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집을 떠나서 익숙한 태백으로 여행을 왔다

어제는 잠이 안와서 짐빔 몇잔에 맥주하다가 자서 4시간 잤나

일어나니 막상 가기가 귀찮아서 그냥 누워서 주말을 보내려니 이건 아니다 싶어서 대충 칫솔, 치약, 클렌징폼, 양말 1켤레

혹시 추울까봐 겉옷 츄리닝 두개만 챙기고 나의 투르크막토인 과학5호기를 타고 8시반에 떠났다

기름은 전에 1600원대에 가득 널어놔서 충분한 상태라 따로 주유소에 들리지 않았고 커피 마시면 더 피곤해질까봐 야채주스나 두개 사들고 출발

답답할 때나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을때 혼자 여행을 많이 다녔다 그 때 기억이 좋았던 태백으로 세번째 방문인셈인데

이 곳을 자동차로 가는건 처음이다 근데 뭐 설레거나 이런 목적보다 나만의 은신처, 조용히 안식할 수 있는 장소중에 생각난 곳이 태백이었기에 여기 오기로 했다

떠나지 얼마 안되서 너무 피곤하길래 졸음 쉼터에서 잠은 안오는데 몸이 계속 피곤하다는 신호를 줘서 한참 누워 있었다

가평휴게소에서 쉴 수도 있었는데 일단 차나 사람이나 진짜 무진장 많아서 별로 거기서 쉬고 싶지 않았다

양양 고속도로가 뚫린 뒤로 가평휴게소는 올 때마다 사람이 많다 동해바다 보러가기가 접근성이 좋아서 그런가 장사 정말 잘된다

졸음쉼터에서 잠은 안자고 눈은 게슴츠레하니 유튜브를 보고 있는데 머리로는 또 이런 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길래 화장실 들렸다가 담배 한대 피고 다시 출발함

그 때가 점심때여서 배도 고프길래 발길 닿는대로 홍천에 들려서 먹을만한데를 찾았다

추석이라 다들 문을 닫았긴했는데 그래도 중국집 연데를 잘 찾아서 볶음밥곱배기 포장해서 홍천강을 바라보면서 잘 먹었다

홍천강은 또 처음 봐서 잠깐 손이나 담궈봤는데 그렇게 물이 차진 않아도 맑고 깨끗했다 냄새도 안나고 굿

토요일이니까 안사면 서운해서 로또도 5천원 연금복권도 5천원 사줬다

복권은 수학 못하는 사람에게 걷는 세금이라던데 이번주도 성실하게 세금만 납부하게 될 것인가

배도 채우고 다시 목적지인 태백으로 향해서 가다가 홍천 시내에 엄청 큰 웨딩홀이 대로변에 있는걸 봤다

일단 홍천을 전에 다른 여행을 하다가 홍천터미널에서만 잠깐 내려본게 다여서 이렇게 홍천이 큰 줄 몰랐다

다이소도 있고 뫄 있을거 다있다 이렇게 큰 웨딩홀이 있으면 말 다했지 그것보다 또 또 목적지를 향해 가면서도 아까 본 큰웨딩홀 때문에 또 담배를 폈다

차로 여행하면서 휴게소는 꼭 들리는 편이라 잠시 뇌를 과거에서 끄집어내서 강제로 마이뉴여행데이터베이스를 입력하는게 휴식에 도움이 됐다

자동차네비를 헷갈려서 조금 돌아가는 덕분에 오늘은 원주휴게소, 치악휴게소를 들렸다

치악휴게소도 사람이 꽤 많아서 부득이하게 전기차충전기 옆 구석탱이에 차를 대고 한바퀴 쓱 둘러보고 '민족통일의 길'이라고 쓰여있는 커다란 바위 옆에 자갈이 깔린 벤치에 누워서 마스크를 안대 삼아서 누웠다

바람도 시원하니 좋고 몸이 이제 조금씩 제정신을 차리는지 배터리가 한 55퍼센트 정도 충전된 느낌? 그제서야 코로 초록의 싱싱함이 코에 슉슉 들어오는게 느껴졌다 뭔가 코로 치톤피드같은걸 먹는 기분 청단풍나무가 그늘을 만들어줘서 정말 잘 쉬었다

엑스오일이라 그런지 1675원이었나 싸게 팔길래 넣을까하다가 기다리는 것도 귀찮고 무엇보다 태백으로 갔다가 다음날 무엇을 할지 어디로 갈지도 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패스

어제 월급이 들어왔으면 가득 넣었겠으나...얄짤없이 다음주 화요일에 들어올 예정이므로 지갑이 얇다 주유비도 내가 가려는 거리만큼 계산하고 넣어야하지만 그렇다고 가고 싶은 곳을 못 갈 정도는 아니어서 다행이다

확실히 몸이 충전이 좀 되서 목적지까지 쭉 가려다가 전에 정선 왔을 때 궁금했던 사북에 팔이 제멋대로 핸들을 꺽었다 그래 편의점도 갈겸 사북이 뭐하는 동네인지 구경도 할겸 뭐 대충은 알지만서도..

한바퀴 돌고 잠깐 편의점 테이블에 앉아서 기억에 남는건 남성전용 24시 석탄사우나, 매우 많은 전당포들, 몹시 많은 모텔들과 술집 그리고 마사지숍들과 술집들

몸이 피곤하고 그놈의 남성전용 '석탄'사우나가 뭔지 궁금했지만 호기심만으로 내 귀중한 주말의 안식을 망칠 것 같은 강한 직감이 들어서 얼른 빠져나왔다

그 뒤로는 어디 샛길로 안새고 곧장 태백으로 왔다 태백역과는 조금 떨어진 주차장에 투르크막토를 쉬게 하고 뱃속의 짐을 오랜만에 쭈그려서 흘려보냈다

태백역을 나오면서 해질 무렵에 그것도 추석에 옛날 외가집에 오는 냄새가 났다 나무 때는 냄새랑 아련한 추억의 냄새..오다가 아까 봄날은 간다 노래를 들어서 냄새가 더 선명하게 뇌에 박힌다

전에 묶었던 여관에 잠깐 지나가면서 오랜 친구랑 눈인사하듯이 건물도 휙 훑어보고 근데 전에 왔을 때는 잠깐 이기도 하고 차로 안와서 몰랐는데 태백 시내도 꽤 컸다

사람도 일단 많고 이상하게 20대나 적어도 10대로 보이는 쏘녀들이 많았다 추석인데도 연 가게들도 꽤 많고 있을거 다 있다

구경한다고 차를 좀 대고 걷고 싶었는데 몇 바퀴를 돌아도 마땅한 곳이 보이질 않아서 그냥 차에서 빙빙 돌면서 눈으로 걸었다 황지연못은 내려서 직접 달아보고 싶었는데 뭐 기회가 또 오겠지 가을의 태백시내는 생각보다 좋았다 아련아련쓰

7시반에 해지고 딱 도착했다 여기 찜질방에 묶는 것도 이제 세번째구나 사람도 거의 없고 무엇보다 청결하고 싸다

씻고 탕에서 조금 있다가 찜질방으로 내려가서 적당히 고요한 곳에서 한숨 푹 잤다

여기 도착하기까지 내 머리속을 스쳤던 궁금한 것들을 찾아보고 정리하다가 시간이 벌써 3시가 넘었지만 뭐 어떤가 또 자면 된다

너무 너무 조용하고 고요해서 정말 좋구나 피곤한 몸땡이를 이끌고 달래면서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다 변함이 없는 고요함과 안식을 나는 몇년 전 여행하면서 이 찜질방에서 찾았다

여전히 그대로인 채로 있구나

태백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