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병 때 였는데,
하루는 인사계 동기 녀석이 나를 상황실로 불렀다.
갔더니 내 사수가 하던 부대 안에 군종 교회 담장 보수 작업을
대신 나가라 하는 거임.
콘크리트 블럭으로 무너진 담장을 복구하는
열흘 정도 예상되는 작업.
내 사수가 하루 반나절 작업하고는 재미없고 힘들다며,
부대 밖에 산불 피해 복구 대민지원으로 갈아타서 도망가 버렸고
그걸 나보고 마무리 하라는 오더.
사수는 나와 입대 두달 차이 밖에 안 나는 같은 일병 나부랭인데
그는 내부반에서 고참이 달랑 말년 포함 3기수 뿐인 풀린 군번.
벌써 군기 쏙 빠져서 일병인데 병장 코프레를 하는 중이 었다.
그 동긴 숫자도 많아서, 바로 다음 기수인 우리는 꼬인 군번이었고.
‘뺀질 뺀질하고 얍실한 놈.’
혼자 속으로 욕을 했지만 군대서 안하겠다고 할 도리는 없고…
덕분에 주말에도 놀지 못하고 사수 대신 담장 복구 작업을 8일간 하게 되었다.
그 얍실이는 대민 지원 3일 달랑하고는
그 포상으로 주말 외박도 챙겨서 나갔다 왔다.
그것만 해도 배 아픈 일인데, 진짜 열 받은 일은 그 다음이었다.
믿음이 독실（?）한 대대장이 교회 담장 복구된 거 보고,
작업한 병사들 2박3일 포상휴가 보내주라고 한 거임.
문제는 작업자 명단에 내 사수 이름이 들어가 있어서
작업은 거의 다 내가 했지만,
휴가는 결국 그 얍실이가 가고 말았다.
근데 그 얍실이는 휴가 나가는 날 까지도 나에게 고맙단 말 한마디가 없었다.
얍실이가 휴가 나간 그날 혼자 우울해 있는데,
인사계 동기가 다시 나를 불러서 같이 이야길 하게 되었다.
네가 섭섭한거 자기도 아는데, 당연 나를 보내고 싶었지만
상대가 고참이라 짬밥에 밀려서 어쩔수 없었다고.
그러면서, 이번에 정확한 내용을 모르는데 파견이 있다고
그걸 무조건 절 보내주겠다고 하는 거임.
그래서, 반신반의하며 알겠다고 했는데…
바로 다음날 아침 업무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중대본부 호출이 와서
따블백에 군장을 싸고 중대장 한테 파견 신고 하라고 했다.
내가 파견 신고하는데, 묘한 표정으로
중대장이 “ 아. 그거 네가 가는 거야? 잘 다녀와라 “
내용도 말 안해 주고 딱 그 한마디.
내무실장한테 보고하러 가니까,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 뭔데, 언제 돌아오는 거야? “ 묻길래,
저도 모르겠다고 답하고 인사계 따라 연병장으로 끌려 나갔다.
연병장에는 사령부에서 나온 미니버스가 대기 하고 있었고
버스에 올라타자 위병소를 벗어나더니
포천 주변에 예하 대대들을 돌며 한 두명씩 태우고는
의정부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 하는 것이었다.
그리곤, 왠지 낮이 익은 부대 앞에 도착하였고 위병소를 지나 들어가자
그곳이 어딘지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
거기는 [ 301 보충대] …. 후반기 받고 자대 배치 전에 거쳐 갔던 곳.
***
일병을 달고, 보충대를 다시 들어가 보니 옛날 생각에 기분이 이상했다.
후반기 받고 왔을 땐, 어느 자대로 갈지 몰라 불안 불안하고
어리둥절해서 긴장해 있었지만,
지금은 뭐 파견 가는데 가면 가는 거지 뭐 불안한 거 있나.
내무반에서 말년들이 하는 것처럼 모포에 기대어 반쯤 누워봤다.
행복했다.
같이 있는 사람들과 우리 어디로 파견 가는 건지 아냐고
물어봤는데 시원하게 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건 좀 이상했다. 뭘까
시체들처럼 내무반에 퍼질러 있다가 밥 먹으러 가라고 해서
사람들하고 나왔다.
우리가 식당 가는 길에 후반기 받고 자대로 갈 신병들과
마주 쳤다.
“ 와.. 일병이닷. 우왓.. “
부러움이 가득 담긴 목소리와 눈초리
얼마나 부럽겠니, 자동으로 으쓱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훈련소에서 준 중공군 같은 모자에, 이발병 없어 자기들이 바리깡질하다
여기 저기 쥐가 파먹은 것 같이 머리. 후줄근한 전투복
쟤들 낼 모래면 자대들 가서 내무반에 각 잡고 앉아 있을꺼 생각하니
불쌍했다.
그날 보충대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사람들과 다른 버스에 탔다.
그 버스는 고속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달렸다.
포천에선 부대 밖에 나와도 산이나 기껏해야 이동 갈비 집인데,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높이 솟은 아파트들을 보니 휴가 가는 기분.
한참 고속도로를 달리던 버스가 일반도로에 들어서고
복잡한 시내를 거쳐선 논밭이 보이는 비포장길을 잠깐 달리더니
어느 산등성이 언덕 아래에 멈추는 것이었다.
선탑자가 내리라고 해서 사람들과 함께 우르르 버스에서 내렸다.
내려서 언덕을 올려다 봤는데, 붉은 자갈과 황토로 뒤덮인 야산.
어… 이게 뭐지? 하며 인솔자를 따라 비포장 언덕 길을 걸어 올라 갔다.
거긴 피라미드 공사 현장 같은 장면이 펼쳐 있었다.
공병대 포크레인과 불도져 같은 중장비들이 쉴새없이 오고가며 바닥을 다지면
6월 뙤약볕 아래 흑인들처럼 새까맣게된 군인들（공병대）이
나무와 천막으로 간이 막사를 끝도 없이 만들고 있었다.
작업이 이미 오래됐는지 막사들의 대부분은 이미 천막이 씌워져 완성이 되어 있었고.
공병들도 악만 남았는지 지치고 짜증난 얼굴 표정에
곳곳에서 욕설이 난무 하는 험악한 분위기.
와… 파견 간다고 좋아했는데, 노가다 판에 끌려온 건 아닌가 슬슬 걱정이 되었다.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도 같은 생각인지 표정이 한결 어두워진 표정.
그렇게 심란한 표정으로 서있는데,
멀리서 중위 한명과 소위 한명이 다가오더니
점심 밥 준다며 따라오라 했다.
갔더니 식당도 아니고 취사 트레일러 앞.
각자 식판을 하나씩 나눠주곤 생두부 3조각, 간장… 밥, 깍두기뿐.
인솔한 중위가 지금 취사가 제대로 안돼서 그러니 그냥 먹으라 했다.
어떻게 우걱우걱 밥을 먹고는 중위를 따라 막사로 갔다.
맨 흙바닥에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나무판을 바닥에 깔아 침상을 만들고
야전 천막을 기둥에 덮어씌어 만들어진 내무반
한구석 자리를 차지해서 짐을 푸는데, 행정병이 와서 총기만 따로 걷어 갔다.
그 총은 파견 기간 동안 다시 보지 못했다.
대충 짐을 풀고 막사 밖으로 나와서 주위를 살펴보니,
언덕 아래 활주로가 보였다.
한쪽으론 작은 개천이 보이고, 그 건너에 도시의 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저긴 어딜까…
그때 누군가의 조용 조용한 말 소리가 들렸다.
활주로는 서울 공항이라고. 그리고 저기 보이는 곳은 성남 시내라고....
***
막사 앞에 집합해서 대대장님 훈화를 듣고는
이게 뭐하는 부대인지 알게 되었다.
이건 국군의 날 행사를 준비하는 부대, 제병지휘부.
그리고, 우리 대대는 지휘부 예하 보급대대.
대대장님이 국군의 날 행사가 끝나고 한달 뒤 자대로 복귀 할수 있다고 했다.
지금이 6월말이니까 이건 4개월 짜리 파견?
에헤라 디아~~ ㅋㅋ
말도 안하고 차출해 올만 하네.
국군의 날 행사는 일반적으로 서울공항이나 계룡대에서 열리는데,
매 5년마다 큰 규모로 열리고, 그땐 보통 서울공항에서 행사가 벌어진다.
그 사이사이엔 계룡대에서 작게 진행되고.
10월1일 행사지만 준비는 5~6월부터 시작.
6월부터 공병대가 행사장 부근에서 막사를 짓기 시작해 얼추 완성되면
6월 말부터 보급, 행정등 지원부대 셋팅해 놓는 거임.
그리곤, 진짜 열병을 할 행사요원들이 들어오는
7월부터 9월까지 한 여름 무더위와 싸우며 활주로에서
하루 종일 분열, 사열, 열병 연습을 하게된다.
너무 더우니까, 급수차로 활주로 바닥에 물 뿌려가면서.
일단, 우린 보급대대라 공병대가 하고 있는 노가다에서 벗어났고,
활주로에서 하루 종일 진행되는 열병 연습에서 벗어 났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하지만, 4달 동안 야전에서 살아야 한다는 부담스러운 일 이었다.
당장, 햇빛에 덥혀진 천막에 복사열은 사람 미치게 만들어서
천막 내무실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초반엔 전기 공사가 안 끝나서 선풍기는 고사하고 전기불도 없이
어둠 속에서3일 밤을 보냈다.
내부실에도 겨우 랜턴 하나 걸어 놓고 살았는데, 잘 보이지도 않으니
뭐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이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샤워도 급수차에서 1인당 반합에 딱 3번 채워주면 그걸로… 그냥.
첫번째 반합에 물로 몸을 적셔서 비누칠하고, 두번째 물로 머리랑 얼굴 헹구고,
세번째 반합으로 몸을 헹구면 끝이었다.
반합은 생각보다 물이 많이 들어간다는 사실과 그렇게 씻고도 피부병이 안 생긴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밥도 여전히 상태가 안 좋아서,
취사 트레일러에서 초자연식을 만들어 내고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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