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약 갑자기 사라진다면 너는 어쩔래?”

그같이 놀래키는 말은 라이덴 쇼군이 사용하던 표현이 아니기에 나는 짐짓 겁을 먹었다.

“어째서 사라지는 거죠?”
“말할 수 없어.”

그렇게, 나의 마음에 고인 잔잔한 내수에 한줄기 보라색 방울이 떨어진다.
정말로 쇼군이 사라질만큼의 사건이라면 나같은 건 발언권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이 사람은 나를 놀리는 것일테다.

이유도, 정체도, 의도도 알 수 없는 말 한마디로 가련한 존재에게 불안을 안기는 저 사람, 아니 저 영원한 존재는 나를 놀잇감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라이덴 쇼군에게 품어온 연심은 증오로 변한다.

쇼군이라는 아름다운 꽃을 감히 바라볼 수 없었기에,
그 가시의 음침함 부분에서 우러러보기로 결심한 나의 처지를 보고,
그녀는 그곳에 희망이라는 씨앗을 쥐어줬을런지 모른다.

나는 나의 처지에 분노한다.
허나, 나의 분노를 부추긴 것은 “쇼군이 사라지다니 있을 수 없습니다.” 라고 말해야만하는 신민으로서의 명예였다.
이런 쇼군따위, 영원을 약속했으면서 사라진다는 무책임한 쇼군따위, 이젠 상관 없는데…

영원이란 그녀의 보라색으로 칠해진 벽면에 손을 짚어 지문과 손금을 남기는 것과 같은걸까?
그녀에게 품었던 연모가 죽을만큼 괴로운 무게로 환원되어 간과할 수 없는 고통으로 나를 옥죈다.

그리하여 마침내 파멸에 도달하는 것이,
그것이 쇼군의 가슴에 영원한 생채기를 낼 수 있는,
가시덤불에 살고있는 아랫인간의 우아한 특권이라면.

“쇼군이 사라진다면 저는 죽을 겁니다.”

그제서야 쇼군의 눈이 크게 뜨인다.
허나 표정의 변화는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우위를 점했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았다.
그녀의 색깔에 나의 손이 닿았다. 그렇게 믿었다.

그때, 열등한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아무것도 없다는 자긍심을 내가 느낀 게 아니었을까.

달빛이 그 모습을 보고 한숨을 내쉰듯 일발의 바람이 뺨에 스친다.

라이덴 쇼군의 눈에서 예상 못한 대답에 대한 답변으로 당혹감이 달빛에 비춰졌다.
괘씸함을 억누르는 눈길…

이러한 대치상태에서 나는 그녀를 범하고자하는 야릇한 분노와 자신을 좀먹고 있는 불안과 말하지 않은 부분에서 드러나는 사라지지 말라는 염원을 차례로 보여주며 이미 수를 읽혔다.

그것도 모른 채… 미련하게…

그녀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잠든 동안 보이는 것을 꿈이라하고, 덧 없는 이 세상도 현실로 보이지 않으니…”

그러니까 이것은, 어긋난 두 존재가 쌓아올린 영원의 실체였다.

지금은 낡아빠진 어떤 책의 떨어져나간 페이지에서는 신성함을 이렇게 정의한다.

신성한 것은 꿈이나 추억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으로부터 멀어진 우리들에게 그것을 현전하는 기적을 선사한다.
허나 그것은 손에 닿지 않아서 고귀한 것이다.

라이덴 쇼군이 고귀한 것은, 우리에게 선사한 것이 풍요로움의 몽환이라서 그런걸까?
난 원신을 안해서 모른다.

“당신은…”

나는 쇼군을 당신이라 부르며 대죄를 쌓아갔다.

“당신은 아름답지 않습니다.”

손에 닿는 모든 것을 더럽히고 훼손하는 것이 내가 가진 긍지의 전부인 것이다.

이후 25년 7개월 21일 뒤, 나는 죽었다.
모두에게 영원을 약속한 라이덴 쇼군은 내 무덤에 자신을 닮은 보라색 꽃을 심고 심고 또 심었다.
결국 내 무덤은 결코 영원하지 않을 보랏빛이 되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난 뒤, 금이 벗겨진 절이 여전히 금각이라 불리는 것과 같이 황무지인 나의 무덤은 사람들에게 보랏빛 무덤의 언덕이라 불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