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 음




# 1


내가 아는 동생중에 일찍부터 애 엄마가 된 녀석이 하나 있다.

사고로 가진 애 때문에 일찍 시집을 가게 된 여자애인데,

시집을 열 아홉에 가서 지금 스물 둘에 네살배기 아들 하나를 가진 녀석이다.




시집을 갔을 당시엔 나와는 별로 잘 아는 사이가 아니었기에（지금도 썩 잘 알진 않지만....）

그 당시 어떤심정으로 그런 결정을 내렸을지는 알길 없다만,

학업외에도 , 오직 그때만 누릴수 있는 십대 소녀로서의 특권을 모두 포기한채 시댁살이를 시작했을땐,

그녀로서도 정말 내리기 힘든 결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신혼생활이 그렇게 순탄치만은 않았다.

남편되는 녀석이 때려 주고 싶을 정도로 바람끼가 심했던것....

처음 신혼생활을 시작해,

뱃속의 아이를 낳을때까지만도 단꿈에 젖어 지내던 그녀의 행복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친구들과 술마시고 새벽늦게 들어오는일이 다반사였고, 사나흘에 한번씩은 외박을 했던걸로 기억한다.




나이가 나이니만큼 그정도는 이해해 주던 그녀로서도,

처음 남편이 바람을 핀다는걸 알았을땐 충격이 꽤 컸던 모양이다.





" 아직 나이가 어려서 철이 없다.. 네가 좀 이해하고 기다려 주렴...."




이런 따뜻한 말로 위로 해주시던 시댁어른들조차도 결국 아들은 이길수 없었던지

그녀를 향한 못마땅한 눈초리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심해져 갔다.

그래도 그녀는 묵묵히 참고 기다렸다.





심지어 남편에게서

"내가 결혼 하고 싶어서 한줄 아냐? 솔직히 너 때문에 내 인생 완전히 조졌잖아!"

라는 술주정을 들었을때도,





"그래 나도 사랑해. 잘자고 내일 또 거기서 보자. 아냐 내가 데리러 나갈게. 잘자~"

그녀가 아닌 다른 여자에게, 바로 옆에서 전화하는 신랑의 통화내용을 들었을때도,





"......솔직히 탁 까고 말해서. 저 녀석이 내 자식이라는 증거가 어딨는데?"

라는....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존엄성마저도 내 팽개친 발언을 서슴지 않고 내뱉을 때 조차도...

그녀는 묵묵히 참기만 할뿐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머리를 박박 밀고 들어온 남편이 무릎을 꿇고 그동안의 잘못을 빌었다.

결혼을 해서 애를 하나 낳은 그 사람에게도 어김없이 영장은 날아왔고,

입대일이 점점 다가오자 불안했었던 모양이었다.




"내가 정말 너한테 몹쓸짓 많이 한것 같아... 나 정말 마지막으로 한번만 믿고... 나 기다려 줄래?

그럼 내가 정말... 그동안 잘못했던거 제대 하면 다 갚아줄게."

무릎을 꿇은 채 눈물을 흘리며. 그렇게 남편은 그동안의 잘못을 뉘우쳤다...




몇번이고 찾아가 반쯤 죽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수십번도 넘게 가지게 했던 그 남자...



그렇게 빌거면서 왜 그렇게 그녀에게 상처를 줬는지...

그렇게 비는것 자체가 일막의 쇼는 아닌지...

정말 그가 돌아온후, 정말로 그녀를 그때서야 제대로 사랑해 줄지....


나로선 '알수 없음' 이다.







# 2


사귄지 정말 오래된 커플이 하나 있다.




너무 오래 사귄탓인지 그들에게도 권태기라는게 왔었나 보다.

남자쪽에서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해왔다.

철썩같이 믿고 있던 남자에게서 뒤통수를 제대로 얻어 맞은 여자는

사흘밤낮이 모자라도록, 보기 안스럽게 눈두덩이가 붓을정도로 울고 또 울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잔, 새로운 남자친구를 맞이하게 되었다.

누가 봐도 옛남자친구의 존재가 그녀에게서 떠난것처럼 보여졌다.

언제 울었냐는듯, 그녀는 다시 해맑게 웃기 시작했고 새로운 남자친구와의 애정에도 별 문제는 없어 보였다.




그러던 중 옛 남자친구가 연락을 해왔다.

못잊겠단다.

실수 한것 같단다.

다시 돌아와 달란다......




처음엔 그녀도 단호히 거절했다.

한번만 만나달라는 그 남자의 부탁을 마지막으로 깨끗이 끝내려고 했었다.

그러나 막상 옛남자친구의 헬쓱한 모습을 보니 마음이 심하게 흔들렸던 모양이다.

옛남자친구와의 만남을 끝내고 나서도 그녀는 갈등했다.

옛남자친구를 선택하자니 새 남자친구에게 너무 미안했고,

새 남자친구를 선택하자니 이미 옛남자친구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자신의 진심을 속이는 꼴이기에....




결국 그녀는 옛남자친구를 다시 선택했다.

누구도 그녀의 선택을 욕하진 못할것이다.

그녀는 자기자신에게 솔직하였기에..



그러나 옛 남자친구....

다시 돌아 올거면서 왜 그녀를 버렸는지...

새 남자친구에게 몇대는 말없이 맞을 각오가 되어있다는데 정말인지...

그렇게 뺏어 갔는데 다시 또 헤어지진 않을런지...




나로선... '알수 없음'이다.












내 주먹.... 꽤 아픈데 말이다.








# 3



한 여자가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

친구들에게 위로를 받으며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펑펑 울고 있는 그녀와 그런 그녀를 위로하는 그녀의 친구들을 보고 있자니

꼭 그녀가 차인 분위기지만, 그건 아니었다.




그녀는 어디까지나 '찬' 여자 였다.




"나쁜새끼... 그렇다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냐.... 그 새끼는 분명히 딴데가서도 잘살거야.."



조금은 거칠게 내 뱉는 그녀의 말투엔, 복잡하고 묘한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헤어지자는 그녀의 말에, 그녀의 남자친구는 뒤도 다시 한번 돌아보지 않은채 떠나갔다고 한다.

일말의 미련도 안남은듯, 발걸음조차 재촉해가며.




훗날 그녀는 술자리에서라던가, 어쩌다 그 남자친구의 이야기가 나오면 늘 이야기 한다.

사귀었던 남자중에 제일 괘씸하다고,

항상 곁에 있으면 피곤하다고 잠이나 퍼질러 잔다고...

이별을 듣고도 담담하게 뒤도 안돌아보고 가더라고...

어디가도 잘 살거라고.....




그렇게 말하는 그녀에게 한번은 물어보고 싶었다.

만약 그때, 그녀를 다시 붙잡았다면 용서해 줬을지...

정말 그 사람과는 좋은 기억이 조금도 남아있지 않는지...





물론 지금은 묻지 않을거고, 또 그래서 '알수 없음' 이지만...








# 1 - 2



진심인지 아닌지 알수 없지만, 어쨌든 남편은 많은 약속과 다짐을 남긴 후 군대라는곳을 갔다.




"절대 안바뀐다. 그 새끼 사람 새끼 아니다. 쥐새끼랑 고양이랑 새끼치는걸 기다리는게 차라리 낫겠다"



그녀의 주변 친구들의 대부분의 반응이다.

내 생각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아직은 그 누구도, 말없이 묵묵히 남편을 기다리는 그녀에겐 쏘아 붙여 본적은 없지만...





그녀는 정말....

그녀는 정말 남편이 변할거라고 믿는걸까?

설사 변한다손 치더라도 아무일도 없던것처럼, 태연히 남편을 받아 들일수 있을까?

또 헛된꿈을 꾸고 있는건 아닐까?......






그 남자가 제대 하기 전까진 '알수 없음'이다.







다만 너무나 힘들게 되찾은 그녀의 화사한 미소가...

더는 상처받지 않기 바랄 뿐이다.








# 2 - 2



이 여자의 남자친구 역시 지금은 군 복무 중이다.

그 일 이후 아직까지 둘 사이에 다른 불미스러운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한가지.

그녀가 조금 변했다.




오직 한 남자만 바라보던, 양다리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그녀가,

친구들도 놀랄 정도로 바람을 피고 다니는것이다.




가장 친한 친구중 하나는 이렇게 말한다...


"걔 남자를 잘 안믿는다 이제.. 형식적으론 사귀는 거지만, 마음은 떳다고 보면 된다."




얼마전 남자친구의 부대에 면회를 갔던 그녀....

빨리 돌아오고싶어 죽을것 같았단다...





그녀는 왜 아직 그 남자친구를 기다리는것일까? 마음은 떳다면서...

왜 다른 여러 남자들을 만나고 다니는것일까? 남자를 못믿는다면서...

다시 그녀의 마음이 정착하게 되는, 그런날이 오게 될까?....




역시 '알수 없음'....

다만...

그녀가 하루빨리 마음을 다잡고 일어나길 바랄뿐이다..

의미는 이제 틀리지만, 여전히 내겐 소중한 그녀가 말이다.





# 3 - 2




난 한동안 그 남자의 술친구 노릇을 안해줄수가 없었다.




"형... 이럴거면 정말 한번 붙잡아 보지 그랬어요? 형 이러는거 정말 ...."




그러나......

자기딴엔 그게 자신이 보여줄수 있는 가장 멋있는 모습이었단다.






- ' 헤어져....'

- '.......눈보니...진심인것 같구나.'

- '.......'

- '.......마지막으로.. 한번만 안아보자..'

- ' ....싫어 깨끗이 끝내자 그냥...'

- ' ...........그래. 그럼.... 잘지내라.'





마지막으로 한번 안아보자는 그의 부탁을 그녀가 거절했을 때,

그는 더이상 그녀를 똑바로 보고 있을수가 없었다.

눈을 두세번만 더 깜빡거리면 눈물이 쏟아져 내릴것만 같았단다.




뒤를 돌아보자 마자 참았던 눈물이 한꺼번에 터져 나와,

계속 뒤돌아 서서 조금이라도 더 그녀를 보고 싶었는데 그럴수가 없었단다.

우는 모습만큼은 죽어도 보여주기 싫었단다.







사실은...

잡고 싶었단다.







지금은 연락이 끊어진 그 형.....

더 이상 연락을 할수 없는 날 이해해 주길 바래...



형도 물론 소중하지만,

형보다 더 소중한 사람이, 내 동생이 더 이상 상처 받는건 바라지 않아.






그 형에게 내가 '알 수 없는' 단 한가진,

이젠 웃으며, 잘지내고 있을까.....하는



그것 한가지 뿐이다.






# 4 - 1



내겐 조그마한 수첩이 하나 있다.



마지막 내 핸드폰을 처분하면서 친구와 함께 구입한 검정색 수첩인데,

내 주변사람들의 연락처가 모두 적힌 수첩이다.



핸드폰에 전화번호를 저장시킬때 사람들이 의례그렇듯,

나 역시도 중요한, 소중한 사람부터 차례차례로 기입을 해 놓았다.



난 핸드폰의 1번자리가 싫다.



보통 가장 소중한 사람의 번호를 기억시키는 이 1 번자리가 싫은 이유는,

내 앞에 '다른 소중했던' 사람이 차지했었던 자리이거니와,

언젠가 내가 그 사람에게 별 의미 없는 존재가 되었을때, 가차없이 삭제될 자리이기도 하고,

그녀에게 있어서 또 다른 소중한 이가 생긴다면 마치 대물림하듯 물려줘야 할 자리이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내가 핸드폰에 그녀를 기억시켰다면,

난 몇번에다 저장시켰을까..

그리고 어쩌면... 벌써 삭제시키진 않았을까......

왜 난 그녀의 번호가 적혀있는 1페이지를... 아직 찢어버리지 않았던 걸까...




글을 써옴으로써, 난 그녀를 좀더 오래 추억할수 있었다.

글이라는것으로 그녀의 모습을 그리고, 그녀와의 추억을 덧칠하고, 그렇게 다시 내 안에 심어 놓고......



만약 내가 글이라는것을 쓰지 않았다면,

난 그녀를 이렇게 오래도록 잊지 못할수 있었을까?...




그녀가 내 안에서 이렇게 예쁘게 남아있을수 있었을까?...








얼마전까지 '알수없던' 것이 하나 있었다.



왜 우연히라도 마주치지 않을까....

그냥 한번 버스타고 가다가 차창밖으로 길을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라도 한번 보고 싶은데,

이 동네가 그다지 넓은것도 아닌데, 이곳에 올라치면 왜 한번도 스쳐지나가는 일이 없는걸까.....





차라리... '알수없음'으로 남는게 나았을것 같다.




그녀를 다시 만난날...

그렇게... 도망치듯 서로에게서 벗어난 후.....




난... 취중에 수첩의 1페이지를 찢어버렸으니까....









# 4 - 2




After ....

이제 참 남같이 안느껴지는 단어입니다..

저 다섯 스펠링이 날 지칭하는 말이었으니...



이게 After라는 이름으로 남기는 마지막 글이 될것 같습니다..

시작이 웃대였으니 끝맺음도 웃대에서 지어야 할것 같네요..




After라는놈으로 살아오면서, 너무 즐거웠습니다.....

작년 제 생일은 죽을때 까지 잊을수 없을것이고,

After라는 이름으로 만난, 너무 많은 사람들...

절대 잊지 못할것 같습니다...



메일 한통, 쪽지 한통, 코멘트 한줄이 그렇게나 힘이 될수가 없었고,

너무나 좋은 형들, 동생들, 친구들을 많이 만나...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묘한 이질감을 느낄정도로 행복했지만,

나도 어쩔수 없는 놈인가 봅니다.

이제 이만 끝내야 할것 같네요... 개인적인 이유가 가장 짙으니, 다른 오해는 없으시길 바랍니다.





훗날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After라는 사람을 기억하는이가 있을까요?

아니.... 그 사람이 쓴 글의 대략적인 맥락이라도 기억하는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이것역시 저로선 알수 없음...입니다. ^^

그저 ..바램일 뿐입니다..



항상 몸건강 하시고.....

거듭..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