 가져다가 손질을 시작했다. 나의 손질에 상식은 ‘이nom이 왜이래?’ 같은 궁금증 섞인 표정을 짓다가 자기도 총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총은 시간 날 때마다 손질하는 게 좋았다. 잘 고장은 나지 않는 단순한 구조의 개런드였지만 언제나 전투와 가까이 붙어있는 우리들로써는 최대한 총을 잘 간수하려 노력했다. 전투 도중에 고장이나 버리면 그것은 곳 목숨이 고장 나는 것과 같기에 총에는 특히 관심을 많이 가졌다.

“그나저나 저 녀석들 잘 돌아와야 할 텐데 말야.”

상식이 말했다.

“왜?”
“11중대 중에 내 친구가 있거든.”
“저 녀석들 11중대였구나?”

상식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린 후 입속에서 완전히 흐물흐물해 진 초코바를 한입에 삼켜버렸다. 아직도 입에 남은 단맛에 사로잡혀 입 사이에 낀 나머지 초코바 잔해들을 혀로 깨끗이 쓸어 먹은 후 손질하던 개런드를 집어 들었다. 하늘은 여전히 맑았다.
그날 밤 비가 내렸다. 밤에 오는 비에 난 왠지 거부감을 느꼈다. 보통 때 같았으면 뜨거운 밤의 열기를 식혀주는 비에 고마움을 넘어선 감동을 느꼈을 테지만 지금은 왠지 불안했다. 아까의 파란 하늘과 달리 비는 미친 듯이 쏟아져 내렸고 마치 닥쳐올 불행의 전초전을 바라보는 듯 마음 한 구석이 답답했다.
씁쓸한 마음을 가누지 못해 계속 떨어지는 비를 쳐다보다가 참호에 물이 고였다는 소리에 달려 나가 참호의 물을 퍼내는 한편 무너지려는 흙도 다잡았다. 나무로 벽을 만들기는 했지만 잘 막아놓지 않은 곳은 무너지기도 했음으로 흙을 퍼 내야했다. 언제 전투가 터질지 모르는 전장에서 짜증을 부릴 틈은 없었다.

“어이 일어나!”

밤새 물을 퍼내고 막사와 참호를 수리하느라 피곤했던 나를 누군가 흔들어 깨웠다. 요즘 며칠 동안 비가 내려 제대로 잠을 청한 적이 그러 많지 않았기에 난 재빨리 일어나지 못하고 힘겹게 머리를 흔들며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이 날 밤에는 비가 내리지 않아 혹시나 무너질 참호를 걱정할 필요가 없어 교대를 하는 초저녁부터 죽은 듯이 쓰러져 있었는데 누군가 깨우자 상당히 짜증이 났다. 날 깨운 사람은 박 병장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인마! 넌 조명지뢰 터지는 소리도 못 들었어? 완전군장하고 튀어나와!”

그의 말에 화들짝 놀란 난 눈곱도 때지 못하고 총을 챙겨 내게 배정된 참호로 뛰어갔다. 참호에는 저번처럼 김상병이 카빈 소총을 밖에 내밀고 서서 긴장된 눈으로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야이 se끼야! 너 지금 뭐하다 온 거야!”

김상병의 눈은 황소같이 커져 있었고 입술 끝은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목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충분히 무서웠다. 난 바싹 굳어 그 자리에서 크게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개념 없는 se끼! 지랄 말고 경계나 서!”

저번과 달리 김상병은 아주 날카로웠다. 이를 하얗게 드러내고 전방을 주시하는 그에게 난 몇 마디 하지 못하고 그를 힐끔힐끔 처다 볼 뿐이었다. 뭔가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듯싶었다. 하지만 아직 비상발령이 떨어지지는 않았던 듯 긴장감이 감도는 건 참호뿐인 듯싶었다. 그래도 다른 녀석들 또한 총을 꺼내들고 자기들이 알아서 준비를 하는 것으로 봐서는 저번보다 분명 더더욱 위험한 상황 같았다.

“왜 모두들 저번보다 굳어있는거죠?”

나의 말에 김상병이 씹어 뱉듯 말했다.

“조명지뢰뿐만이 아니라 발자국 소리까지 들렸다고 한다. 아직 진짜 발견된 건 아니지만 내 예감이 빗나간 적은 없단 말이야! 분명 nom들이 왔어! 그동안은 폭풍 전야였군! 너무 한산해서 더 불안했었는데!”

그의 손가락이 카빈을 부숴버릴 듯 꾹 쥐었다. 그때 저 멀리서 미군전차에 부착된 탐조등이 확! 하고 켜지면서 주위를 비췄다. 그때 저 멀리서 누군가 전차 근방에 서 있는 임중위에게 달려갔다. 그에게 뭔가 조심스레 말하는 것 같았는데 그러자 마자 임 중위도 놀라는 듯 한 포즈를 취한 후 미군 전차병에게 다시 무슨 말을 건넸다. 분명 아주 긴박한 상황 같았다. 모두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걸 알았는지 비상대원이 아닌 녀석들도 자기 위치를 향해 천천히 움직였다. 곧이어 전차들이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위험했다. 제길! 기분이 안 좋더니!
전차의 -부르르릉!- 하는 시동 소리가 요란하게 기지를 울렸다. 적도 분명 들었으리라 난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전방을 천천히 살폈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있다는 것은 느꼈다. 방아쇠를 당기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어떤 사태가 올지 모르기에 눈치를 살폈다. 그때였다. 한밤을 가르는 소리들이 살상력을 가지고 우리를 공격한 것은!

-따다다다!-

순식간에 터진 기관총 소리에 우리는 혼비백산 해버렸다. 놀라지 않고 계속 앞을 주시 하는건 몇몇의 상병들과 병장들 뿐 처음 전투를 맞이하는 나와 같은 중대원들은 눈을 크게 뜨고 굳어버리거나 앞을 향해 마구 쏘는 형식이었다. 그때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났다. 내 옆에 있던 김상병이 나의 머리를 누르며 몸을 숙였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터진 비명과도 같은 목소리.......

“숙여어!”

-콰콰콰쾅!- 땅이 흔들리는 느낌과 함께 내 뒤 진지로부터 흙먼지가 확 하고 뿜어져 나와 참호 위를 덮쳤다. 비상 병력이 아닌 녀석들도 몇몇 깨어있기는 했지만 나머지 녀석들은 잠을 자고 있어 중대 진지는 비명천지였다. 화약의 강렬한 냄새가 내 콧속을 미친 듯이 후벼 파 머리가 띵 했다. 가만히 고개를 들어 중대진지를 보았을 때 잠을 자던 병력들이 금세 군장을 꾸리고 자기 자리를 찾아 뛰어가는 게 얼핏 보였다. 거의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그들을 보며 세삼 훈련의 중요성을 느꼈다. 훈련이 아니었다면 아무리 간 큰 남자들이라 해도 혼비백산해서 계집애처럼 비명이나 지를게 분명했다. 그때 누군가의 손이 털썩 하고 쓰러져 참호에 반쯤 걸쳤다. 난 지래 겁이나 혹시 부상이나 당한 게 아닐까 손을 잡아당겼지만 너무나 쉽게 끌려오는 바람에 바닥에 엉덩방아를 쪄야 했다. 그리고 비명을 질렀다. 나의 모습을 본 상사도 약간 놀란 듯 눈을 부릅뜨고 내 모습을 보다가 내가 아직도 집어 들고 비명을 지르던 따듯한 피가 흐르는 손을 자기가 직접 집어 들고 숲으로 집어 던졌다. 그는 내 뺨을 세 개 때렸다.

“으억!”

숨까지 벅차던 날 때려 정신을 차리게 만든 그는 귀를 틀어막고 다시 참호에 머리를 박았다. 진지에 포성과 비명만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