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으로 기후는 자연에 영향을 준다.

기후 또한 자연이지만, 지상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주까지 비롯된 인력과 태양광 등이 좌우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런 어려운 생각을 되뇌며 복잡하기 그지없는 자신의 삶을 되짚어보던 민혁은, 도시의 소음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적한 시골길을 드라이브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내비게이션은 이미 먹통이 된 지 오래였다. 인적 없는 산골로 들어선 지 한참인데, 휴대전화 신호는 아예 잡히지도 않았다. 기름이라도 넉넉히 넣고 올걸,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민혁은 주유 게이지 바늘이 바닥을 향해 가는 것을 보며 불안에 휩싸였다.

주유소를 찾아 헤매던 중, 저 멀리 희미한 불빛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민혁은 반사적으로 핸들을 틀어 그 불빛을 향해 차를 몰았다. 비포장도로를 한참 달려 도착한 곳은 작은 간판이 달린 허름한 가게였다. '구멍가게'라고 쓰인 간판은 글자 몇 개가 떨어져 나가 알아보기 힘들었다.

차를 세우고 가게 문을 열자, 오래된 나무 문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안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랜턴을 켜자, 테이블에 앉아 화투를 치고 있던 노인 세 명이 일제히 고개를 들어 민혁을 쳐다봤다. 그들의 눈은 빛 한 점 없이 검고 텅 비어 있었다.

"어이, 젊은이. 이 밤중에 여긴 어쩐 일이야."

가운데 앉아있던 노인이 나지막이 물었다. 목소리는 마치 삭아버린 나무토막이 부서지는 듯했다. 민혁은 본능적인 불길함에 몸을 떨었지만, 간절함이 더 컸다.

"죄송합니다만, 혹시 주유소 위치를 아시는지요? 아니면 휘발유라도 좀 살 수 있을까요?"

노인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기분 나쁜 웃음을 흘렸다.

"기름이라…."

가장자리에 앉아있던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민혁에게 다가왔다. 그의 발은 바닥에 닿을 때마다 ‘덜그럭’ 하는 소리를 냈다. 민혁은 그 소리가 뼈와 뼈가 부딪히는 소리처럼 들려 소름이 돋았다.

"우리 가게에 기름은 없지. 하지만, 이 길로 쭉 가면… 거기 가면 네가 원하는 게 있을 거다."

노인은 손가락으로 민혁의 뒤편을 가리켰다. 민혁이 뒤를 돌아보자,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또 다른 길이 희미하게 보였다. 민혁은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가게를 나섰다. 그 길로 다시 차를 몰고 가는데, 아까와 달리 노인들의 시선이 등 뒤에 꽂히는 느낌이었다.

"너무, 춥다..."

민혁은 차 안인데도 한기가 느껴져 몸을 떨었다. 에어컨을 끈 지 오래인데도 마치 뼛속까지 시린 듯한 추위였다.

얼마나 달렸을까, 희미한 불빛들이 늘어선 곳에 도착했다. 멀리서 보니 가로등인 듯했다. 민혁은 희망을 품고 차를 세워두고 걸어갔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자, 그것은 가로등이 아니었다.

'덜그럭덜그럭덜그럭.'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매달린 인형들이었다. 그 인형들은 모두 눈이 검은 단추로 되어 있었고, 팔다리는 꺾여 있었다. 민혁은 공포에 질려 뒷걸음질 쳤지만, 이미 늦었다. 인형들의 눈에서 붉은빛이 번뜩이는가 싶더니, 일제히 고개가 돌아가 민혁을 쳐다봤다. 그리고 이내 그들은 한꺼번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끼이이이이이익, 끼이이이이이익."

나무 관절이 비명을 지르는 듯한 소리를 내며 인형들이 민혁에게로 기어왔다. 민혁은 이성을 잃고 차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렸다.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지만, 이미 바닥난 기름 때문에 시동은 걸리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 차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톡, 톡, 톡.'

공포에 질려 창문을 바라보자, 그곳에는 인형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인형은 서서히 얼굴을 창문에 밀착시켰다. 붉은 단추 눈이 민혁의 눈과 마주치는 순간, 민혁은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아아악!!!!"

민혁은 차문을 열고 무작정 숲으로 내달렸다. 인형들이 쫓아오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덜그럭, 덜그럭.'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민혁은 맹렬한 속도로 숲 속을 달렸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소리, 거친 숨소리가 뒤섞여 귀를 때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소리가 멎었다. 뒤를 돌아보자 아무것도 없었다. 민혁은 안도하며 주저앉았다. 하지만 안도도 잠시, 숲은 여전히 칠흑 같았고, 길은 보이지 않았다. 짙은 공포가 다시금 민혁을 덮쳐왔다. 그때, 숲속에서 또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끼이이이이이익… 끼이이이이이익….'

인형들이 다시 나타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수가 훨씬 많았다. 붉은 단추 눈이 어둠 속에서 수없이 반짝였다. 그들은 민혁을 향해 기어오며 찢어질 듯한 웃음소리를 냈다.

민혁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갑자기 숲이 끝나는 지점에 이르렀다. 그곳에는 낡은 주유소 건물이 있었다. 민혁은 망설일 틈도 없이 주유소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오래된 기름 냄새와 먼지가 가득했다. 민혁은 한구석에 있는 창고 문을 열고 몸을 숨겼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문밖에서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려왔다.

'덜그럭, 덜그럭.'

인형들이 주유소 안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민혁은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더니, 이내 창고 문 앞에서 멈췄다. 민혁은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이놈, 이놈, 이놈, 이놈…."

인형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십 개의 목소리가 뒤섞여 음산한 화음을 만들어냈다.

"어딨니, 어딨니, 어딨니…."

그들은 문을 두드렸다.

'덜컹, 덜컹, 덜컹.'

민혁은 눈을 질끈 감고 비명을 참았다. 그리고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봐요! 안에 사람 있습니까? 신고를 받고 왔는데…!"

경찰의 목소리였다. 민혁은 안도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드디어 살았다는 희망에 문을 열려고 손을 뻗었다.

그 순간, 남자 무당이 민혁의 입을 막고 소리쳤다. "이놈아, 속지 마라!"

하지만 이미 늦었다. 민혁은 이미 밖으로 나가려는 듯 몸을 돌린 상태였다. 그때, 문밖에서 인형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놈, 이놈…."

"어딨니, 어딨니…."

그리고 찢어지는 듯한 비명과 함께 주유소 창문들이 깨지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민혁은 몸이 굳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때였다. 등 뒤에서 누군가 자신을 껴안는 감촉이 느껴졌다.

민혁이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는 자신의 얼굴을 하고 있는 인형이 서 있었다. 그 인형의 눈은 붉은 단추로 되어 있었고, 입술은 귀 밑까지 찢어져 있었다. 인형은 찢어진 입으로 민혁을 보며 소름끼치게 웃었다.

"이제… 같이… 놀자…."

민혁은 비명을 지르며 몸을 떨었고, 이내 모든 감각이 사라졌다. 그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자신을 향해 팔을 뻗어오는 무수히 많은 인형들의 붉은 단추 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