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일 국군의 날 행사 보다가 옛날 생각 나서 올려봐요.

지난 여름에 엄청 덥 길래,

" 이야... 올해 국군의 날 행사 연습하면 죽음이겠다."
건군 70주년이지, 대통령 바꿨지 완전 대박이 겠다 싶었는데...

올해 중계방송 봤는데, 사열, 분열, 시가행진 안 하길래 참 다행이다 싶었어요.

그럼, 마지막 편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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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종교생활을 그렇게 열심히 하는 사람은 아닌데,
군대 가기 전 불안한 마음에 안하던 성당 내 모임에 참여 한 적이 있었다.

모임에 참석하고 한달 정도 지났나,
모임 장소에 누군가 새로운 멤버를 데려왔다. 그게 이 후배였다.

나와 인사하는데, 그녀가 말했다.
XX고등학교 나오지 않았냐고 하면서 자긴 나를 안다고 했다.

나는 좀 의아했다.
일단, 난 고등학교 때 그녀가 기억 나지 않았고,
나의 고등학교 시절은
“노르웨이 숲” 소설 속 와타나베처럼 사람들에 눈에 띄는 학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후 여러 번 마주쳤지만 별일은 없었다.
그리고, 입대 전 송별회에서 마지막으로 보고 오늘 우연히 마주친 것이다.

[ 오랜만이다. 제대는 아니고 외박이야. 낼 부대 복귀 ]
[ 지난번에 선배 어머님 만났는데, 포천에 있다고 하시던데요? ]
[ 어. 그런데, 요즘은 성남에 나와있어. 국군의 날 행사 준비 때문에 ]
[ 그렇구나. 선배 그러면 낼 몇 시에 가요? ]
[ 다섯 시까지 부대로 가야지 ]
[ 그럼, 시간되면 같이 점심이나 먹어요. ]

나는 알겠다고 하고, 12시에 약속 장소에서 보기로 하고 헤어졌다.


집에 와서 사복으로 갈아입고 세탁기에 돌려놨던 전투복을 꺼냈는데
외박증이 전투복 속에서 종이 뭉치로 변해 있었다.

뭐, 성남까지 가는 길에 헌병대 검문소가 있는 것도 아닌데 별일 있을까?

다음날 부대 복귀할 짐을 챙겨서 부모님께 다녀온다고（?） 하고 일찍 나왔다.
밥 먹고 가라는 걸, 점심 약속 있다고 하고.

군복을 입고, 약속 장소에 나가보니 그녀가 기다리고 있었다.

같이 밥을 먹으면서,
난 파견 나오게된 이야기, 최상병의 바둑 덕분에 외박 나오게된 이야기를 했고,
그녀는 학교 이야기, 그리고 일어일문 전공이라 일본 갔다 오려한다는 이야길했다.

그리고,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원래 성당에서도 따로 연락하고 만나던 사이는 아니라서, 금방 대화거리가 떨어졌다.
멍하니 커피잔 바라보다가

2시가 다가오는 걸 보고 지금 버스 타면 3시쯤 부대 앞에 도착 하겠단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별말없이 앉아 있던 그녀가 갑자기 옛날 이야길 꺼냈다.
어릴때도 성당에서 나 본적이 있다고.

뭘 봤다는 거지??
미사 시간에 떠들다 걸려서 수녀님한테 혼나던거?
아니면, 미사 시간에 장난 치느라 친구랑 포복으로 성당 바닥을 기어 다녔던??

그리고, 전에 친구한테 물어봐서 이름도 알고 있었다고.

갑자기, 얘가 무슨 말을 할려고 하나.

불현듯, 머릿 속을 스치는 기억.

모임 때 함께 꼬마들과 놀 때 였는데, 아이들이 우리가 잘 어울린다며 놀린 일이 있었다.
난,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는데, 그때 그녀의 미소 짓던 표정.

얘가 얼굴도 하얗고, 조신하고 학교도 나보다 좋은데 다니고 다 좋은데.

통통했다.

그땐 그게 내 취향이 아니었다.

미안하지만, 고백이라도 하면 거절 해야지 맘먹고 이야길 계속 듣고 있는데,
그녀의 이야긴 주변만 뱅뱅 돌려서 이야기 할뿐 직접적인 표현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먼저 너 나 좋아해 물어보고 그녀가 아니요 하면
뭔가 내가 바보될 것 같은 상황.

그걸 끊을 타이밍 못 잡고 계속 듣다 보니 시간이 2시 30분이었다.

도저히 안 되겠길래 버스 시간 다 되었다고 하고,
10월에 자대로 편지 하라고 주소 주고 헤어져서 터미널로 달려갔다.

집에 올 땐 45분 걸렸으니까 괜찮겠지 생각했는데.
주말엔 교통 정체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건 나의 실수였다.

시간이 4시 30분을 지나는데 아직 버스 안에 있었고
안되려면 꼭 일이 왜 그렇게 꼬이는지
외박증도 훼손되어 전화 번호를 몰라서 연락 할 수 없는 상황.

겨우 성남 버스 터미널에 도착해 택시를 타고 부대 입구에 내려서
헐레벌떡 시간을 보니 저녁 7시였다.

2시간 지각.

입구에서 초병이 나를 보더니 바로 중대본부로 가라 했다.
가는데 머리 속이 심란했다.

“아~~ 이거 자대로 복귀하라는 건 아닐까.”

내가 중대본부에 들어가자 일직사관이 나를 보더니,
본부에 전화를 걸었다.


***

일직 사관은 수화기를 들고, 마지막 외박자 들어왔다고 보고를 했다.
전화를 끊고는 나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 왜 늦었냐? ]
[ 고속도로에서 길이 막혀서 늦었습니다. ]
[ 여기는 너네 자대가 아니라 누가 널 봐주거나 할 수 없어. 그냥 네가 잘해야 해. 알겠냐?. ]
[ 네. 죄송합니다.]
[ 가봐라]
[ 넵. 단결!]

걱정하던 것보단 오히려 쉽게 넘어갔다. 내무반에 돌아왔더니 그때서야 온 몸이 땀에 젖었다는 걸 깨달았다. 사는 일이 다 그런거 같다. 살면서 고민되고 죽을것 같은 일들이 참많은데 막상 닥쳐보면 어떻게든 다 해결되는 것 같다. 아직까지 살아있는 걸 보면.

그렇게 난 다행히 패널티 없이 잘 넘어갔다.

하지만, 2주 뒤 집이 전라도 섬인 어떤 일병이
태풍으로 배가 끊겨서 열흘 만에 복귀한 케이스가 있었다.
그는 그게 마지막 외박이었다.


9월이 되었다.

한번씩 K16 비행장（성남 공항）에 내려갈 일이 있으면 열병, 사열 하는 것 구경했다.
살수차 옆에 두고 연습하는데 그 더위에 활주로에 서있는 자체가 곤욕이다.

아침 저녁으로는 기온이 조금 떨어졌는데,
한낮에는 그래도 더웠다.

9월쯤 되니 내가 보기엔 줄도 열도 잘 맞고 멋있는 거 같은데,
사열대 스피커에선 끊임없이 지적 사항 나오고 있었다.

사열대에서 지적하고 있는 사람이나 열병 하는 병사들이나
다 힘들긴 마찬가지라서, 큰소리 안내고 살살 달래가면서 하더라.


그러던 어느 날,
사령부에서는 진짜 사기 한번 올려 주려고 했는지 위문공연이 온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자, 내심 걸그룹 하나 불러주는 건 아닐까 싶어서
희망사항이 섞인 출연자 리스트가 여기 저기 돌아 다녔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내무반에 한명이 무심하게 본부 상황병에게 들었다고 하면서,
이번 공연에 나인뮤지스가 온데, 이런 식으로 한마디 던지는 것이다.
그럼, 사람들의 즉각 반응 “ 우와와~~ “ 괴성과 발동동.

그걸 볼만큼 보다가 다시 한마디 한다.
[ 미안.. 거짓말이 었어. ]
그럼, 여기저기서 베게가 날라가는 것으로 상황 종료.

이런, 쓸데없는 장난은 공연 전날 까지도 계속 되었다.

공연 당일, 해가 조금씩 지고 있는 가운데 활주로에 세워진 무대에 모였다.
다들 걸그룹에 대한 희망을 가슴에 품고…

드디어 무대에 불이 꺼지고, 공연이 시작을 알리는 음악이 나왔다.

그와 동시에 불빛의 실루엣으로 치마를 입은 여자의 모습이 나타났다.
당연히 터진~~ 우와아~~ 하는 함성.

그런데, 한꺼번에 무대에 불이 들어오자 갑자기 함성이 조용해 졌다.
거기엔 누군지 알 수 없는 여자가 조선시대 기생 옷을 입고 서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게 뭔지 곧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 어우동 ] 이었다. 이런…..


***

어우동은 진정한 프로였다.
남정네 수천명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 보고 있는데,
전혀 흔들림 없이 기생 갓을 휘리릿 날리며 공연을 시작했다. .

그리고, 음악에 맞추어 스스로
겉 저고리, 겉 치마를 차례차례 풀어헤쳤고,
풀려진 의상들은 공연장 바닥을 이리저리 굴러 다녔다.

사람들은 놀라서, 소리도 못 지르고 보고 있는데
곧이어 어우동은 속 저고리와 속 치마도 벗어 던졌다.
일부 미리 짐작으로 으악~~ 소리를 냈지만
그러자, 거기선 알몸이 보이진 않았다.

몸에 라인을 따라서 몸을 둘둘 말아 감은 붕대가 나타났던 것이다.

점점 음악이 고조되고,
같은 의상에 다른 어우동이 무대에 등장하더니 붕대에 말린 어우동의 붕대 끝을 잡자
잡힌 한명의 어우동은 팽이처럼 회전하면서
붕대를 풀어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른 어우동도 동일하게 재빨리 붕대를 풀어내는 것이 었다.

마침내 두명의 어우동은 비키니 의상만을 남겼다.
그리고는 한참을 상하 좌우로 어우러져 다양한 레슬링 포즈（?）를 시연 하더니
음악이 끝나자 무대 위에 널 부러진 의상들을 챙겨서 퇴장했다.

이 정도 되니, 다들 기가 차서 환호성도 안 나왔다.

아~~ 이것이 위문공연??

그리고, 이어지는 이름을 알 수 없는 가수들이 여러명 등장했다.

그렇게 진행된 공연에 막바지.
마침내 단 한명 우리가 알 수 있는 가수가 한 분 등장했다.
그분은… 트롯가수 설OO 형님이 셨다.
다함께 차차차를 한곡 부르시더니 마이크를 잡고는 말씀 하셨다.

스케줄 때문에 안 나오려고 했는데,
군대서 고생하는 후배들 생각해서 시간내 왔다고 하시며,
평상시보다 신경 써서 왔다고 하셨다.

그 말뜻은 곧 다음 곡을 부를 때 알 수 있었다.
두번째 곡이 시작되고 백댄서가 등장을 하는데 죄다 비키니 차림….

간혹 한 두명이 부끄러워하며 뒤로 빼려하면
그 앞에 가서 눈 맞추며 힘차게 “다함께 차차차”를 노래하여
댄서의 용기를 북돋아 주시는 거였다.

그렇게 진행된 공연은
마침내 나이트 클럽에 클로징 멘트 같은 형님의 멘트로 끝났다.

[ 즐거운 시간 되셨습니까? 그럼 우리 다음에 또 만나요.]


그렇게 9월은 흘러 가고 있었고 국군의 날인 10월 1일은 다가 오고 있었다.



***



9월 말이되자, 행사용으로 새 전투복, 전투화 불출이 시작되었다.
그러면서, 조금 바빠졌다.

하지만, 행사가 코 앞으로 다가오자
찹찹함과 두려움이 스물 스물 솟아 올라왔다.

9월되면서 상병을 달긴 했는데,
자대 내무반 수두룩한 고참 중 성격 더러운 놈들이 많아서 복귀하면
동기들 고생할 때 파견 가서 놀고 왔다고 갈구지나 않을까..

그리고, 여기 동원 예비군 같은 생활을 석달을 하다보니

한번씩 “내가 지금 군인인가?” 하는 생각이 문득 문득 들었다.
이런 마인드로 과연 다시 자대가면 제대까지
별탈 없이 버틸 수 있을까?

그런 걱정에 잠이 못들 때가 있었다.

아침에 흙바닥에서 스물 스물 올라오는 한기에 눈을 뜨면
하루 하루가 지나는게 너무 싫었다. （군대인데?? ）
그냥 생각 같아선,
텐트에서 자도 한겨울에도 여기 있었으면..

그런데, 나만 그런건 아닌지
내무반에 다른 상병 친구도 같은 불안감이 있었나 보다
그 친구가 밥먹다 불쑥 말했다.
[ 진짜 자대가기 싫다. 나는 정말 여기 처럼 군생활 하라면
군대 6개월 더 하라고 해도 할 수 있을꺼 같아]
내가 말했다.
[ 난, 3년을 채우라고 해도 할 꺼야. 내 인생에서 이렇게 여유롭게 보낸 적이 없어.]
그러면서, 같이 깔깔 거리며 웃었다.

드디어, 10월 1일이 되었다.

새전투복을 입은 행사인원들이 활주로에 도열들 해 있다가
행사가 시작 되었다.

처음엔 언덕에서 활주로를 내려보다가,
내무반에서 일생 처음으로 자진해서 국군의 날 중계방송을 틀었다.

머리 위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자
화면엔 블랙이글 축하비행 에어쇼도 펼쳐지고,
아침마다 기상시간에 UDT와 신경전을 벌이던 해병대의 모습,
한번씩 부대에 나타나던 여군들도 화면에 보였다.

우리는 괜히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 저 전투복 우리가 나눠준거 아니냐?]
그러면서, 사실 작은 거라도 한몫 했다는 사실에 뿌듯했다.

그리고, 우리 중 일부는 시가 행진 코스에 화장실 위치 안내 하는 일에 차출 되었고
오지게, 화장실 청소하다가 복귀하기 하였다.

그렇게, 그날 하루를 위해 3개월 고생했던 행사가 끝났다.

행사가 끝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막사를 비우고 철수해 버렸다.
그 많던 인원들이 모두 떠났고, 우리는 뒷정리를 위해 남았다.

공병대의 막사 철거가 바로 시작되었고,
우리는 돌아다니면서, 제대로 반납이 안된 군용품 챙기러 다녔다.
취사트레일러 주변엔 야전 취사세트가 그냥 막 굴러다녀서
챙기고, 수통, 철모, 탄티, 전투화 등등 반납 처리할꺼 처리했다.

그 와중에 난 장교용 우의와 전차병 고글을 주웠다.
그걸 우의는 낚시 갈때 입고, 고글을 스키탈 때 쓸꺼라는
미친 생각을 했다.
（ 쓸일 없다.그런거 버리고 나오세요. 고글은 양파 깔땐 쓸만..）

막사가 없어지자, 우리 대대는 성남비행장으로 철수 했다.
여기서, 3개월 만에 첨으로 내 소총과 만났는데..
장마철을 거쳐서… 꼴이 말이 아니었다.
자대가서 맞아 죽을까봐 한 두시간은 정신없이 닦았다.

그러게, 3주를 보내고 대대장님이 집합을 시키셨다.
행사 인원 휴가를 육본에서 4박 5일 내려 보내는데
보통 다 짤려서 못가는 경우가 있으니
지금 보내 주겠다 하셨다.

끝까지 멋진 대대장님 （ 아마.. 별은 못 다셨을 듯.. ㅠㅠ ）

자대 복귀는 휴가 갔다 와서 보자 하셨다.
사실 자대 복귀에 문제가 살짝 있었다.
지휘부는 행사 끝나서 해체 됐고, 누가 나서서 복귀 차편을 마련해 줘야하는데
안그럼, 총 메고, 군장 짊어지고 지하철타고, 버스타고 부대 복귀할 판.

드디어, 4박 5일 휴가를 끝내고 부대에 돌아오니
다행스럽게 버스 한대가 내무반 앞에 서 있었다.

버스를 타니 북쪽으로 달려서,
내가 있던 포천 XX대대 연병장에 나혼자 덜렁 내려주었다.

다시 신병이 된 기분이었다.

혼자 터벅 터벅 중대 사무실 방향으로 걸어 갔다.

가는 길에 창고동 지역으로 들어서자
처음 마주친 인간은 내무반에서 제일 악명 높은 최상병.

속으로 망했다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긴장되서 4개월간 잊고 있던 “ 충성“ 구호가 크게 나왔다.

그 인간이 순간 “어” 하며 멍하니 날 쳐다봤다.

그리고는 처음보는 그의 활짝 웃는 표정

[ 우와~ 버거킹. 이 자식. 돌아왔구나. 고생했어.]

----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