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김찬은 큰 건물 앞에 서있었다. 건물엔 “만찬식재자마트”라는 간판이 달려있었고, 굳게 닫힌 문엔 빨간 페인트로 X표시가 되어있었다. 폐건물임을 나타내는 표시였다.
“야! 김찬!”
김찬은 핸드폰에서 눈을 떼고 주민규를 바라보았다. 짜증이 섞인 눈빛이었지만, 주민규는 멋쩍게 웃어 보였다.
***
“그래서 지금 너 네 작은 아버지 집으로 간다는 거지?”
김찬이 주변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보이는 건물마다 낡았고, 한 두 명의 허리 굽은 노인만 눈에 들어왔다. 김찬은 이 지역에 활력이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 어머니 말씀으론 웬 체격 좋은 남자가 찾아와서 작은 아버지에 대해 물어보고 갔다고 하셨어. 보험회사 무슨 조사원이라고.”
“아니 그럼, 너 혼자 갔다 오지 굳이 왜 날 불러. 알바까지 빼먹게 하면서까지.”
김찬은 “알바”라는 단어에 힘을 줘서 말을 했다.
주민규는 솔직한 심정으로는 거액이 생기는 것을 자랑하고 싶었다. 자신을 부러워해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이것을 자랑할 만한 친구는 주변에 김찬뿐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잘 나갔으니까. 그런 친구들에게 말해봐야 운이 좋다고 말하며 비아냥댈 것이 뻔했다. 김찬은 성격이 단순한 만큼 착한 구석이 있었다.
“밥 한 번 사 줄라고 그런 거지, 임마. 오늘 형이 거하게 쏠라고.”
“오, 어디 취직이라도 됐냐? 로또라도 됐어?”
주민규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했다.
“로또보다는 못 하지만, 존나 쩌는 거라고만 말해줄게.”
“오오! 주민규!”
주민규는 기대했던 반응이 나오자 솟아오르는 즐거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오늘은 그간 모아놓은 알바비를 쓰기로 했다. 직업훈련학원에 등록비로 내려던 돈이었지만, 어차피 큰 돈이 들어올 건데 상관없었다.
“아, 근데 너 네 작은 아버지가 이 동네 사는 거 맞어?”
주민규는 김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머니의 말씀으로는 아닐 수도 있었다. 그러나 사실대로 말해서 자신의 기분을 망치고 싶진 않았다.
“당연한 소릴 하냐.”
김찬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무언가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럼 너, 이 동네에 괴담 도는 거 아냐?”
“뭔 괴담?”
“너 ‘도를 아십니까?’ 알지?”
주민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민규도 몇 번 경험했던 기억이 있었다. 길을 물으며 접근 했다가 말 흐름을 기운이 어쩌니, 운명이 어쩌니 하며 포교하려는 이들.
“그게 무슨 백복회인지 복혼횐지 뭔지 하는 종굔데, 그 사람들이 여기 근처에서 활동한다는 거야.”
“그래서?”
주민규는 약간 짜증이 섞인 말투로 말했다. 김찬은 착하긴 한데, 너무 단순해서 답답할 때가 있었다. 갑자기 사이비 종교 얘기라니.
“아니, 그게, 일주일 전인가 여기 근처 PC방에서 묻지마 칼부림 일어난 거 알지? 그거 범인이 복혼회 신도였대. 뭐 갑자기 신이 속삭여서 악인을 처단해야 한다면서 말야.”
주민규도 그거 관련한 뉴스를 봤었다. 조현병 증세가 있는 환자가 약물을 중단하면서 일어난 사건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아니 그런 정신병자를 왜 사회에 풀어놓는지 모르겠어. 그냥 영원히 병원이나 감옥에 쳐 넣어둘 것이지.”
“...너 내 말을 듣긴 한 거냐?”
주민규는 짐짓 깊게 생각하고 말하는 듯 어조를 낮춰서 말했다.
“그러니까 네 말은 사이비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막 사람을 해친다는 거 아냐? 맞지?”
“맞지.”
“야, 사이비 종교는 그냥 심약한 사람들이 믿는 거고, 칼부림 사건은 정신병자가 일으킨 거야. 둘은 다른 구분해야지. 어? 우연히 정신병자가 사이비 종교를 믿을 수도 있는 거라고. 사이비 종교를 믿어서 정신병자가 되는 게 아니라.”
“야,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 근데 무섭잖아. 어? 사이비 종교도 이 근처에 있어, 칼부림도 이 근처에서 일어났어. 그런 사람이 더 있을 수 있는 거 아니냐. 안 그래?”
주민규는 김찬을 바라보았다. 한심한 놈. 하지만 착한 친구. 좋은 친구다. 김찬은.
“으휴, 그렇게 믿어라. 내가 말해 뭐하겠냐. 혹시 그런 정신병자가 나타나면 내가 패줄게. 됐냐?”
“아니, 그게 아니라...”
김찬은 주눅 든 목소리로 말했다. 다소 억울했지만 말을 더 잇지는 않았다. 불안함 마음을 지울 수는 없었다.
김찬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X자가 큼직하게 그려진 대문에는 검은 꽃 가운데에 눈이 그려진 문양이 붙여져 있었다. 그 자리에는 십자가나 만（卍）자 등 종교 상징물을 붙이는 자리였다. 이 문양은 지나온 집집마다 붙어있었다.
주민규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눈앞의 집을 살폈다. 지도 어플을 다시 확인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작은 아버지는 생각보다 가난했을지도 몰랐다.
작은 아버지의 집은 매우 낡아 보였다. 단층인 단독 주택으로, 아직 낮이건만 음침했다. 빌라 사이에 놓여있어서 그런 것일까. 오랫동안 쌓인 먼지로 벽돌들은 원래 색을 잃은 지 오래였다.
좁은 마당은 시멘트가 발려있어 회색빛을 더했다. 마당 앞에는 철책이 있었고 그 끝에는 대문이 있었다. 주민규는 철책이 너무 낮아 보여 방범 효과가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김찬이 약간 새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 맞어? 이곳 곧 재개발 되는 건 알지? 이사를 가도 진작 갔을 것 같은데...”
김찬은 불안한 기색이 말소리에 묻어나오는 것 같았다. 이어서 현관 옆에 우편함을 가리켰다.
“어쩐지 불길한데...”
우편함에는 여러 봉투들이 가득 꼽혀 있었다. 오랫동안 건드리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주민규는 우편함을 보다가 대문이 살짝 열려있는 것을 알아챘다. 오싹한 느낌이 팔뚝을 따라 등 뒤로 넘어갔다. 조심스럽게 철제 대문을 당겨보자 손쉽게 열렸다.
김찬이 말했다.
“야이씨, 아까 말을 더 하진 못 했는데, 다른 괴담도 많은 거 아냐? 막 지나가는 사람한테 시비 털렸다가 갑자기 도끼를 꺼내서 공격한다는 거? 어? 듣고 있어?”
김찬은 피부가 하얗게 될 정도로 긴장했지만 주민규는 신경 쓰지 않았다. 만약 작은 아버지가 강도를 당한 것이라면 서둘러 도와야할 것이었다. 어쩌면 단순히 문 닫는 것을 잊으신 것일 수도 있었다.
그것보다는 이 집이 작은 아버지 댁이 맞는지가 관건이었다. 주민규는 우편함에서 우편물 몇 개를 꺼내 보았다.
“세대주 귀하... 주종호 귀하...주종호 귀하... 작은 아버지 댁이 맞는 것 같은데...”
주민규는 우편물을 다시 꼽아 놓고선 대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김찬은 쭈뼛거리며 뒤따라 왔다.
“아씨, 이 새끼가 오늘 알바 추노했을 때 그냥 연락을 씹었어야했는데...”
주민규는 피식 웃었다. 김찬은 역시 좋은 친구다.
“작은 아버지! 저에요. 민규! 안에 계세요?”
주민규는 천천히 마당을 지나 현관문으로 다가갔다. 안에선 반응이 없었다. 주민규는 조심스럽게 현관문에 손을 뻗는데, 현관문이 갑자기 불쑥 열렸다. 주민규는 놀라며 뒷걸음쳤다. 혹시 작은 아버지가 안에 계셨던 건가?
집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는 처음 보는 이였다. 작은 아버지는 저 사람처럼 건장한 분이 아니었다. 도둑일까? 주민규가 물었다.
“...놀래라. 당신 누구야? 누군데 여기서 나와?”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말했다.
“...고석재라는 사람입니다. 근데 혹시 집 주인과 아는 사이십니까? 질문 몇 개 좀 해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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