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내내 아이들이랑 뒹굴었다.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방바닥을 구르며 웃고 떠들고, 의미 없는 소리를 지르며 재잘댄다.  


수아랑 토이 스토리 4를 봤다.  

제일 좋은 순간은 사실, 함께 낮잠 잘 때다.  


눈을 떴다.  

수아는 옆에서 자고 있다.  

아내랑 수호도 안방에서 잠들었는지, 집 안이 이상하리만큼 고요하다.  


잠든 딸을 물끄러미 본다.  

언제 이렇게 컸나 싶다.  

침대 밖으로 쑥 삐져나온 다리를 본다.  

발이 찰까 봐, 습관처럼 다리를 주물러 준다.  


‘쭉쭉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해오던 의식 같은 거다.  

수아는 늘 “아빠, 쭉쭉이 해줘”라고 했다.  


토끼 인형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으면서 다리 마사지를 받을 때,  

아이 표정은 세상 다 가진 사람처럼 편안해진다.  


손아귀 힘이 빠지면 등과 배를 쓰다듬는다.  

잠시 숨을 고르면 힘이 다시 차오르고,  

그러면 또 쭉쭉이를 한다.  


신생아 때부터 지금까지, 거의 매일 반복된 의식이다.  

요즘은 예전보다 금세 잠든다.  

치열한 공방전 같은 밤은 이제 많이 줄었다.  


같이 누워 조금만 쓰다듬어 줘도 5분 컷이다.  

예전에는 어떻게든 잠을 이기려 했다.  

아빠랑 이 현실 세계에 조금이라도 더 머물고 싶어서였을까.  


사랑한다고 속삭인다.  

배와 등을 쓰다듬고, 이마와 볼에 입을 맞춘다.  

아이는 만족한 얼굴로 스르륵 꿈나라로 떨어져 간다.  


아이가 잠들면, 나는 내 방으로 ‘도피’한다.  

고양이 보배까지 셋이 좁은 침대에서 자는 건 꽤나 고역이다.  


수아는 안쪽, 보배는 가장자리.  

나는 그 사이에 끼어 인간 방파제가 된다.  

수아의 뒤척임으로부터 보배를 지켜야 한다.  


선잠에서 깨어, 내 방 침대로 오니 그제야 천국이다.  

슈퍼싱글 침대에 보배와 나, 둘만 남았다.  


녀석을 쓰다듬는다.  

골골송이 시작된다.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클수록, 이상하게 내 영혼도 같이 치유되는 느낌이다.  


고양이는 뼈가 부러졌을 때도 이 소리를 낸다고 한다.  

골골송의 진동수가 뼈가 붙는 걸 돕는다는 말도 있다.  

뼈를 붙이는 치유의 노래다.  


그러다 하늘로 먼저 떠난 녀석들이 떠오른다.  

오쵸, 쵸파, 그리고 오리.  


내 가슴 위에서 골골대던 오리가 특히 그립다.  

수다스럽고 발랄하던 녀석.  


수아는 길고양이를 볼 때마다 오리를 찾는다.  

한 달에 한 번, 우리 가족은 황령산 기슭으로 간다.  

오리 무덤이 그곳에 있다.  


수아는 그 앞에서 잠깐 멍하니 선다.  

어린 나이에도 ‘죽음’이라는 걸 생각하는 것 같다.  


오리와의 시간들이 아이를 조금 일찍 철학자로 만들어 버렸다.  


쨍한 태양빛처럼 튀어나오는 상관의 에너지를 쏟아내다가,  

어느새 진지한 얼굴로 편인의 사색 속으로 빠져든다.  


경험을 차갑게 정제하는 듯한 깊은 눈.  

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아이.  


그리고 지금, 내 품에 안겨 잠든 딸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그 작은 얼굴에서, 나는 오늘도 우주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