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군함의 종류와 직별별로 하는 일.
군함의 종류는 은근히 많다. 내가 전역한 직후에 쓰는 거면 다 기억나서 쓸 텐데, 지금은 기억이 안 나는 것들도 있기 때문에 대강 설명하겠음. 그리고 일일이 다 설명하는 것도 지루하니까 최대한 간결하게 해보겠음.
먼저, 1급함부터 소개를 하면서 각 직별별로 무슨 일을 하는지 대강 설명을 하겠음. 일단 현재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상륙함인 독도함. 이 배는 거의 경항모 급으로 탑승 인원이 300명에 육박하는 거대 군함임. 보통 상륙함은 갑판병의 무덤이라고 불릴 정도로 빡센데, 이 독도함은 일반 상륙함들과는 비교를 불허하는 군함임. 그래 봤자 미 항공모함에 비하면 쨉도 안 되긴 하지만. 여담으로, 파병 때문에 싱가폴 잠깐 들렀을 때 미 항모를 본 적이 있는데 그건 진짜 떠다니는 섬인 줄 알았다. 아무튼 독도함은 큰 만큼 갑판병들에겐 지옥이다. 이곳은 갑판병의 수만 해도 50명에 이르니 이곳에 발령받은 갑판병이라면, 6개월을 지옥처럼 보내고 최대한 빨리 육상으로 발령을 가는 게 좋다. 아니면 청해부대를 지원해라. 파병도 빡세지만, 돈이라도 많이 버는 게 훨씬 낫다. 내가 파병 갔을 때 독도함 타다 온 후임이 있었는데 걔가 말하길 구축함은 독도함에 비하면 꿀이라고 했다. 독도함은 상륙함이라서 비행갑판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다른 군함처럼 큰 함포가 없다. 그래서 병기가 가면 좀 꿀임. 근데 기관 관련 직별이 독도함 가면 좀 고생을 할 수도 있다. 특히 보수병은 고생을 많이 할 거임. 아직까지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독도함이 좀 안 좋은 사고가 많이 나서 유독 소화/방수 훈련을 많이 함. 진해에 정박해 있으면 매일 저녁마다 독도함 소화/방수 훈련하는 방송 소리가 들림. 아무튼 너무 길게 써버렸으니 마무리.
다음은 이지스함. 현재 이지스함은 세종대왕함, 율곡이이함, 서애유성룡함 세 척이 있다. 얘네는 독도함 다음으로 큰 배다. 그런데 독도함에 비해선 참 작은 크기이다. 그래도 일반 구축함보다는 큰 크기라서 여기도 갑판병들에겐 일이 빡세다. 게다가 이지스함들은 출동도 꽤 자주 나간다. 동해나 서해로 자주 나가기 때문에 배멀미 심한 사람들은 최대한 피하자. 배가 커서 웬만하면 배멀미 잘 안 하긴 하지만 그래도 심한 사람들은 할 수도 있으니 주의. 그리고 이지스함은 외국을 나갈 기회가 림팩 훈련 말고는 아직 별로 없기 때문에 무슨 기대를 할 필요가 없다. 그냥 육상 발령 나길 기다리는 게 좋다. 근데 배 생활이 몸에 맞으면 굳이 앵카를 박아도 상관은 없다.
여기서 잠깐. 앵카를 박는다는 것은 전역할 때까지 계속 배에서 근무한다는 뜻이다. 정식 명칭이 함상근무 서약서였나 뭐였나 잘 기억이 안 나는데 보통 앵카 서약서라고 부른다. 그걸 쓰면 전역할 때까지 배를 타면 된다. 그걸 쓰지 않는다면 최소 6개월 최대 1년 사이에 육상으로 발령이 난다. 근데 보통 6개월~7개월 사이에 다 발령이 난다. 만약 발령이 나지 않는다? 그러면 강제앵카. 즉, 강제로 전역할 때까지 배를 타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보통 위에 선임이 없고 경험 적은 후임들이 많을 때 발생한다. 신병이 오면 가르칠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렇다. 그리고 또 다른 경우는 배가 파병, 림팩, 순항훈련 등 6개월 이상씩 외국에 나갔다 오는 경우이다. 이때는 거의 무조건 전역할 때까지 배를 타야 된다. 필자는 참수리 탈 때 앵카를 박았는데 파병 지원해서 간 이후 구축함에서 전역을 했다. 젠장...
다음으로 구축함. 구축함은 1차선과 2차선이 있다. 이는 옛날 구축함과 신식 구축함의 차이이다. 구축함 1차선은 광개토대왕함, 을지문덕함, 양만춘함 세 척이 있다. 내가 복무할 때 기준으로, 광개토대왕함은 1함대, 을지문덕함, 양만춘함은 2함대 소속이었다. 그래서 1함대에서 1급함 지원하면 광개토대왕함 혹은 경북함 같은 프리깃을 탈 수가 있다. 근데 구축함 1차선 같은 경우는 노후화가 많이 진행이 돼서 수리를 자주 하는 편이다. 그래서 내가 구축함 2차선 탈 때 을지문덕이랑 양만춘 대신 2함대 출동 대타를 나갔었다. 그것도 말년에. 지금 생각해도 빡친다. 구축함 1차선 같은 경우는 원래 순항 훈련이나 림팩 같은 외국 훈련을 나갔었는데 2차선이 대신 나가면서부터 그냥 조국의 바다를 수호하는 일만 한다. 그리고 애들이 늙어서 이제 멀리 나가기가 힘들다. 그러니까 구축함 1차선을 타고 외국을 나갈 거란 희망은 가지지 말자. 파병을 지원하는 길밖에 없다.
여기서 잠깐. 청해부대 파병, 림팩 훈련, 순항 훈련에 대해서 짤막하게 설명하겠다. 청해부대 파병은 소말리아해역호송전대로, 소말리아 해적들의 위협으로부터 상선을 지키는 일을 한다. 약 6개월 동안 임무를 하는데, 가는 시간 한 달, 호위 임무 네 달, 오는 시간 한 달이다. 가면서 중간중간에 외국에 입항하는데 특별한 경우에 다를 수도 있지만, 보통 가는 길에 싱가폴, 아랍에미리트에 들른다. 그리고 임무가 시작되고 나면 오만에 보름마다 입항하면서 보급 물품을 싣는다. 그리고 한 번 정도 아프리카에 있는 지부티에 입항할 때도 있다. 돌아올 때도 역시 싱가폴에 들른다. 파병은 놀러가는 게 아니라 임무를 하러 가는 곳이기 때문에 편하게 외국에서 놀다 와야지라는 생각을 절대 가져선 안 된다. 특히 가면 갑판병은 지옥이다. 하지만 외국에 입항하면 외출을 보내주는데 그땐 신나게 놀면 된다. 그리고 6개월 동안 10,000달러를 벌 수 있으니 이는 절호의 기회이다. 필자는 그 돈으로 전역하고 유럽을 다녀왔다.
그리고 림팩 훈련은 환태평양 해상 훈련이었나 명칭이 자세히 기억 안 나는데 환태평양에 접해 있는 국가들이 모여서 해상 훈련을 하는 것이다. 미국, 일본 등등 내로라하는 국가들이 삐까뻔쩍한 군함을 몰고 와서 성능을 뽐내는 훈련이다. 모두들 하와이에 모이는데 이 때문에 림팩은 거의 놀러간다고 봐도 무방하다. 정작 훈련하는 시간은 얼마 안 되고 약 한 달 가량을 하와이에 입항해서 재밌게 신나게 논다고 한다. 림팩 역시 가는 데 한 달, 오는 데 한 달이고 훈련도 역시 한 달이다. 보통 5~8월에 함. 그리고 매년 하는 게 아니라 2년에 한 번인가 하는 걸로 안다. 그리고 파병처럼 지원자를 뽑는 것도 아니고 그 기간에 근무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가기 때문에 가기 쉽지 않다.
마지막으로 순항 훈련은 해군사관학교 생도들 졸업여행이다. 이제 곧 임관할 쏘가리들을 데리고 세계 일주를 한다. 매년 어디를 가는지는 다른데 유럽을 갈 때도 있고 남미를 갈 때도 있고 그때그때 다르다. 이는 구축함만 가는 게 아니라 유류공급함（맞나?）과 함께 간다. 그래서 해상유류공수급을 하는데 이게 좀 짜증난다. 청해부대 파병도 마찬가지로 해상유류공수급을 되게 많이 한다. 그런데 외국 유류공급함과 하니까 뭔가 느낌이 색다르긴 함. 아무튼 순항 훈련은 진짜 놀러가는 느낌이 많이 나는데 갑판병은 또 개고생을 한다. 외국에 입항할 때마다 무슨 행사를 그리 많이 하는지 리셉션 준비하는 게 진짜 짜증난다. 파병도 리셉션을 몇 번 했는데 이게 다른 직별들도 다 작업원 나와서 하긴 하는데 갑판이 주가 되어서 하다 보니까 갑판병들에게 시키는 일들이 많다. 그래도 교통비 안 들고 외국 여행을 할 수 있으니 개이득.
구축함 2차선은 충무공이순신함, 문무대왕함, 대조영함, 왕건함, 강감찬함, 최영함이 있다. 이 배들이 현재 대한민국의 주축이라고 볼 수 있다. 서해 NLL 출동을 나가기도 하고, 각종 행사를 뛰기도 하고, 청해부대 파병을 나가기도 하고, 림팩 훈련을 나가기도 하고, 순항 훈련을 나가기도 한다. 필자는 갑판병으로 구축함 2차선에서 파병도 가고 군항제 행사도 뛰고 서해 출동도 나갔다. 정말 힘들다. 정말정말 힘들다. 그런데 파병으로 좋은 점은 돈과 경험이다. 진짜 파병 당시에는 내가 왜 이 고생을 하면서까지 돈을 벌어야 되나 생각도 했지만, 그래도 '지나고 나면' 다녀오길 잘했단 생각이 든다. 그렇다. 그 시간만 버티면 된다.

뭔가 팁을 쓰려고 했는데 좀 내 얘기가 들어간 것 같으니 이만 마무리 짓고 3편에서 더 쓰겠다. 너무 길어졌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