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려온 목소리는 아주 젊고 맑은 목소리였고 문 옆에서는 흰색의 팬티가 깃발대신 휘날리고 있었으며, 그 뒤에 보인 얼굴은 아직 열 살도 채, 안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였다. 아이는 검은 머리를 하고서는 무서워서 얼굴의 반 정도밖에 문밖으로 내밀지 못하고는 에밀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리고 에밀은 장난 끼가 발동하여 왁! 하면서 소리를 지르자 꼬마는 걸음질치며 놀라더니 벗어놓은 팬티에 그만 발이 꼬여서 그 자리에 넘어졌고, 바로 울음을 터트렸다.

에밀은 팔짱을 끼고 자신을 쏘았던 꼬마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로웬 역시 에밀 때문에 쉽게 나서지 못한 채 뒤에서 지켜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꼬마도 훌쩍거리며 가까스로 울음을 자제하더니 공포 어린 눈길로 에밀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에밀은 계속해서 꼬마를 내려다보고 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는 문고리를 잡으며 주방을 살피기 위해 얼굴을 들이미는 순간.

턱!

주방용 식칼이 날아 들어와서는 이번에도 아까와 비슷하게 에밀의 머리를 스쳐지나가게 되었다.
에밀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식칼이 날아 온 쪽을 쳐다보자 그 곳에는 아까 음식을 나른 것으로 추정되는 흰색의 주방 옷을 입은 40대 정도의 남자가 두려움에 떨면서 서 있었다.

"이봐, 당신이 이 꼬마 부모야?"

"허억……. 허어어억……."

남자는 두려움에 떨려서 대답 따위를 할 상태가 아니었고, 그러자 에밀은 순간적으로 열 받아서는 다시 한번 눈살을 크게 찌푸리더니 양손을 모으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소령님, 그 그만두세요."

로웬이 겨우 에밀에게 달려들어서는 양어깨에 손을 걸쳐서 주문을 외우는 걸 막았지만, 에밀은 아까보다도 더 날뛰었다.

"이거 놔!! 내가 제일 싫어하는 녀석들이, 저렇게 뒷일 감당할 자신도 없으면서 저지르는 새끼들이야! 이 집을 슬라임들로 철저히 박살내버리겠어!!"

"진정하세요."

에밀이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이, 오른 손 하나만을 잡힌 채로 손바닥을 쫙 피더니, 로웬으로서는 처음 듣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였고, 특이하게도 에밀에 밑에 새겨지는 마법진은 거대하면서도 더욱 선명한. 그렇지만 또 다른 형태의 문장을 띄고 있었고, 주문이 끝나려는 순간 남자는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저희 집 아들이 철이 없어서……. 제 목숨은 어찌하셔도 좋으니, 제 아들과 이 가게 많은……."

에밀은 그대로 엎드려있는 남자를 내려다보았고, 펴있던 오른손을 다시 꽉 쥐는 순간, 마법진은 소멸하였고, 동시에 그를 잡고 있던 로웬조차 알 수 없는 자그마한 힘에 의해 뒤로 튕겨나 버렸다. 로웬은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지금은 그런 걸 물어 볼 상황이 아니란 것을 알았기에, 무슨 일이 일어나면 바로 에밀을 말릴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에밀에 입에서는 아까와는 달리 평소 이상으로 침착한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로웬, 이 마을을 지금 당장 벗어나도록 한다."

로웬은 처음에는 자신이 잘 못 들은 것으로까지 착각하였으나, 에밀은 그대로 고개를 숙인 채 가게를 빠져나왔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엎어져있던 가게의 주인은 자신의 아들에게 가서는 상처가 없는지 확인하였다. 그리고 로웬은 그것을 지켜보다가 에밀을 재빨리 따라가기 시작하였다.

석양이 지고 있는 늦은 시간에 노랗게 그을려버린 마을에 중앙 광장은 오후와는 다르게 단 한명의 사람도 없이 새들만 노래하고 있을 뿐이었다. 에밀은 그곳을 지나가면서, 잠시 멈춰서 서는 하늘을 쳐다보더니, 로웬이 숨을 헐떡이며 겨우겨우 따라잡는 순간, 입을 열었다.

"……. 아들이란 존재가 그렇게나 소중하단 건가?"

"소령님…?"

"……. 아무것도 아니다. 그나저나, 우선은 근처에 좀 큰 도시로 나가자. 상대할 소환술사들도 많으니까."

에밀은 평소처럼 차분하지만 장난 끼 있는 말투와 목소리로 시원한 웃음을 지으며 마을을 빠져나갔고, 그들의 목표는 자신들이 있던 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도시, '엔드루타르'로 결정되었다.
엔드루타르는 오래 전부터 많은 소환술사들이 그 곳에서 실력을 갈고 닦기 위해 모인 도시이며, 수많은 종류를 다루는 소환술사들을 만날 수 있어서 오래전부터 4클래스인 서몬 이상이 되기 위한 일반인들이 많이 훈련하러 모이는 곳이었고, 실제로 듀하렘에 있는 번화 된 도시 중에 엔드루타르 같은 도시는 그 곳을 포함하여 총 5개 밖에 안 될 정도로 소수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로웬처럼 3클래스 중에서도 인재들은 군에서 그 곳을 특찰 갔다가 눈에 띌 경우, 에밀처럼 높은 소환술사들에게 따로 붙여져서 키워지게 된다.



"아아, 이제는 해가 사라졌으니, 아쉽게도 이 숲에서 천막을 치자."

"네. 알겠습니다."

"흠……. 너도 이제는 날 처음 만날 때보다는 편해진 모양이군."

에밀에 농담에 로웬도 웃으며 자신의 뒤통수를 긁적거렸고, 약간은 대장과 부하로서의 분위기도 살아났지만 단, 두 명밖에 없는 군대 따위가 있을 리도 없었고, 단순히 에밀은 잠시 동안의 동반자 이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다.

로웬과 만나기 이전부터, 혼자 여행해 온 에밀은 단순히 '파란 눈동자의 검은색 망토를 두른 사나이'를 찾는 게 목적이었다. 에밀과 친해 보이던 스네이크 소령도 에밀이 그 선택받은 능력으로 군대에 정식으로 등록을 안 한 이유는 그 사나이를 찾기 위해서라는 것 외에서는 아는 것이 없었고, 에밀과 친한 사람들이 에밀에 대해 정확히 아는 것이라고 해봤자, 가문을 싫어한다는 정도였다.
더 알려고 해봤자 '시프론'가문에 의해 모든 게 저지당하기 때문이었다.

"천막은 대략 다 쳐진 것 같군. 오늘은 피곤하니까 바로 쉬자. 내일 일어나면 여기서 과일하고 근처에 호수를 찾아서 마실 물을 떠서 출발하면 될 테니까."

에밀은 그렇게 말하고는 바로 천막으로 들어가서는 그대로 누워버렸다.

"저……. 그런 옷을 입고 주무시면 덥지 않으세요? 적어도 그 스카프정도는……."

"응? 아아……. 아니야. 난 여행을 하면서 이 스카프와는 언제나 같이 지내왔어. 나한테는 소중한 녀석이거든. 그나저나, 잘 거면 빨리 자는 게 좋아. 피곤하면은 맹수들이 덮쳐도 일어나지 못 해."

"네……."

로웬은 대략 큰 덩치에 어울릴 정도로 두툼한 상의를 벗어 던지고는 그대로 잠자리에 들었고, 미리 잠에 들기라도 한 것 같았던, 에밀은 그대로 상체를 일으키더니, 스카프로 덮어놓은 오른쪽 어깨에 손을 얹었고, 무언가 괴로워하는 신음소리를 내더니 다시 잠자리에 누워서는 깊은 잠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