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사진으로 본 얼굴 외에는

한 번도 본 적도, 얘기한 적도 없는 사람의 관을 들었다.

시기를 고려하면 과하다 싶을만치 빗발이 차창을 두드렸고

관을 들 때 쥔 왼 손등은 아렸으며

눈두덩은 뜨겁게 시려왔다.





10여 년 전, 고 2때이다.

오늘 관을 들게 된 이유였다.

현수（가명）는 2학년 때 같은 반이 되면서 교류하게 된 친구였다.

현수는 키가 크고 성격이 밝은 소위 '인싸'였으며

무엇보다도 그 특유의 중저음의 목소리가 굉장히 좋은 아이였다.

그 목소리로 교실에서도 발라드를 곧잘 부르곤 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하지만, 단지 같은 반 친구였다는 것만으로는 오늘 일을 설명할 수 없다.



몇 월인지도 모를 그 해 어느 날 이었다.

그 당시 나는 타지로 고등학교를 진학하며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토요일 오자（오후 자율학습）를 마치고 기차역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탔고,

우연히 현수는 내 옆자리에 같이 타게 되었다.

물론 현수는 그 지역 태생이라 기차를 타려는 것은 아니었고,

정확히는 기차역 근처의 '시내'에 볼 일이 있다고 했다.

15분 정도 담소를 나누다 우리는 역전 정류장에서 같이 내렸고

이내 나는 지갑을 놓고 내렸음을 깨달았다.

"아, 나 지갑 놓고 내렸다!"

라는 말이 떨어진 지 채 1초도 지나지 않았을 때,

현수는 갑자기 내달렸다.

나는 그를 쫓아 뛰어갔으나, 말했다시피 현수는 키가 큰 애였다.

그렇게 우리는 1분 쯤 후,

내렸던 정류장과 그 다음 정류장의 중간에서 다시 마주쳤다.

"자, 여기."

중저음의 목소리로 숨을 헐떡거리며 말하는 현수는

한 손에 내 지갑을 들고 내밀었다.





나는 그 날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한다.

아마 평생 잊지 못 하겠지.

나였으면 무의식적으로 그러한 행동을 할 수 있었겠는가?

수 천 번 되뇌어도 결론은 '아니오'에 가까웠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우리는 20대 후반 직장인들이 되었고

각자의 삶을 살아갔다.

그런데 그저께 한 친구로부터 밤늦게 현수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부고장을 받았다.

현수로부터 소식을 듣지 못 한 이유는

나는 그와 같은 반 친구였을 뿐,

우리는 딱히 성인이 된 후에 교류를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사이가 나쁜 건 아니지만, 서로 굳이 시간 내서 만나지는 않는 친구의 범주.

나는 내 '지갑 사건'을 떠올렸다.

얼마 간 '망설인' 끝에, 친구 몇 명들과 밤 11시 식장에서 보기로 약속했다.

그렇게 현수와 담배를 태우면서,

내 머릿속의 '지갑 사건'을 현수에게도 알려줬다.

당연히, 현수는 그 일화를 기억하지 못 했다.

그것은 수지타산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본능적 행동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내가 든 모르는 사람의 관에 담긴 시신은

현수의 아버지였다.

나는 오늘 발인 날 연차를 써서라도 함께 있고 싶었다.

그의 유년시절 오른손에 쥐여진 내 지갑이

계속해서 내 머릿속을 헤집었기 때문에.

어린 현수는 1초의 주저함도 없이 뛰어갔으나

나이를 먹은 나는 의식적으로 '궁리'한 끝에 내린 결정이다.

첫 날 식장에 갔으니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 꼭 연차를 쓸 필요까지는 없지 않나?

따위의 고민들.





나와 또다른 4명의 현수 친구들 그리고 친척 분 한 명이

현수 아버지의 관을 지었다.

머지않아 그 커다란 목제품과 내부의 시신은

잿가루가 되어 현수의 손에 들렸다.





어제 어버이날 때 부모님께 드릴 카네이션을 사면서,

문득 현수 생각이 났다.

그래서 1송이를 더 샀다.

현수는 황망 중에 있어 어머니께 드릴 카네이션을 준비할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화장을 기다리면서 현수에게

카네이션을 꺼냈다.

어제 어버이날인데 아마 네가 정신없어서 생각치 못 했을 거라고,

오늘 장례 다 마무리하면 어머니께 달아드리라고.

핀이 달린 5000원짜리 초라한 카네이션.





현수는 꺼이꺼이 울었다.

항상 웃던 현수가 오열한다.

마치 나에게 그 날의 현수가 쥔 내 지갑이 절대 잊을 수 없는 충격이듯이,

현수에게도 오늘의 카네이션이 영원히 기억되리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나는 눈물을 꾹 눌러 참으며 현수를 부둥켜안고 등을 토닥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