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겨울 방학을 맞아 할머니 댁에 갔을 때의 일이다.
정확한 이유는 기억이 안 나지만
밖에서 추위에 떨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한 낮이었고, 추운 곳에 있다가 따뜻한 곳에 오니
노곤한 기분이 들어 낮잠이 들었다.
그렇게 잠들고 할머니께서 점심을 먹으라며
깨울 때까지 몇 십분 정도 잠들었던 것 같다.
꿈에서 깨었을 때, 나는 마치 달리기를 하다가 멈춘 것처럼
심장이 두근거리고 식은땀이 났던 것이 기억난다.
아래는 그 때 꾸었던 꿈, 세 가지로
이 꿈들은 보통 그러하듯
서로 개연성 없이 연속해서 꾸었다.
1.
나는 산을 오르고 있다. 안개가 낀 산이었다.
얼마 걷지 않아 막다른 길이 나왔고, 나는 정상에 거의 다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에는 두 갈래 길이 보였다.
한 쪽 길은 동굴로 이어진 길이었다.
동굴은 산 아래로 뚫려있었고, 물이 차있었다.
신기하게도 물속에서 빛이 나고 있었다.
다른 길은 산허리를 감고 도는 길이었다.
동굴보다는 안전해보였지만, 더 길어보였다.
더군다나 짙은 안개에, 낭떠러지가 바로 옆에 있었다.
나는 두 길 모두에서 무서움을 느껴서 뒤를 돌아보자
뒤에는 사람들로 보이는 검은 그림자들이 둘러싸고 있다.
불현 듯 나는 이 길을 왔던 적이 있는 것이 기억난다.
이전에 난 동굴을 지난 적이 있었다.
그 동굴에서 느꼈던 밀폐감, 숨막힘, 조급함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나는 다시 안개 낀 길을 바라보았다.
일렁이는 안개 너머로 나를 노리는 어떤 눈길을 느낀다.
그곳으로는 절대 갈 수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검은 그림자들이 점점 내게 다가오는 것이 보이고,
해는 점점 저물어 간다.
나는 갈림길 앞에서 서서 다가오는 그림자를 바라보며 공포에 떨며 눈을 꼭 감는다.
2.
나는 S역에서 시작하는 길을 걷고 있다.
이전에 어딘가 있었던 기억이 있지만 그 느낌은 희미하다.
이 길은 아주 독특한데,
두 개의 길이 겹쳐 보인다.
한 길은 오래되어 빛이 바랜 회색빛 아스팔트길이고,
다른 길은 아주 잘 다져진 널찍한 흙길이다.
나는 한 길을 걷고 있으면서 동시에 세 개의 길을 걷고 있다.
길은 내가 의식할 때마다 바뀌고 있다.
어느 정도 걷자 지상라고 생각했던 곳이
어느 새 지하도로 바뀌어있다.
이 길은 당시에 내가 살던 곳의 굴다리 길이다.
우리 집은 S역과 상당히 멀리 떨어져있었고,
굴다리 길은 거기에 있을 수 없었다.
내가 시선을 들어 굴 입구를 살피자 거기에는 “死”라고 써있다.
그 굴로 들어가자 굴다리는 그대로 관이 되고
나는 들어가는 자세 그대로 눕는다.
걷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난 바닥에 누워있었다.
3.
나는 어째서인지 눈을 뜬다. （눈을 감았다는 기억은 없었다.）
꿈 속에서 무척이나 공포에 떨고 있었는데
이 무서움을 버텨낼 수 없다고 체념하고 있었다.
나는 이것 때문에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무당을 찾아 갔다.
열려진 방 문 너머로 무당이 보이는데
그 생김새는 정확히 보이지 않는다.
미묘하게 뭉개져 보이는데,
여성인지 남성인지는 모르겠으나
귀신같다고 느껴진다.
생김새를 떠나서 꺼림칙했다.
무당의 방은 사람이 딱 한 명이 누울 수 있는 크기의 방이다.
벽이 없고 대신 창호문으로 사방을 막아놓은 형태이다.
무당은 그 방에서 굿을 하고 있다.
나는 그 방의 창호문 중 하나를 열어 본다.
방이 나온다. 무당이 노하면서 나에게 귀신이 씌였다며 호통을 친다.
그 말에 맞춰서 다른 창호문들이 덜컹거린다.
내가 무서워하며 어쩔 줄 몰라하자
무당이 내 아버지에게 내가 문을 연 방으로 들어가야한다고 말한다.
아버지를 바라보자, 아버지는 없고 원래의 내가 그곳에 있다.
나는 온몸이 굳는 느낌이 들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다.
무당의 기묘한 웃음소리와 창호문의 덜컹거림이 점점 커지자
이대로 움직였다가는 굿을 방해해서 귀신을 만날 거라는
강한 확신이 들면서 온몸이 덜덜 떨린다.
별안간 천장이 높아지는 것처럼 느껴지며
나는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창호문이 나를 둘러싸고 관 뚜껑이 닫히듯 천장이 내려앉는다.
멀리서 무당의 목소리가 들리는데
굿이 끝날 때까지 문을 열면 안 된다고 말한다.
무당의 목소리가 멀어지자
창호문에서 긁는 소리가 들리고 은근한 목소리로
“열렸다.”
“다 됐다.”
라며 처음 듣는 목소리가 계속 들린다.
식은땀이 계속 흘렀다.
몸에서 열이 나기 시작하면서
사방에서 들리는 커다란 소리에 내 의식은
서서히 부상하는 느낌이 든다.
***
그렇게 꿈에서 깼다. 심장은 두근거리고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있던 탓에
할머니께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어디 몸이 아프냐고 묻던 할머니를 걱정시키지 않고자
어린 나이에 보일러가 너무 강하고 핑계를 대었더랬다.
좀 맥 빠지는 얘기지만 꿈은 이렇게 끝난다.
이 후에 무슨 큰일이 있거나 그러진 않았지만
아직도 꿈속에서 굿을 하고 있던 무당의 모습은 잊혀 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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