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는 전쟁 때 만나셨다

중공군에게 밀려 퇴각중이던 군인들 중에

우리 할아버지가 계셨고

동대문에서 지치고 상처입은 군인들을 먹이기 위해

전쟁 중 귀하디 귀한 쌀과 감자를 가져다 죽을 끓이던

동대문의 여러 아낙들 사이에 우리 할머니가 계셨다

군인들은 자기 먹을 것까지 가져와 자신들을 먹이려하는

아낙들의 마음에 울었고

죽을 건내주시며 "죽지 마라 엄마한테 가야지"

하는 말을 들으며 또 한번 울었다

우리 할아버지도 죽을 받은 뒤에 먹지도 못할 정도로

서글프게 울고 계셨다

우리 할머니는 할아버지한테 왜 그리 슬피 우느냐고 물으셨고

할아버지는 돌아갈 어머니가 계시지 않아서

울고 있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그러면 전쟁이 끝나면 나에게 오라고 말하셨다

할아버지는 그래도 되느냐고 물으셨고

할머니는 나라 지키는 듬직한 어깨에 나도 기대고 싶다고

"피도 총도 눈물도 없는 곳에서 같이 웃어봐요"

할아버지는 70년이 지나서도 이 한 문장 만큼은

아직까지 온전히 기억하신다

그렇게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안고 꼭 돌아오겠다 다짐하셨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나눈 대화를

전우 여럿이 들었고

이건 전쟁 중에 함께 웃으며 이야기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이후 전우 중 한 명이 갑작스레 날아온 폭격에 맞으셨는데

당연히 할아버지는 구하려고 하셨지만

다친 전우는 손사래치며 자기는 됐으니까

또 폭격이 오기전에 피하라고 말하셨다

"우리 진만이 결혼 해야지... 가라 진만아"

할아버지는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했지만

두번째 날아온 폭격에 할아버지도 부상을 입고 도망치셨다

그렇게 오랜시간 죽고 사는 선택의 연속이었지만

할아버지는 살아남으셨고

동대문으로 다시 찾아가셨다

거의다 부서져 내려앉은 건물들,

부서진 집 앞에서 울고있는 가족들,

그리고 헤어진 가족을 찾는 사람들이 있었다

동대문은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는 몇 안되는 건물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동대문으로 모였다

거기서 우는 아이 하나를 데리고

아이의 부모님을 찾아주고 계시는 할머니도 계셨다

그렇게 이름도 모르던 두 분은 다시 만났고

2남매를 낳아 기르셨다

할아버지는 산에 살면서 여자를 제대로 만난 적도

사람들과 만난 적도 거의 없으셨는데

할머니를 만난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고 하셨다

그리고 나에게도 늘 말하시는게 있었는데

전쟁 중에도 아이가 태어나는 이유는

당장 내일 죽을지도 모르니 고민하지 않고

도전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셨다

나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쭉 들었고

할아버지가 지키신 아름다운 나라에서

나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잠깐이지만 학교에서 조금 친했던 친구에게

같이 밥먹으면서 할 이야기가 있다고 말했고

그 친구는 흔쾌히 나와주었다

나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되새기며

나의 삶에도 기적이 생기리라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친구에게 내 마음과 생각을 전했고

"아 존나 더러워... "

기적은 생기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조금 원망스러웠지만

할아버지가 대머리라서 참았다

그래 이게 옳게 된 나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