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사진작가가 되기를 반대하셨던 아버지는 아이러니 하게도



당신이 임종전에 영정사진을 저에게 찍어 달라고 부탁하셨죠.."



작가는 덤덤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저는 일찍이 어릴적부터 사진과 사진기에 매료 되었습니다.



그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는 순간 짜릿한 도파민이 흘러나와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였죠.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몇 시간이고 땡볕 아래에서 탈수증에 걸려가며 기다린적도 있고




셔터를 누르기 힘들 정도로 끔찍한 동상에 걸려 손가락을 자를 뻔한 경험도 수 없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살다보니 어느 새 전 세계를 돌며 전시회를 열 정도로 유명한 작가가 되었지만



정작 인정 받고 싶어 했던 유일한 한 사람 아버지에게는 인정 받지 못했습니다."



작가는 그렇게 말하더니 이내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린듯 목소리가 희미하게 떨렸다.



"그렇게 아버지에게 영정사진을 부탁받은날 슬프기도 했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아버지에게 드디어 인정 받았다는 마음에 기쁘기도 했습니다. 렌즈를 통해 아버지의 야윈 모습을 보며



좀 더 건강한 모습일때 찍어드려야 했는데 왜 이렇게 늦게 왔을까? 라는 후회도 했었지만




그나마 살아생전에 아버지를 내 손으로 찍어드려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는 그렇게 영정 사진을 찍으신후 얼마 안가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는 수 십년동안 홀로 지내오셔서 그런지 몰라도



아버지의 유품을 치울때는 생각보다 아버지의 유품이 많이 없어서 정리하기가 수월했죠.



네.. 그 필름들을 발견하기 전까지는요"



"저는 놀랐습니다. 그렇게 사진 작가의 길을 반대하셨던 아버지의 유품속에서 그렇게 많은 필름들이 나올꺼라것 이라는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어요.




그 필름들을 정리하는데 날밤을 샐 정도였습니다.




저는 강렬한 호기심을 억누르고 밤새 정리한 필름을 챙겨 작업실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아버지가 찍은 작품들을 보며 예사 솜씨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죠.



장인 정신이 느껴졌습니다.



무엇보다 아버지의 피사체들은 하나 같이 생동감이 느껴지고



강렬한 생명력이 느껴졌죠.



그 무엇보다 죽음에 가까우면서 살고 싶어 하는 피사체들을 보며 온 몸에 소름이 끼칠정도였죠."




"예 그렇습니다. 아버지는 죽음의 작가였던 것입니다."




작가의 얘기에 어느새 흠뻑 빠져들었던 관객이 손을 들어 질문했다.



"그게 작가님의 작품 활동에 영향을 끼쳤나요?"



"예예 그렇고 말고요. 아버지의 작품 주제는 언제나 죽음이였죠.



사고 현장에서 살기 위해 어떻게든 발버둥 치는 사람들의 모습



혹은 세상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뛰어내린다는 금문교 시리즈는 가히 예술의 결정체였습니다.



선생님은 스스로 생을 포기하기 직전의 사람의 모습을 본 적이 있나요?



그 공포에 질린듯한 얼굴을 하면서 그 여느때 보다 평화로워 보이는 그 모습을요.




그것보다 아름다운 모습은 전 태어나서 본 적도 들어 본적도 없습니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저는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 받아 더 많은 작품을 이 세상에 남겨야 한다고 결심했죠."




"그래서 이렇게 오늘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제 마지막 작품의 피날레를 장식하기 위해서요."




"마지막이라고요?"




"예.. 마지막 다들 이쪽을 봐주시겠습니까? 여러분들의 모습을 담고자 오늘 이 자리에 제가 가장 아끼는 카메라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이것도요.



"
작가는 품속에서 권총을 하나 꺼내 사람들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질문을 한 남자는 당황스러운듯 작가에게 말했다.




"이것도 예술 활동 중 하나인가요? 지..진짜 총은 아니죠?"




작가는 비릿한 웃음을 남기며 총구를 하늘을 향해 보인 다음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자 이내 내밀한 화약냄새가 전시장에 은은하게 퍼져갔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상황을 이해 한 듯 비명을 지르며 전시장을 빠져나가려 했다.



부모님을 따라 아무것도 모르고 전시장에 들어온 아이들은 다 큰 어른들에게 짓밟혀 울어재꼈고



어떻게든 살기 위해 탈출구를 찾으려는 사람들로 전시장은 말 그대로 순식간에 지옥도로 변해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향해 미친듯이 웃으며 작가는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그래..바로 이거야"



그렇게 상황은 경찰이 출동하면서 금방 종료되었지만 작가는 연단에 홀로 앉아 경찰과 대치하고 있었다.




"서...선생님 이제 그만 총을 내려 놓고 내려오시죠. 아무리 예술이라지만 도가 지나쳤습니다.



다친 사람도 별로 없고 사망자도 없으니 큰 처벌은 면 할 수 있을겁니다."



협상전문가로 보이는 한 남자가 작가를 향해 말했다.



"아니요.. 이대로는 너무 아쉽습니다. 오늘 같이 최고의 날은 살면서 별로 없었습니다. 오늘 같은 날은..."



"탕!......"


다음 날 작가의 사망소식으로 연일 속보가 이어졌다. 자극적인 뉴스의 헤드라인이 가판대를 차지했다.



'죽음의 작가 광란의 예술의 보여주다. 자신의 죽음 조차 예술로 승화시킨 희대의 천재작가'



남자는 심드렁하게 자극적인 1면을 넘겨 덤덤하게 신문을 읽어나갔다.


이내 작게 신문의 구석을 차지한 2줄의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XXX웨스턴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고 발생. 사망자는 17명으로 모두 십대 학생들인걸로 알려져..."




"또 지랄이군. 이 놈이나 저 놈이나 예술한다고 지랄이구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