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는 그 어떤 사적인 정보도 말해선 안되고 물어봐서도 안되며 들었어도 잊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 모임의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또한, 온전한 발언권을 위해 개인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일종의 의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모임을 AA모임이라 하는데 자신의 상처나 과거를 고백하고 서로 위로하며 

상처를 치유해 나간다는 목적을 공유하는 사적 모임이기 때문에 이런 룰이 존재한다.

서로의 명칭은 원장이 허가한 닉네임으로 정해지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다.

아예 그냥 원장이 이거로 하라, 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원장의 허가가 필요한 이유는

개인의 정보를 노출시킬 수 있는 닉네임을 무의식적으로 생각해버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

내가 사용하는 닉네임은 머스탱14다. 원장이 왜 이런 닉네임을 정했느냐 묻길래 

내가 청마띠니깐, 어디 공항에 있다는 머스탱이라는 말 동상에서 따왔고, 생일 숫자를 붙였다니깐

원장은 처음엔 다른 닉네임으로 할 것을 권유했다. 이 모임에선 나이도 말하지 않기 때문인데,

상대방이 내 나이를 알아도 내가 청마띠라고 예쌍하지 못할테니 상관 없을 것이다.

나는 빠른 년생으로 청마띠를 가져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내 나이를 알게 되어도 양띠라 생각하는게 

일반적이라 일종의 페이크를 걸어둔 닉네임이라 나는 이것을 쓰고 싶다고 하니 원장이 좋은 생각이라했다.

원장은 개인적으로 모든 참가자가 나 처럼 페이크를 한 둘 섞어 놓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우린 서로의 이름도 모르고 나이도 명확히 모르고 직업도 모르고  출신지나 학교도 모른다.

심지어 다음 모임에 나오는지도 알지 못 하고 우리는 오직 참가자의 입에서 나온 그 사람의 상처만을 공유한다.

한번은 상당한 미녀이신 분이 합류하셨는데, 기존 회원 하나가 모가지 당했다. 이유는 번호를 물어봐서.

우린 마치 미군이 동성애에 대응하듯이 묻지도 말하지도 않는다는 룰을 철벽같이 고집하는 집단이다.

우리가 특별한 비밀결사인건 아니고 이게 AA모임에서 쉽사리 찾아볼 수 있는 기본적인 형태라서 그렇다.

발표자는 벽을 바라보게 끔 놔둔 의자에 앉아서 벽을 향해서 자신의 삶과 상처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여기서 몇가지 금기가 추가된다. 절대로, 비판,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 조언이나 충고 역시 금지된다.

정 그 사람을 돕고 싶은 경우는 원장을 통해서만 도움을 줄 수 있고 마니또 같은 그 도우미가 누군지

원장은 절대 이야기하지 않는다. 회원비가 있긴 하지만 월 최대 4회 참여 가능한데 2만원이다.

회당 5천원인 셈이다. 원장의 자선활동을 바탕으로 유지할 수 있는 모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서로 온전히 남이어야 속사정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기에 우린 온전히 타인으로서 지내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럴 거까지 있나 싶은 규칙이 있는데

만약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서 상대에게 건냈다면, 수다를 떠는게 아니라 바로 자리를 이탈해야 한다.

사실 수다 자체가 금지되어 있는 모임이라는 게 더 알맞고 타 AA모임과 다른 점은 단체복을 입는다는 거다.

서로의 재력의 차이를 짐작할 수 없게끔 건물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단체복의 환복을 끝마친 뒤여야 하고, 

이 건물에는 주차장이 없다. 즉, 어딘가 차를 대두고 걸어오던가, 택시를 타고 오던가 둘중 하나여야 한다.

그렇다면, 이런 물음이 따라붙기 마련이다. 그러면 그 AA모임 참여자라는 것이 

너무 티가 나지 않는가. 티가 난다. 그런데 그런거 신경 쓸 여유가 있는 사람은 이 모임까지 오지 않는다.

솔직히 나는 추천을 받아서 이 모임에 나가게 된 사람인데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첫번 째 모임에 정식으로 참여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원장이 

"여긴 머스탱 일사님이신데 머스탱님이라 부르시면 됩니다."가 내 소개의 끝이었다. 

이 이상 자신을 소개할 필요도 없거니와 소개 해서도 안된다는 게 우리가 지켜야 하는 규칙이다.

생각보다 많더라고. 온전히 남이 아니라면 들려주지 못할 정도로 끔찍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참여자의 상처를 과장되게 말해서도 안 되고 얕봐서도 안 된다. 감기 몸살에 걸려 죽을거 같이 힘듭니다, 라고 말해도 이겨낼 수 있을 겁니다, 감기는 곧 지나가기 마련이에요, 감기에는 배껍질을 다려 먹으면 좋다 들었습니다, 이런 말만 해야 한다. 여기서 금지 되는게 하나 있는데 "저 역시 그러한"은 절대적으로 금지다. 

나는...타인이어야만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사연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인원인데, 나는 내 트라우마에 서서히 잡아 먹히는 유형이라서 누군가에게 트라우마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사람이라서 이 모임이 나에게 유익하다. 가끔 내가 웃대에 내 트라우마에 대한, 가정사에 대한 이야기를 간추려서 적어 놓은 경우가 있는데 그게 내가 내 과거의 상처로부터 나 자신을 방어하는 일종의 방어 기제라고 볼 수 있다. 이걸 하지 못하면 나는 우울증이란 질병에 시들어 죽어버리고 말 것이다.

한번은 원장님에게 그런데 선생님은 뭐 어디 목사님이라도 되시냐, 이런 모임은 생각외로 관리비도 많이 들고 신경 쓸 것도 많은데다가 이 건물 자체도 임대가 아닌 것 같은데 뭐하시는 분이냐, 물은 적이 있는데 원장님은 본인 역시 규칙에 묶여 있는 같은 처지이니 회원님이 이해 하시는 방향대로 이해하시면 된다고 하시더라고. 

뭔가...신비주의 비밀결사 같고 멋있지 않냐. 근데 그냥 내향인 그루밍센터라고 이해하면 되는 모임임..

밑에 모임에서 현대하청인 척 한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길래 정말로 모든 것을 감춘 채 만나는 모임도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어서 몇자 적어봤어. 근데 착각을 하면 안돼. 이 모임에 나오는 사람들은 그나마 나은거야.

정말 위험한 수준에 몰려있는 사람들은 아무리 타인이고, 다시 만날 일 없는 사람들이라는 

전제가 깔려도 자신의 트라우마를 이야기 할 수 없는 사람들이고, 그런 사람들은 많이 있어.

웃대에도 한 1만명 정도는 있을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