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일때문에 사람 만날 일 있어서 나갔는데 스몰토크 하다가 나한테 뭘 좋아하냐는거야

그래서 평소에 말하던대로 말하려 했는데 문득 갑자기 '내가 이것들을 진짜 좋아하는건가?'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자리는 잘 마무리 하고 집에 오는 길에 뭔가 기분이 묘해서 집에 걸어가면서 생각을 해봤는데

뭔가 나는 '이게 좋다!' 보다는 '이게 익숙하니까 이거 고를래.' 하는 식의 선택을 하면서 살아왔더라고

여행을 가서도 멋지다 하는 풍경을 봐도 별다른 감흥을 못느꼈고, 스포츠 팀을 응원해본 적도 없고, 연예인에 푹 빠져본 적도 없어. 다른 사람들은 애니를 보든 게임을 하든 운동을 하든 뭔가에 푹 빠져서 관련된걸 깊게 파고드는데 난 그런 경험이 없었어. 있어도 도피성에 가까운 몰두였고.

여행가서는 예상 외의 상황이 연속적으로 생기니까 무의식적으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다.'라고 자물쇠를 걸었고, 스포츠팀이나 연예인은 '어차피 날 알지도 못하는데 뭐하러 저 사람들한테 기를쓰나.' 하는 자물쇠를 걸었어.

그러면서도 기껏 소개해준 사람한테 '별 감흥 없네요.' 하는건 사회성 떨어지는 행동이라 생각해서 오바해서 흥미로운척, 즐거운척 했어. 근데 이런 행동들 때문인지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되서 내가 좋아해서 좋아한건지 아니면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좋아하는척 했던건지 구분이 안되네.

연애도 마찬가지로 짝사랑은 많이 해봤는데 일찍이 포기하는 경험이 많았던거같아. 어릴때부터 내가 솔직해지면 상대방이 부담스러워하거나 피하는게 느껴져서 '솔직함=나쁜거' 라고 박혔나봐. 대시하는거는 찝쩍거리는거라고 느껴졌고, 뭔가 상대가 떨떠름할까봐 발 뺄 구석 하나씩 만들어두고 그런게 많았음. 그런 쪽에서 수동적이기도 했고.

상대가 날 징그러워하는? 기피하는? 그런 상황에서 내가 그 사람한테 했던 행동들이 플래시백 되면서 수치심이 느껴지고 그게 싫어서 수동적인 타입이 됐음

다들 자기 내면을 드러내고 살지는 않잖아. 그렇다고 꽁꽁 싸매지도 않고. 어릴때는 전자였다가 점점 커가면거 이런저런 꼴 보고 하다보니 후자가 됐어. 적당한 경계를 모르다보니까 아예 극단적으로 치닫아버렸네.

실망하기 싫어서 기대를 안하는거같아. 지금까지의 연애에서 차인것도 여태 인연이 아니었다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얼마나 만났다고 내가 널 믿고 내 모든걸 보여주냐' 하는 내 태도가 알게모르게 지치게 했던거 아닐까

내가 원하는 반응이 안나오면 불안함 - 불안해서 시도조차 안함 - 원치 않는 반응이 나올것같으면 회피함
그러다 보니 도덕적 비난을 받을 상황을 애초부터 예방하려고함. 그게 타인과 관계를 맺지 않는 쪽으로 연결되는거고. 어떻게 보면 이것도 방어기제일수도 있을듯.

호불호가 강하지 않고 이성적으로 있으려 하고 혼자서도 잘 지내는게 내 장점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나는 나도 모르게 내 청춘을 건조하게 흘려보내버렸네

새벽에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