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것, 피바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

난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곤 했다.





야자시간엔 물론 자율적인 학습을 해야

했지만 한창 성장하는 몸뚱이를 지니고 있던

난 먹고 있어도 배가 고팠다.





이상한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마른체형이란 사실이다.





아무튼 그 시절 난 계속 먹었다.

먹고, 먹고, 또 먹었다.

마치 폭식증에 걸린 환자처럼 먹어댔다.





그래서 인지 다행스럽게도

중학교 3학년때까지만 해도 155를 넘지 못하던 키가

고등학교 3년간 23센티미터나 클 수 있었다.






큰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각설하고 식욕 때문에 겪었던

애로사항을 잠시 떠들어 볼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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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여느날과 다를 것이 없는

평범한 야자시간이었다.





우리 학교엔 피바다라고 불리우는 무서운

수학 선생님이 한분 계셨는데 평소엔 부드럽지만

한번 야마가 돌면 피를 볼때까지 애들을 팬다고

해서 피바다란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야자시간에 그 선생님이 감독을 하는 날이면

제 아무리 난다긴다 하는 녀석들도 복날 개처럼

꼬리를 말고 입도 닥치고 조용히 잠만 잤다.




"누가 떠드나?"




교실 문앞에 서서 이말 한마디만 조용히

읊조리고 가면 그 후 30분 간은 정말 아무도

감히 들여마신 숨을 성대로 진동시킬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사람이란게 참 이상해서 하지 말라고

하면 어쩐지 더 하고 싶어지더라.




야자시간엔 당연하게도 취식이 금지되어 있었지만

내 책가방엔 많은 먹을 것들이 산재해 있었다.

그 중 난 생라면과 빵을 꺼내들고 창문을 열었다.




"뭐해 븅신아?"

"시꺼 넌 공부나 해."




난 은밀히 월담을 했다.

4층이었던 교실 창가에 자리를 두고 있던 나였기에

창문밖으로 한사람 정도는 앉아 있을 만한 창문 밑 지지대를

찾아 그곳으로 조심스레 몸을 옮겼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는 그곳은 정말

위험천만 장소였다.

떨어지면 필경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러나 수차례 이 방법을 사용한 나였는지라 노하우가

쌓여 별다른 어려움 없이 자리를 잡고 앉을 수 있었다.




라면을 부숴서 스프를 잘게 뿌린 후 뿌셔뿌셔

처럼 잘 흔드니 맛있는 생라면이 붉은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드득, 아득...




몰래 먹는 이 맛은 정말 좋았다.

빵도 까서 한입 베어무니 지상 낙원이

바로 이곳이었다.




"씹쌔야. 나도 쫌만 줘."

"뭐야 븅신아. 내다보지 마."

"나도 줘. 니만 먹냐? 선생님 한테 다 이른다."




그러나 옆자리에 앉은 녀석이

협박성 멘트로 날 위협하며 먹을 것의 공유를

요구해 왔다.




"에이 개새... 있다 쉬는 시간에 줄게."

"싫어. 지금 줘."

"어떻게 줘. 너 지금 주면 먹다가 걸린단 말야."

"나도 그쪽으로 가면 돠지."

"어, 안돼안돼."




그러나 녀석은 내 만류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로

월담을 감행해 내 옆자리로 몸을 낑궜다.





혼자서도 부족한 자리에 녀석까지 오니

정말 금방이라도 떨어져 버릴것만 같이 위태로운

지경이었다.




"너도 진짜 참을성 없다."

"지는... 히히 맛있다."




우리 둘은 비좁고 짜릿한 비밀 공간에서

먹을 것을 함께 나누며 도타운 우정을 쌓아갔다.




"누가 떠드나? 어라? 저기 빈자리는 뭔가?"

"......"

"화, 화장실에 갔습니다."




누군가 그렇게 변명을 했지만




"내가 지금 화장실에 담배 피는놈 있나 확인하고 오는 길인데

화장실에 아무도 없다."

"......"




"이새끼들 전부 책상위로 올라가."




늘 들고 다니던 몽둥이를 책상에 내려치며

수학선생님 피바다는 소리쳤다.




"친구를 감싸주는게 우정이냐? 그런게 우정이냐?

진정한 우정은 친구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는 거다."




창문 난간에 몸을 웅크린 우린 좆됐다를

연발하며 불안함에 어쩔줄을 몰랐다.




"다 무릎꿇어 새끼들아."




책상위에 무릎을 꿇은 친구들의 허벅지를

피바다의 몽둥이가 스치고 지나갔다.




퍽퍽퍽퍽퍽.




한사람당 다섯대씩.

맞는 소리가 들릴때마다 우린 본능적으로

몸을 움찔거렸다.




"야, 대식이도 오늘은 안째고 남아 있어."

"진짜? 신발... 대식이가?"




대식이는 정학을 많이 맞아서 그냥 일년을 꿇었다.

매우 흉폭한 성격의 소유자로 녀석은

한마디로 매우 잔인한 놈이었다.




길을 가다가 어깨를 부딪힌 정도로 상대를 반쯤

죽여놓는 엄청 잔인한 놈이 바로 대식이었다.




그 잔인한 대식이가 나 때문에 허벅지를 무려

다섯대나 맞고 있었다.




"신발, 그냥 우리 여기서 뛰어 내릴까?"




진짜 1층만 더 낮았어도 뛰어내렸을지 모른다.

아무튼 우린 피바다가 나갈때까지 그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추천에 목마른 米소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