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게 약인 경우가 딱 이 경우가 아닌가 싶다.


엄마가 내 컴터로 뭘 프린트한다면서 구글 로그인을 한 다음 로가웃을 안하셨고


그 사실을 모르는 채 나는 구글 포토에 들어갔다가 엄마의 불륜 사진들을 목격하고 말았어.


엄마는 무려 3년 동안이나 어떤 남자와 국내외의 리조트를 여행하며 관계를 지속해온 것 같아


상간남은 무려 경찰공무원 경위이고 （제복을 입은 사진을 발견） 이름 검색해보니까 소속 경찰서에 진급 기사까지 볼 수 있네.


지금 나는 26년 인생 최대의 위기를 겪고 있다. 이걸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이 사실을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얘기를 해야 하지? 어떻게 해결하는 게 가장 좋은 거지?


불륜은 분명 비열한 배신 행위다. 3년 동안이나 엄마가 나와 아빠를 속이면서 비겁한 짓을 해왔다는 사실은 정말로 비난 받을 일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불륜은 어디까지나 엄마와 아빠 사이의 일이고, 엄마가 배신한 건 아빠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해.


어릴 때부터 엄마 아빠의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엄마는 나에게 정말 잘 해주셨어.


엄마는 사업가였고, 바쁜 와중에도 나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주셨어.


나는 엄마를 정말로 사랑해. 그건 지금도 변함이 없어.


그래서 마음이 정말로 복잡해. 나는 얼만큼 분노해야 하는가. 분노하긴 해야 하는 건가.


내가 초등학생때 부모님은 이혼 이야기를 하셨지만 이혼을 실제로 하지는 않으셨고 별거를 하지도 않았어. （각방은 썼지）


아빠는 결혼생활 내내 회사를 다니며 가족을 성실하게 부양했어.


엄마는 한때는 맞벌이를 했고 많이 벌었지만 마지막에 한 사업이 실패하면서 은퇴를 했고 지금은 아빠만 버는 외벌이 부부지.


아빠는 무뚝뚝하고 정이 없는 편이긴 하지만, 성실하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이야. 결코 배우자의 배신을 당하고 살아도 될 만한 사람은 아니야.


내가 알게 된 것을 아빠도 알게 되면 아빠가 얼마나 충격을 받고 슬퍼하실까? 자신이 평생 헌신해온 배우자에게 배신당했다는 사실이 얼마나 좌절스러울까?


지금의 아빠의 삶은 만족스러워보이고, 엄마 또한 만족스러워보여.


내가 알게 된 이 비밀을 둘 사이에 드러낸다면, 두분은 배신감, 좌절감, 수치감, 증오 속에서 소송을 할 것이고, 내가 태어나 자라온 가정이라는 고향은 그렇게 이 세상에서 사라지겠지.


나는 사회의 정의 때문에 이 비밀을 폭로해야 하는 건가?


평온했던 우리 가족의 일상을 혼돈 속으로 밀어 넣고 어쩌면 평생 지속될지도 모르는 고통을 유발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가?


기억을 지울 수만 있다면, 지우고 싶어.


하지만 지금 엄마는 아빠가 벌어서 산 집에서 아빠가 번 돈으로 생활하면서, 전혀 다른 남자와 몰래 연애를 하고 있어.


나는 이것이 아빠에게 부당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 상간남이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기를 바라.


엄마 또한, 어른으로써 남편에게 한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기를 바라고.


그리고 아빠가 더 이상 부당한 취급을 받지 않고 명예를 회복하기를 바라.


이것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나에게만은 따뜻했던 사랑하는 엄마와 아빠에게 수치와 좌절의 폭풍을 가져올 판도라의 상자를 선뜻 열기가 너무 겁난다.


내가 안주해왔던, 내가 사랑하던 가정의 평온이 그동안 엄마의 부당한 행위에 대한 아빠의 무지에 의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 슬프다.



일단 나는 엄마와 둘이서 술 한잔 하면서 내가 보게 된 것을 솔직히 말씀드릴 생각이야.

하지만 엄마 보고 그 사람과 관계를 중단하라고 요구할 권리가 나에게 있는지 혼란스러워.


그리고 그 상간남에게는 불행한 일이겠지만 나는 그 사람의 이름, 소속, 직위, 집 주소에 전화번호까지 알고 있는 상황이야.

검색해보니까 소속 경찰청장에 불륜 사실에 대한 진정서를 제출하고, 그 사람의 가족에게 사실을 알리는 것까지는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

공무원의 불륜으로 해임이나 파면은 안 된다는 판례가 있지만, 만약 공무원 그 자신도 유부남일 경우에는 해임이 정당하다는 판례도 있더라고.

나는 개인적인 복수심 때문에 합법적인 범위에서 그 상간남에게 응징을 가하고 싶어.

하지만 혹시 아빠가 해야 하는 일을 내가 가로채는 것은 아닐까?

나는 배신을 당한 당사자가 아닌데, 이 일에서 나의 역할은 어디까지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빠에게 말하는 것, 이건 정말 너무나 힘든 일이다.

아빠는 원래 좀 우울한 사람이고, 체면도 중시하는 사람이야.

이 일은 아빠에게 엄청난 타격을 줄 거라는 확신이 들어. 그걸 내가 견뎌낼 수 있을까?


그리고 부모님과 나의 관계는 이전과 같을까?

내가 입을 다문다면, 같을 것이고, 말한다면 분명 달라질 것인데..

난 어떡해야 하지?


아무렇게나 푸념한 긴 글 읽어줘서 정말 고마워. 다들 새해에는 행복해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