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주차장 앞 고양이

쇠막대가 바닥을 내려 치자 어두운 주차장에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강렬한 충격이 강석진의 손에 그대로 전달되었다. 그리고 손 끝에서부터 차오르는 분노가 강석진의 눈 위로 붉게 떠올랐다. 내가 입주자 대표감이 아니라고?
“빌어먹을 고양이 새끼... 어디로 튄 거야?”
낮게 읊조리는 그의 목소리가 음산하게 퍼져갔다.
-야옹
그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주차장 더 깊은 어둠 속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저 소리.
강석진은 저 소리를 따라 지하 주차장까지 따라왔다. 형광등이 힘없이 깜빡이고 있었다. 이 곳이 그가 알던 주차장이 맞을까? 차갑고 무거운 공기가 그의 폐 속 깊이 파고들었다.
강석진은 쇠막대를 움켜쥐고 고양이 소리를 따라 주차장 안 더 깊은 어둠 속으로 걸어갔다.

***

3개월 전.
화창한 휴일에 마주친 고양이는 처음엔 아무것도 아니었다. 신도시 아파트들이 으레 그렇듯 신축 아파트 앞에는 원룸 빌라들이 많았다. 버려진 고양이를 보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었다.
지인과 만나고 기분 좋게 돌아오는 길이었다. 점심을 먹고 가볍게 반주까지 했으나 그에게 운전하는 것은 숨 쉬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차를 몰고 지하 주차장이 진입하려고 하는데 무언가 작은 것이 차 앞으로 뛰어들었다.
고양이었다.
다행히 사고는 없었다. 고양이는 마치 차로 치이려고 했던 것처럼 차 앞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강석진은 화를 주체할 수 없었다.
“빌어먹을 고양이 새끼가...”
강석진은 고양이를 당장 ��어 죽이고 싶었다. 그러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진 못 했다. 지나가던 아파트 입주민이 비명을 지르며 강석진 쪽으로 달려왔기 때문이었다.
고양이 주인이었을까? 강석진은 잘 기억하지 못 했다. 입주민이 자신에게 뭐라 했지만 먼저 그 자리를 벗어나기로 했다. 반주를 하기도 했고.

집에 돌아온 그는 아내와 다툼을 벌였다.
“아니, 당신은 왜 그렇게 빡빡하게 굴어요? 고양이든 뭐든, 그게 그렇게 문제라는 거예요?”
“내가 잘못 했나? 그냥 법대로, 규칙대로 하자는 거지! 저 앞에 빌라촌을 봐. 능력도 안되는 것들이 동물 키우다가 마음에 안 들면 다 쳐버려서 우리 아파트까지 지금 피해를 보잖아? 이걸로 집 값이라도 떨어져 봐!”
아내는 한숨을 쉬었다.
“핑계 대지 마요. 그냥 당신 마음에 안 드는 거잖아. 고양이는 지멋대로 구니까.”

그날 밤, 강석진은 악몽을 꾸었다. 어둠 속을 달리는 꿈이었다. 그의 뒤에서는 무언가가 쫓아 오고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분명 그것은 자신을 노리고 있었다. 강석진은 자신이 먹잇감이 되었다는 사실에 끝 모를 공포에 사로잡혔다.

***

아파트 단지 내에 길고양이가 늘어났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은 그 즈음이었다. 입주자 대표 선거를 앞둔 강석진에게 이는 절호의 기회였다. 아파트의 가치를 지키겠다는 공약을 내세우기에 더 할 나위 없는 문제였다.
“이런 식으로 관리되면 우리 아파트가 슬럼화되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시간 문제!”
그는 입주민 회의에서 주먹을 내리치며 외쳤다. 그는 현재 동대표였고, 추진력이 강한 사람이었다.
“제가 입주자 대표가 된다면 이런 문제는 확실히 해결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박수를 쳤고, 강석진은 그 순간을 음미했다. 소문을 낸 것이 자신이라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게 뭐가 대수라고.

율현 푸르지오 단지에 살기 시작한 지 오 년. 그동안 아파트 가격은 두 배로 뛰었고, 그건 그의 선택이 옳았다는 증거였다. 아내는 그의 결정에 늘 의문을 표했지만, 이번만큼은 자신이 옳았다. 그럼에도 아내는 자신을 존중하지 않았다.
자식이라곤 아들 녀석 하나뿐인데, 이 놈은 대학생이나 되어서도 집 안에 틀어박혀서 아비가 오는지 나가는지도 몰랐다.
회사에서는 젊은 직원들이 자신을 피하고 있었다. 자신의 뒤에선 수군거리고 있다는 것을 강석진은 알고 있었다.

“꼰대? 그래, 내가 꼰대면 어떤데?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지.”

강석진은 늘 혼자 중얼거렸다. 자신은 질서와 규칙을 지키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무너지면 그 뒤엔 몰락 뿐이었다. 강석진은 스스로가 옳다고 생각했다. 단지 주변 사람들이 허약하고 덜 떨어졌을 뿐이었다.

***

그리고 오늘인 입주자 대표 선거일, 기대와 달리 그는 탈락했다. 고양이는 그의 생각보다 사람들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강석진을 작은 일을 키우는 좀스러운 인물로 여겼다. 소문을 낸 사람이 강석진이라는 것을 안다면서.
별 것 아니라고 큰소리 치던 강석진은 지인들과 늦은 저녁까지 술을 마셨다. 평소와 다르게 과음을 한 그는 친구들에게 세상의 불공평함을 토로했다. 친구들은 그에게 그런 일을 계속 마음에 두지 말라며 위로 했지만, 강석진은 그 말이 빈말인 것을 알고 있었다.
아니, 그깟 일도 해결하지 못 했냐는 식으로 들리기도 했다. 강석진이 화를 내자 술자리 분위기는 급격히 식었다. 친구들이 강석진을 택시에 태워 집에 돌려보낸 것은 12시가 다 된 시각이었다.
강석진이 다시 눈을 떴을 때는 택시 안이었다. 택시 기사의 짜증 섞인 눈빛을 받고 택시비를 내고 집 앞 편의점으로 갔다. 술에 깨려 숙취해소제를 하나 사 들고 나오는데, 어디선가 미묘한 소리가 들렸다. 신경 쓰고 싶지 않은데 지속적으로 들리는 그 소리.
-야옹

***

강석진은 뇌를 차지하고 있던 알코올이 한순간 물러나고 그 자리를 분노가 채워지는 것을 느꼈다.
‘저 빌어먹을 고양이 때문이다. 어쩐지 재수가 없었어. 고양의 눈알 꼬라지하며... 내가 널 벌을 내려주마!’
강석진은 지나는 사람이 없는 지금이 저 요물을 없앨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주변을 살피자 새로 짓고 있는 원룸 빌라가 많았다. 그곳에서 단단한 철막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것이면 충분하리라.
고양이는 강석진을 유혹하기라도 하는 듯 그의 근처에서 계속 울음소리를 내었다. 소리를 따라 걸음을 옮기자 어느 새 지하 주차장까지 오게 되었다.
소리는 계속 이어져 지하 주차장 한쪽에 있는 관리실로 이어졌다.
-야옹
소리는 분명 관리실 안 쪽에서 들려왔다. 희미한 불빛 속에서 문을 조심스럽게 열자 더 깊은 어둠이 기다렸다. 강석진이 벽을 더듬어 불을 켜자 불빛이 깜빡이며 방 안을 비췄다. 전기 계량기와 배전반이 죽 늘어선 관리실은 어딘지 창백하게 보였다.
“야옹아~ 어디 숨었니?” 그는 중얼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다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배전반 너머 더 어두운 곳이었다. 그는 소리를 쫓아 안으로 들어갔다. 뒤에서 철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

지금, 강석진은 자신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었다.
“시팔, 관리실이 이렇게 넓었나?”
관리실 안 쪽은 복도를 따라 전기 계량기와 배전반이 쭉 늘어서 있었다. 복도의 끝은 어둠 속에 파묻혀 보이지 않았고, 가끔씩 형광등이 불규칙하게 깜빡일 때마다 언뜻 고양이가 보이는 것만 같았다.
그는 이상한 느낌이 들어 몇 번이나 돌아가려 했지만, 어째서인지 왔긴 길로 돌아가도 전기 계량기와 배전반만 보일 뿐이었다.
“안에 누구 없습니까? 저기요!”
사람을 찾는 그의 목소리는 떨려왔다. 아직 술기운이 돌고 있었다. 감각이 흐려져서 판단을 잘못 하고 있는 걸까? 어지러움이 느껴졌다. 흔들리는 몸을 지탱하고자 벽에 손을 댔다.
축축했다. 콘크리트 재질의 딱딱하고 차가운 질감이 아닌 물컹하고 축축했다. 형광등이 깜빡였다. 초점이 잘 맞지 않는 눈으로 벽을 보았다. 벽은 살아 있는 것처럼 미묘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좀 더 자세히 보고자 벽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
-십만원은 피값이다. 네게 습삭되었다. 계약은 끝났다. 전철은 공짜다. 하지만 종착역은 없다. 4대강은 잠든 자들의 무덤이다. 소비자는 그걸 마신다. 돈은 가치 없다. 피로 거래하라.
벽에는 무수한 글자들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그가 계속 바라보고 있는 와중에서 내용은 변하고 있었다. 글자들이 변화하면서 마치 움직이고 있다는 착각을 주고 있었다.
발 아래에 검은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 놀라며 시선을 돌려보니 검은 고양이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노란 눈이 어둠 속에서 초록빛을 내고 있었다.
“이 망할 고양이 때문에...!”
그는 쇠막대를 높이 치켜올리곤 고양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고양이는 재빨리 몸을 피해 복도 끝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강석진은 분노에 차 고양이를 쫓았다.
복도 끝에는 넓은 공터가 보였다. 고양이는 그 공터로 사라졌다. 그는 공터 앞에 섰다. 어디선가 빛이 들어오는지 공터 중앙은 밝았으나 주변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아파트 아래에 이런 공간이 존재할 수 있던가?
강석진은 몸을 돌려 왔던 길로 돌아가고자 했다. 그곳엔 처음 보는 검은 형체가 있었다. 사람인 줄 알았으나 아니었다. 그냥 아무렇게나 쌓아 올린 흙더미처럼 보였다. 그것의 형체를 살피고자 잠시 뜸을 들이고 있자 벽에서 똑같은 형체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것은 점점 그를 향해서 다가오고 있었다.
“으아아악!”
그는 비명을 지르며 공터 쪽으로 들어갔다. 공터는 천장이 보이지 않은 만큼 높았고, 바닥은 일반적인 콘크리트 재질이 아닌 것 같았다.
-야옹
멀리서 다시 고양이 소리가 들렸다. 그가 소리가 난 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고양이가 보였다. 아니 고양이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보였다. 마치 아무렇게나 쌓아 올린 흙더미가 우연히 고양이 모습을 한 것 같았다.
-야옹
“이...이게 다 뭐야...?”
그가 중얼거리는 순간, 공간이 우글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뒤에서 소리가 들렸지만 고양이 소리도, 사람 목소리도 아니었다. 마치 고장 난 라디오가 빠르게 주파수를 바꾸는 것처럼 이상한 문장으로 말하는 소리였다.
강석진이 두려움에 뒤를 돌아보자 복도로 이어지는 구멍에서 그 존재들이 더 생겨나왔다. 마치 밖으로 나오는 것처럼 보였지만 움직이지는 않았다. 다시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아까보다 더 많은 고양이 형체가 보였다. 그리고 더 다가와 있었다.
강석진은 공포에 질려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그가 물러설 곳은 없었다.
“이건... 이게 현실일리 없어. 꿈인가? 꿈?”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천장에서 내려오던 불빛이 좁아졌다. 강석진은 숨을 헛삼키며 주위를 미친 듯이 둘러 보았다. 그가 고개를 돌릴 때마다 그 존재들은 서서히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가 안 보고 있을 때만 다가오는 것 같았다.
빛은 점점 줄어들고 그에 맞춰서 그 존재들도 강석진과 가까워졌다. 강석진은 하얗게 질린 채 손에 들고 있는 철막대를 떨어뜨렸다. 철막대가 떨어지는 소리가 어둠 속에 삼켜지듯 사라졌다.
“나...난 그저 아파트 가치를 지키려고...”
그의 마지막 말은 빛과 함께 공허하게 사라졌다. 어둠이 강석진을 완전히 삼켰다.

-야옹

***

다음 날 아침, 아파트 경비원은 지하 주차장 관리실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쇠막대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1평이 좀 넘는 좁은 관리실 안에 사람이 숨을 만한 곳은 없었다. 경비원이 막대를 집어 들려는 순간,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관리실에서 뛰쳐나왔다.

경찰은 강석진을 실종자로 등록했다. 그의 차는 주차장에 그대로 있었고, CCTV에는 그가 관리실로 들어가는 모습만 찍혔을 뿐, 나오는 모습은 없었다. 경찰은 관리실 안팎을 샅샅이 수색했지만, 사람이 빠져나갈만한 구멍은 관리실 문 외에 찾을 수 없었다.

일주일 후, 그의 가족은 아파트를 떠났다. 기묘하게도 그들이 떠나려고 준비하는 내내 주변에 고양이들이 바라보고 있었다. 아들이 검은 고양이에게 다가가자 고양이는 가볍게 몸을 돌려 사라졌다.

율현 푸르지오에는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밤 중에 아무도 없는 지하 주차장에서 남자의 읊조리는 소리가 들린다는 것이다. 그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목소리의 내용이 같다고 말했다.
“차를 대고 아파트 입구까지 걸어다가가 갑자기 옆에서 중년 남자 목소리가 들리는 거에요. 자기는 그저 규칙을 지키려고 했을 뿐이라고. 어찌나 소름 끼치던지...”

***

검은 고양이가 아파트 관리실 앞에 앉아 있다. 노란 눈알을 굴리며 새로 붙은 안내문을 보고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버려진 고양이가 많습니다. 현재 시청에서 대응 중이니 먹이를 주거나...（후략）]

검은 고양이는 사람의 인기척을 느끼자 이내 자리에서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