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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이름 석자도 못 읽는 놈이 뭔 그림이야?"
박영감은 혀를 차면서도 내 손끝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림을 그리는데는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어떤때는 반나절, 어떤때는 며칠씩 걸리기도 했다. 대문을 열어놓고 마당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노라면 자연스레 구경꾼이 붙었다. 보통 사람 눈에는 특별할 것도 없는 그림을 끝까지 남아 구경하는 사람은 박영감 뿐이었다. 늘 저렇게 퉁명스럽게 한마디씩 툭툭 내뱉으면서도 군것질거리를 손에 쥐어주는 사람이기도 했다.
"너, 네 엄마 따라서 무당할 거 아니면 붓 잡지 말라고 했지. 할배 말 들어. 평범하게 살려면."
그런 건 박영감이 잔소리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내누나가 건넛 마을에 식모로 간 이후로는 이렇게 해서라도 입에 풀칠을 해야했다. 열두살이 되도록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해 박영감 말대로 제 이름 석자도 못 읽는 팔자가 되어버린 터라 이렇게라도 살아야 했다.
"이번에는 뭘 그리는 거야. 호랑이?"
"영감님 솔직히 말해봐요."
영감님도 보이죠?
나는 말끝을 삼키며 박영감을 쳐다보았다. 박영감은 내 뒤통수를 때리며 보이긴 뭘, 그림이 하도 개발새발이라 아무렇게나 지껄여본건데, 하며 시선을 피했다.
평범한 사람 눈에는 달빛 하나 없는 밤, 깊은 산 속에 허연 바윗돌로 보일 그림이었다. 눈을 감으니 그림의 진짜 모습이 보였다.
새까맣게 물든 입을 쩍 벌린, 짐승에게 잡아먹힌 귀신의 모습이.
이런 끔찍한 귀신 그림을 집에 걸어두려고 그려달라고는 하지 않겠지. 어디에 쓰는 건지, 누가 이런 그림을 필요로 하는 건지,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돈 몇푼을 쥐어주고 의뢰하면 그것이 잠 속이든 맨정신이든 머릿속에 떠오르고 그림으로 옮기는 일을 할 뿐이다. 박영감 말처럼 엄마를 따라 무당이라도 되면 그나마 배는 곯지않고 사람 흉내라도 내면서 살 텐데. 나는 신내림을 받지도 못했고 신기도 없었다. 할 줄 아는 건 오로지 귀신 그림을 그리는 것 뿐.
박영감마저 사라져버린 텅 빈 마당에 앉아 잠시 붓을 놓고 열린 대문 너머를 보았다. 해가 지기 시작한 산골 마을은 금세 새까만 어둠으로 뒤덮이고 있었다.
산짐승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뛰노는 동네 아이들을 불러 모으는 소리와 밥 짓는 냄새가 풍겨왔다. 나는 마루에서 내려와 처마 밑에 주렁 주렁 달린 전등불을 켰다.
닫힌 방문에 시선이 닿은 건 잠깐이었다. 엄마는 일을 할 때나 일이 없을 때나 늘 신당을 지키고 앉아 있었다. 그래야 신령님과 가까워질 수 있다면서. 이제는 신령님도 없지만. 알록달록한 천들로 뒤덮인 신당 문이 열리고 목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들어와서 밥 먹어라, 날이 찬데 여태 그러고 있니.
**
오일장이 들어선 시장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나 같은 애들은 누가 채가도 모를 정도로.
나는 젓가락을 들다가 말고 도로 내려놓았다. 김이 모락 나는 국수를 앞에 두고 있으니 절로 침이 꿀꺽 넘어갔다. 내가 쭈뼛대며 남자들의 눈치를 살피고 있자 젊은 남자가 먹으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얘가 걔야? 생각보다 어리네. 몸집이 작아서 그런가."
젊은 남자는 나를 품평하듯 이리보고 저리봤다. 오늘로 두번째 보는 얼굴이었다. 처음 봤을 때는 먼 발치에서만 봐서 몰랐는데 옆의 남자 박태수와 눈매가 상당히 닮았다.
박태수는 마흔살이 넘은 사내로, 귀신 그림을 주문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집까지 찾아올 때도 있고 오늘처럼 장에서 만날 때도 있었다.
"열둘이면 옛날에는 장가갈 나이구만 어리긴요.
"지금이 조선시대야?"
그는 모든 게 못마땅한 것 같았다. 찌푸려진 미간이 펴지질 않는 걸 보니 성격도 나쁜 것 같아같았다.
"번거롭게 오고가지 말고 우편으로 부치지 않고. 다른 사람 눈에는 특별할 것도 없는 종이쪼가린데."
"아, 얘가 글을 몰라서 그건 안되거든요. 그렇다고 집까지 찾아오라고 하기에도 좀 꺼림칙하고요."
박태수는 옆의 남자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데도 꼬박꼬박 존댓말을 썼다.
"글을 모르는 걸 보면 학교도 안다녔단 거고. 듣기론 산속에서 혼자 산다고. 하... 박태수, 너 이런 애를 푼 돈 주고."
"얘가 혼자 살고 있긴 한데, 부모님이 잠깐 어딜 간 거라고 했어요. 그치, 꼬맹아?"
"네? 아... 예, 저 고아 아닌데요."
나는 입안의 국수를 얼른 씹어 삼키고 대답했다.
어무니 있어요, 아부지도 있고. 꼭 돌아 온다고 했어요. 언제 돌아온다고 헀지? 겨울이 되면 온다고 하셨나? 갑자기 머릿속이 뒤엉킨 것처럼 뒤죽박죽이었다.
젊은 남자가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눈이 마주치자 턱을 잡히기라도 한 듯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그 새까만 눈을 보고 있자니 귀신 그림을 그릴 때처럼 등골이 선뜩해졌다.
"어디까지가 현실인지도 모호하나보군. 너 계속 그렇게 귀신이나 그리다가는 잡아먹혀. 귀신들이 제일 싫어하는게 '보는' 사람이고, 제일 좋아하는 것도 '보는' 사람이야. 꼬셔서 잡아먹기 쉽거든."
"저는 귀신을 못 봐요. 신기가 없어서 아무것도 못 보고 못 듣거든요."
"네 눈은 저쪽 세계하고 이어져 있어. 네 조상중에 누군가가 영안을 가졌던 게 대물림 됐거나, 아니면 운이 좋아서 죽었다가 살아났을 때 이런 눈을 가지게 되지. 귀신을 본다고 하기엔 좀 그렇고, 약간의 예지력으로 그것들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는 거야. 하지만 그뿐. 무당처럼 접신해 그 능력을 사용할 수도 없고 귀신을 불러낼 수도 없으니. 부적 재료가 될 그림이나 그릴 수밖에. 누군가의 제자로 들어가 십몇년 수행 한다면 써먹어볼 수 있는 능력이기는 하다만... 네 팔자가 그리 편해보이지도 않고. 몹쓸 인간들에게 이용이나 당하다 단명하는 팔자지."
박태수가 옆에서 펄쩍 뒤면서 손을 내저었다.
"저는 진짜 몰랐어요. 꼬맹이가 그렇게 말하기에 그런 줄 알았죠. 부모님이 잠깐 어딜 갔다고 하니까요."
"그러고도 신령님이 도와주시던?"
"저도 이번만 부탁하고 그만두려고 했어요. 급해서 그랬어요. 창귀는 갑자기 필요하다고 하지..."
"하필 창귀야? 창귀들이 어떤 놈들인지 알면서."
이번에 그린 그림에 있는 귀신이 창귀인 것 같았다. 누가 설명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나는 그저 보고 그림으로 옮길 뿐이었다.
"밤에 들리지 말아야 할 게 들리거든 찾아와라. 그 그림인지 뭔지도 이제는 그만두고. 이거면 당분간은 먹고살 거다. 막내 누나 찾아서 가던지 해. 그 집 가면 먹고 살 수는 있을 테니까."
내가 막내 누나 이야기를 했던가? 아닌데. 그런 이야기는 박태수에게도 하지 않았다. 박태수아저씨는 그런 걸 물어보지도 않았었다.
그는 다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으로 여전히 찌푸린 눈매로 당부하듯 작은 종이에 무언가를 적어서 내밀었다. 글을 읽을 줄 몰라도 그것이 어딘가의 주소라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적힌 서씨 성도. 내가 서씨 였기 때문에 유일하게 읽고 쓸 줄 아는 글자였다.
나는 그가 준 종이와 돈을 소중히 주머니에 넣으며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어른들 말씀하실 때는 그저 예, 해야 된다고 막내 누나가 그랬으니까.
**
박태수와 서씨 성을 가진 남자가 주고 간 돈은 반년 정도는, 나 혼자서 아끼고 먹으면 반년 정도는 어찌저찌 버틸 수 있는 돈이었다. 큰 돈, 쉽게 벌 수 없는 돈이자 언제 또 손에 쥐어볼지 모르는 돈이었다. 박태수가 그림을 의뢰하지 않으면 더이상 돈 벌 방법이 없다.
시장에서 꼬박 두시간 정도를 걸어서 도착한 집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차라리 불빛 없는 산길이 더 밝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노란 전등을 밝혀도 집은 어둡게만 느껴졌다.
나는 막내누나를 따라 가면 그 집에서 먹고살 걱정은 없을 거라던 남자의 말을 되새겼다. 그리고 처음으로 막내누나를 따라 갈 생각을 해본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 누나가 언제 떠났더라? 아니, 누나가 간 곳이 건넛마을이 맞던가?
막내누나가 짐보따리를 들고 마을과 이어진 산길을 걸어가던 뒷모습이 생생했다. 단지 그게 어머니가 떠나고 나서인지, 떠나기 전인지 그것만은 기억나지 않았다.
**
이틀동안 장대비가 퍼부은 뒤여서인지 하늘이 맑았다. 나는 오랜만에 마을 어귀에 있는 마루에 나와 있었다. 빨랫감을 한가득 들고 나온 미자 누나가 손을 흔들며 아는척을 했다.
"오늘은 왜 나와 있어?"
"영감님 언제 오셨어요?"
뒤에서 불쑥 박영감이 나타났다. 새하얀 한복 저고리를 입고 한 손에는 지팡이까지 짚고서. 내가 집에서 나오질 않아서인지 박영감을 집 밖에서 보는 건 오랜만이었다.
"뭘 훔쳐 보고 있는 거야? 거기 누가 있다고."
"훔쳐보긴요. 그냥 인사하는 거예요. 하늘 보고 있었어요, 하늘."
"왜 오늘은 귀신 그림 안그리고."
"그건 이제 안하려고요."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냥, 저도 누나 따라서 갈까봐요."
"네 엄마 기다린다더니?"
"엄마는 이제...."
영감님도 아시잖아요. 엄마는, 아니야, 온다고 하셨는데? 언제였지? 갑자기 머리가 아팠다. 생각하려고 하면 할 수록 속이 울렁거렸다.
"영운아!"
미자 누나였다. 언제 온건지 누나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어디 아파? 하고 다정하게 물어왔다.
"맨날 혼자서 뭐해. 우리집에도 놀러오고 하지."
"혼자 아니야. 방금까지 영감님하고 얘기하고 있었어."
"영감님? 누구?"
" ? 박영감님하고..."
표정을 보니 장난치는 건 아닌데, 나는 얼른 뒤를 돌아보았다. 조금전까지 서있던 박영감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 몇초 사이에 사라지는 건 불가능했다. 걸음이 불편해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노인이라면 더더욱.
"소름끼치게 또 이상한 소리야? 박영감님 사십구재 지낸게 언젠데."
"아니, 나는 분명히."
"맨날 혼자 있으니까 그런거 아니야. 집에서 맨날 대문 걸어 잠그고 나오지도 않고. 애들하고도 놀지도 않고."
마당에 앉아 그림을 그릴 때면 어둠 그 너머에 있는 것을 보기 위해 늘 대문을 열어놓았다. 그림을 그리다보면 자연스레 몰려들던 구경꾼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구경꾼들이 흩어질 때면 박영감이 늘 마지막까지 남아 잔소리를 늘어놓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상하다. 박영감이 집에 돌아가는 모습은 기억에 없었다. 대문을 들어서는 모습도. 늘 어디선가 나타났고 홀연히 사라졌다.
누나의 말과 내 기억 중에 뭐가 잘못된 것일까. 미자 누나의 얼굴이 빙글빙글 돌았다. 돌고 있는 건 내 눈인가. 나는 심한 두통을 느끼며 눈을 질끈 감았다.
나는 그날 미자 누나네 집에서 하루를 묵었다. 누나가 해 준 밥을 먹고 뜨끈한 아랫목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 쓰고도 밤새 벌벌 떨었다.
한밤중에 밖에서 누군가 문을 흔드는 듯한 소리를 듣고 놀라 일어났지만 옆에 누운 미자 누나네 식구들은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나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이불 속으로 얼굴을 더, 더 파묻었다. 문을 흔드는 소리는 두어차례 더 들렸고 새벽녘에야 완전히 소리가 멎었다.
미자 누나네 아줌마는 어제 누나에게서 박영감 이야기를 들었는지 나를 보며 연신 혀를 찼다. 밥그릇 넘치게 담아준 밥을 다 먹고 일어서려는데 누나가 말을 보탰다.
"도시로 나가면 뭘 하든지 먹고는 살 텐데. 아님 네 누나한테 연락을 해보던지. 너도 참."
"네 엄마 기다리지 마라. 네가 기다리니까 자꾸 오는 거야."
무뚝뚝한 아줌마의 말에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잘먹었습니다.
하룻밤 비운 집은 더 적막하게 느껴졌다. 대문은 늘 그렇듯 활짝 열려 있었다. 집집마다 다 사정을 아는 동네라서 가져갈 거라곤 없는 우리집에 도둑이 들 염려는 없었다. 맨날 대문도 걸어잠그고 혼자 있으니까, 라던 미자 누나의 말이 떠올랐다. 이렇게 맨날 열어놨는데 누나는 도대체 뭘 보고 그런 소릴 하지.
'어디까지가 현실인지도 모호한가보군.'
그 남자, 서 씨 성을 가진 그 남자를 만나고부터 머릿속이 뒤엉키기 시작했다.
등골에 소름이 돋는 그 새까만 눈을 보고 난 뒤로 기억이 뒤죽박죽, 뭐가 진짜고 뭐가 잘못된건지 모르겠다.
**
나는 한기를 느끼고 눈을 번쩍 떴다. 언제 잠들었던 건지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어둠에 집어삼켜지기 직전인 마당과 굳게 닫힌 방문들, 활짝 열린 대문. 늘 보던 풍경이었는데 이상하리만치 낯설고 두렵게 느껴졌다. 나는 활짝 열린 대문밖을 겁먹은 눈으로 확인했다. 아무것도 없는, 땅거미가 내린 어두운 산길일 뿐이다. 새까맣게 입을 벌린 대문이 마지막으로 그린 창귀의 모습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무언가가 그 앞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밀려드는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툇마루에 올라 서둘러 전등을 밝히고 방으로 뛰어들었다. 불을 켜고 이불을 꺼내어 그 속에 숨어 들었다. 풀벌레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들리는 거라곤 쿵쾅 거리며 튀어나올 듯 박동하는 내 심장소리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 짤랑짤랑.
방울소리.
신령님이 오시면 엄마가 흔들던 방울, 그 소리였다.
불빛 하나 없이 시커먼 창문 너머로 어둠보다 더 시커먼 그림자가 드리워졌다가 사라졌다.
불이 왜 꺼진 거지? 분명히 켜놨는데. 밖에는 누구야?
밖에 누가 있을리 없다. 왜냐면 어무니도, 아부지도...
나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얼굴을 더, 더 깊이 파묻었다. 귀를 막고 숨을 멈추었다.
들릴리 없어, 나는 엄마처럼 신기도 없고 귀신을 보지도 못하니까. 내가 할 줄 아는거라곤 귀신 그림을 그리는 것 밖에는 없잖아.
"안들려, 안들려...!"
덜그럭 덜그럭
짤랑짤랑짤랑짤랑짤랑짤랑짤랑짤랑짤랑짤랑짤랑짤랑
귀신들이 좋아하고, 또 싫어한다는 눈.
그게 화근이라면.
"제, 제 눈을 가져가세요. 귀한 거예요. 아부지 목숨하고 바꾼거랬어요. 가, 가져가세요 이런거 저는 필요 없어요!"
나는 비명처럼 소리치기 시작했다. 비명이 애원이 되자 문을 흔드는 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낡은 문짝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몰랐다.
덜컹덜컹덜컹덜컹, 쾅!
벌컥 열린 문으로 수많은 손들이 뻗어나왔다. 눈을 감아도 귀를 틀어막아도 보이고 들렸다.
뻗어나온 손이 다리를 붙잡고 다리를 타고 올라와 얼굴을 더듬었다. 고약한 냄새와 한기에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정신을 놓아버리기 직전이었다. 그때였다.
"쯧. 아무래도 신경쓰여서 와봤더니."
"아이고 이게 웬 난리래요."
낯익은 목소리들이었다.
나는 구명줄을 잡듯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손을 뻗었다. 이불은 벗겨진지 오래였는데 이상하게 사방이 어두웠다. 더듬거리는 내 손을 잡아준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려고 했지만 보이지 않았다. 오직 새까만 어둠뿐.
"저, 저, 눈이 이상해요. 아무것도 안보여요. 살려주세요."
"그러니까 가져가라느니 그런 소릴 하면 안돼. 한쪽은 그나마 살릴 수 있겠는데, 다른쪽은 이미..."
왼쪽 눈에 시원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 기운이 사라질 즈음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그을린 자국이 난 방바닥과 벽지가 먼저 보였다.
박태수와 서 씨 성을 가진 젊은 남자, 그리고 박영감이 나를 걱정스레 쳐다보고 있었다.
"안내 고맙습니다, 영감님. 길을 알려주셔서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어요."
"그러게 그런 귀신 그림 같은거 관두라고 했잖아, 이게 뭐냐 이놈아. 앞날이 창창한 놈이 눈병신이 되어서는!"
나는 잔소리를 늘어놓는 박영감을 멍하니 올려다봤다.
"영감님..."
"보여? 보이냐? 아이고 다행이다. 다행이야!"
"그치만 미자 누나가 영감님이.... "
"미자? 작년에 집에 불나서 읍내로 이사간 미자 말하는거야?"
도대체 뭐가 진실이지? 아직 꿈을 꾸고 있는 건가?
분명히 미자 누나네서 밥도 먹고, 아줌마랑 얘기도.... 얼이 빠진 내 어깨를 누군가 툭툭 두드렸다. 박태수의 일행인 젊은 남자였다.
"됐다. 이만하길 다행이다."
더이상 생각하지 말라는 듯, 이제 안전하다고 말하는 듯 해서 몸이 스르르 무너졌다. 맥이 탁 풀렸다.
나는 그 자리에서 기절하듯 잠들어 이틀만에 깨어났다.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 막내누나에게 연락을 했는지 누나가 와 있었다. 함께 가자고, 진작 데려가지 못해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누나의 품에 안겨 울음을 터뜨렸다.
평생을 살아온 집을 떠나는 것에 비해 짐은 단출했다. 누나도 나도 간단한 옷가지 외에 다른 걸 챙기고 싶지 않아서였다.
이곳에서의 기억은 이곳에 남겨두고 싶었다. 엄마의 신당과 함께.
새까맣게 그을린 미자 누나네 집 지붕. 고불고불 이어진 산길, 그 끝에 있는 새까만 어둠.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내 고향에서의 마지막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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캬 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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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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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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