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월이가 부채도사라는 놈에게 끌려갔다는 것이냐?"

"그렇다."

"그 태범이란 놈은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이냐? 그놈이 네놈보다 강할것 아니더냐?"

"태범님은... 그자리에 없었다."

"빌어먹을..."

"태범님은 그 부채도사의 뒤를 쫓아갔다. 네놈도 그리할것이냐?"

"흥. 멍청하게 부채도사의 뒤를 쫓는다한들 쉽사리 찾을수 있을것 같으냐?"

대혁은 연월이 어디로 끌려갔는지 아는듯한 말투로 말했다.

"아가씨가 어디있는지 알고 있는것이냐?"

"쯧쯧... 생각해보거라. 연월을 노리고 있는 인물은 다름아닌 좌의정이 아니더냐? 그 부채도사란 놈도 결국 좌의정의 부름을 받아 연월을 끌고갔을터. 부채도사의 뒤를 쫓기보다 좌의정의 집으로 가는것이 연월을 조금 더 빨리 찾을수 있을것이다."

"찾을수 있을것이라 말하였느냐? 네놈은 아가씨를 찾지 않을 생각인가 보군."

"떠난 여인을 뭣하러 찾겠느냐? 더군다나 나는 다친몸이니, 괜히 움직였다가 더 큰 상처를 입을수 있다. 네놈들에게 연월이 어디있는지 알려주었으니 알아서 해결하거라."

대혁은 방안으로 들어갔다. 동섭은 한번 더 부탁할까 생각했지만,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연월이 먼저 대혁을 떠난것이었기에 더이상 대혁에게 아무런 감정도 남아 있지 않는듯 햇다. 동섭은 문을 열더니 대혁의 집을 나갔다. 방안으로 들어간 대혁은 문소리가 들리자 서둘러 옷을 갈아입었다. 잠시후, 대혁은 어느새 나갈채비를 마치고 방에서 나왔다.

"그 태범이라는 놈보다 먼저 도착해야 할텐데..."

대혁은 문을 열어 집을 나섰다.
----------------------------------------------------------------------------------------------------

부채도사. 그는 연월을 이끌고 좌의정의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발걸음은 왠지 모르게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어디 불편하신 것입니까?"

뒤에서 따라 걷던 연월이 부채도사에게 물었다.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것이냐?"

"걸음걸이가 점점 느려지시고 있습니다. 다리가 다치신겁니까?"

부채도사는 그제서야 자신이 느리게 걷고 있다는 것을 알수있었다.

"내 걱정을 하려거든, 네 걱정이나 먼저 하거라. 내가 빨리도착한다면 너는 목숨을 잃을수도 있을것이다."

부채도사는 괜히 겁을주기위해 인상을 찌푸리며 굵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연월은 겁을 먹기는 커녕 되려 이때까지 궁금해하던것이 떠올랐다.

"도사님. 제가 도사님께 질문을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부채도사가 단칼에 거절하려 했지만, 연월이 처음으로 하는 부탁이었기에 한번 들어나 보기로 했다.

"말해보거라."

"대체 저를 왜 끌고가려는 것입니까? 저는 힘도 없고, 돈도 없고, 남들 보다 많이 아는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 좌의정이라는 분께서는 왜 저를 자꾸 끌고가려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모르는 것이냐?"

연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 자신의 값어치를 모른다니... 안타까운 일이구나."

연월은 부채도사의 입에서 자신이 사람이라는 말이 나오자 깜짝 놀랐다.

"제가 사람인것을 아시는 것입니까?"

"네 정체도 모른체 너를 잡으려 했겠느냐?"

"그렇다면 사람임을 알고도 저를 잡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네 값어치는 사람이기에 있는것이아니라, 연월이기에 있는 것이다. 주연월. 퇴마사 주참의 혈육. 그 사실만으로 네 값어치는 이미 값을 매길수 없을 정도로 높아지니 욕심많은 좌의정이 이를 이용하려하지 않겠느냐?"

"그 값어치라는 것이 얼마나 크기에 매길수 없다는 것입니까? 집이라도 살수 있는 것입니까?"

"나라를 살수있는 값. 그것이 너의 값어치다."

"나라를 살수있다니... 그게 가능하단 말씀이십니까?"

"요괴들은 주참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놈들이지. 좌의정은 네 목을 이용해 요괴들에게 힘을빌려 이 나라. 조선을 얻을 속셈이다."

"조선의 왕이 가만히 있지 않을것입니다."

"그렇지. 분명 병사들을 모두 모아 막으려 들겠지. 허나 사람이 요괴를 당해낼수 있겠느냐?"

연월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도깨비들과 대혁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위해 모두를 떠난것인데, 이제는 모르는 이들에게 까지 해를 입히게 됬기 때문이다.

"이제야 목숨이 위험하다는 것이 실감되는 것이냐?"

부채도사는 자신이 끌고감에도 아무런 겁없이 따르던 연월이 이제서야 겁에 질리는 것처럼 보였다.

"도사님께서는 어째서 좌의정을 돕는것입니까. 남을 해하는 일은 나쁜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말은 내가 착하다는 말로 들리는구나."

"도사님은 착하지 않습니까?"

"흥. 네가 뭘 안다고 그리 말하는 것이냐? 사람은 명예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수 있는 짐승이다."

"명예때문에 이런일을 하시는 것입니까?"

"하나만 한다던 질문이 갈수록 많아지는구나. 그만 입을 다물고 걷거라."

부채도사의 말에 연월은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하게 되었다.
----------------------------------------------------------------------------------------------------

대혁은 어느새 마을에서 빠져나와 한양으로 향하는 길을 걷게되었다. 그런데, 대혁의 뒤에서 성큼성큼 따라오고 있는 사내가 있었다.

"아가씨는 아직이더냐?"

도깨비 동섭이었다.

"지금. 그말이 몇번째로 말하는 것인줄 아느냐? 마을을 떠날때부터 지금까지 스무번은 더 들은것 같구나."

"답을 해준다면 더는 묻지 않을것이다."

"나를 떠난지 이틀이 지난뒤에야 연월이를 찾으러 가는것인데, 마을을 벗어났다고 찾을수 있겠느냐?"

대혁은 괜히 방심한채 마을을 나서다 동섭과 마주친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것이, 멀리서 보고만 있던 동섭이 이리도 귀찮은 도깨비인줄 몰랐기 때문이다.

"서둘러 걷거라. 이틀이나 되는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는 보다 빨리 걸어야 되지 않겠느냐?"

"빨리 걷는다고 좋은것이 아니다. 천천히 걷더라도 오래 걷는다면 충분히 따라잡을수 있으니, 정 급하면 네가 먼저 앞장서 걸어가거라."

"하지만 좌의정의 집은 네가 알고있지 않느냐?"

"그럼, 군말말고 따라오거라."

동섭은 천천히 걷는 대혁이 답답했지만 연월을 찾기위해서는 대혁을 따라가야만 했다. 대혁은 문뜩 연월이 이리도 귀찮은 동섭을 자신의 곁에 두고도 어떻게 함께 다닌것인지 궁금했다.

"동섭. 너는 연월이를 지키는 도깨비다. 맞느냐?"

"갑자기 그 말은 왜 꺼내는 것이냐?"

"그것이, 연월이가 너와 함께 있을때, 뭐라 말을 하지않더냐? 예를들어, 말이 많다거나, 너무 말이 많다거나, 심하게 말이 많다던지 말이다."

"나는 그림자 속에서 아가씨를 지키는 역활을 맡았다. 그러니 함부로 그림자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대혁은 지금 당장 동섭이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 영영 안타나탔으면 했다.

"그러고 보니, 아가씨의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본지도 오래됬구나."

"사람의 그림자 속으로도 들어갈수 있다는 말이냐?"

"사람 그림자도 그림자니, 마음만 먹으면 들어가기도 하고, 나오기도 하는것이다."

"그럼... 그 사람몰래 그림자 속으로 들어갈수도 있는것이냐?"

"그림자는 소리가 없는 법이다."

"소리가 없이 그림자가 될수있다면, 연월이가 가는곳은 어디든지 소리없이 몰래 따라갈수 있다는 말이 아니더냐?"

대혁은 몹쓸 생각이 떠올랐다. 그런데 자신보다 흐뭇해하고 있는 동섭이 보였다.

"설마... 네놈!"

"흐흐흐..."

동섭은 대혁이 생각하는 몹쓸짓은 하지 않았지만, 자신에게 말이 많다고 하는 대혁을 골탕먹이기 위해 일부러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이를 알리 없는 대혁은 부러워하면서도 화를 낼수박에 없었다.

"내 네놈이 한짓을 연월이에게 전부 알려줄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가씨를 먼저 찾아야하지 않겠느냐?"

"안그래도 찾으러 가고 있지 않느냐? 이속도로 가면 삼,사일후면 따라잡을수 있을것이다."

"삼,사일이라... 그렇다면 태범님께서는 이틀뒤면 아가씨를 찾을수 있겠구나."

"태범? 그렇지. 그 자식도 연월이를 찾고있었지."

대혁은 잊고있던 태범의 존재가 떠올랐다. 그리고 자신보다 앞서있다는 사실도 알게됬다.

"좋다. 어차피 우리가 태범님을 따라잡을수는 없을 터. 천천히가도 아가씨만 괜찮다면 나는 상관없다."

"무슨 소리를 하는것이냐? 네놈이 연월을 생각하는 마음이 그것밖에 안되는 것이냐? 서두르거라. 하루빨리 연월이를 찾아야한다."

대혁은 동섭이 따라올수 없을만큼 빠른 걸음걸이로 걷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