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 우리집은 비디오 가게였다.
가게 한켠에 딸린 방하나 부엌하나에서 자랐다.
좀 더 시간이 지난 중고등학교때는 우리집은 식당이였다.
식당 한켠에 딸린 방하나와 창고를 개조한 잠자리가 우리집이였다.
부모님이 온전한 집을 가지신건 내나이 스물다섯이 넘는 나이였다.
나름 얼리어답터에 바지런한 아부지덕에
임대주택으로 20평 아파트에 당첨된게
부모님 삶의 최초의 "집"이였다.
안정적인 거주환경을 갖춘 집은 확실히 효과가 있다.
평생 바람 잘 날 없었던 우리 가족에 최초의 평화가 찾아왔다.
부모님도 더 이상 자영업하며 고생하시지 않고
많지않지만 고정적인 급여를 받고 생활하며 노후자금을 모으고 계신다.
스무살에 독립한 나의 첫 집은 5평 남짓한 원룸이였다.
나름 공부 열심히 해서 서울로 상경해서 얻은 첫 월세집이였다.
그것도 잘 씻지않는 룸메이트를 동반한.
성격이 쾌활했던 그친구는 잘 씻지 않았다.
그게 너무너무 힘들었다.
워낙 작아 자다보면 자꾸 닿게 되는데
정말이지 몸에서 오징어냄새가 나는게 뭔지 처음 알았다.
성격이 쾌활했던 그 친구와는 결국 친해지지 못하고
군대에 갔다.
5평 남짓한 내무반에 10명 가까이 같이 생활했다.
나한테 허락된건 정말 0.몇 평뿐인걸까.
제대후 누나와 함께 10평 남짓 투룸에서 살았다.
생활패턴이 달랐던지라 나는 2평 남짓한 내 방에서 지냈다.
27살 넘어 첫 직업을 갖게되곤 고시원에서 2년간 살았다.
1.5평 남짓한 그곳에서...제대로 누우면 머리가 꺾여서
항상 새우잠을 잤던 기억이 난다.
처음 회사다운 회사에 들어가 월급을 받을 때엔
그래도 5평 가량되는 빌라 1층에 살았다.
주차장 방이라고들 한다.
아마 관리인 아저씨를 위한 방이였겠지만,
그 주차장 방은,
서울의 무서운 물가덕에 관리인 대신
셋방살이 총각을 8년간 보듬었다.
결혼하고 얻은 최초의 전세집은 12평 투룸 빌라였다.
이 무렵 나는 처음으로 "집"이란 것에 감동받은 기억이 난다.
집이라는곳이 그냥 잠만자는곳이 아닌
거실에서 쇼파에 앉아 티비를 보고,
작은 방에서 거울을 보며 옷을 갈아입고 컴퓨터를 하고
안방에선 킹사이즈 침대에서 잠을 잤다.
그리고 가진것도 없는 나를 사랑해주는 와이프를 만나서
그 집에서 신혼집으로 6년간 알콩달콩 살았다.
갑자기 기억나네.
제목도 기억안나는 영화인데,
복싱 챔피언이 나락으로 갔다가 다시 재기하는 영화.
그 챔피언이 나락으로 가서 살던 집이 이 빌라보다 더 넓더라 ㅋ
나름 여기 집값이 3억이야. 한강 근처거든.
빌라 12평에 내돈 5천, 전세대출 2억으로 살다가
그리고 6년 후 14억에 팔리면서 재계약 못하고 쫒겨남.
신통기획인지 뭔지 집값을 신통하게 올려버렸더라.
이번에 재계약 불발로 이사를 간다.
40년가까이 모은돈과 대출을 받아서
남들이 우스개소리로 빈민이라 일컫는 노도강에
내 나이와 버금가는 구축 아파트 15평을 매매했다.
집산게 어디냐 어디서 자랑질이냐 라고
말할수도 있겠지만, 내 40년간의 삶의 결정체가
스러져가는 아파트 15평이라는 것도 참 아이러니 하다.
지금 집보다 3평이나 넓어졌것만,
현관에서 집으로 들어오는 부분과
각 방으로 이동하는 동선만 넓어졌지, 방은 오히려 작아졌다.
그래도 나와 와이프 이름으로 계약금을 치르고 그날밤에 엉엉 울었다.
내가 정말 바라는건, 열심히 일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아이를 키우며 행복하게 사는 보통의 삶인데.
어느덧 보통의 삶마저도
그저 동경하다가 이룰 수 없는 꿈처럼 느껴진다.
나, 그래도,
경제적으론 부족했지만 사랑을 주시는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
서울에 있는 대학 나오고, 나라지키고,
제대한 이후로 1달 이상 놀아본 적 없이 회사다니고,
그 와중에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집이 너무 좁아 아이 키울 엄두가 안나서,
정말 입던 빤스까지 팔아서 집도 살만큼 열심히 살았는데
아직도 서울의 삶은 나에게 20평 조차 허락해주질 않는다.
"영끌"
이미 친숙한 신조어로 대중화 되버렸지만
나한테 있어 저 단어는,
그마만큼 젊은 친구들이 영혼을 저당잡혀 세상에 내가 이만큼 존재했었노라 울부짖는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술먹고 주절주절 한탄해봤더니 잠시나마 후련한 느낌이네.
나도 넓은 집에서,
아이 낳고 와이프와 행복하게, 인간답게 살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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