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등학교때는 그렇게 남자애들과 같이 놀기도 잘 놀았는데,

그렇게 잘 놀았었는데 말이지

왜 대학교에 와서는 아싸가 됐는지 모르겠다.

분명 학교를 벗어나서 다시 친구들을 만나면 새벽까지 술을 먹고

또 여름이 오면 같이 계곡도 놀러다니고 그렇게 노는데도

이상하리만큼 학교에 가면 목석이 되고 만다.

친구가 아예 없는건 아니지만.. 지금 실습중인 병원의 동료가 내 대학교 동기였다.

동기 말로는 처음에 내가 싸가지 없는 애로 보였다고 한다.

나는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ot때도 불참. 끝나고 술먹자고 해도 불참. 종강파티때도 불참.

그저 대답은 고개 푹 숙여서 "아니" , "미안" 이게 다였단다.

그래서 내가 뭔 문제가 있는 애 아닌가 싶었지만서도

생긴건 썩 추녀는 아니여서 다행히 미움은 받지 않았었다.

그러니까 내가 내 멋대로 대학을 다녔어도 이상한걸 몰랐을거다.

외로웠지만 그렇다고 사무치진 않았으니까.


그리고 졸업 예정인 지금 나는 병원으로 실습을 나가게 됐다.

무려 정신병원이다.


처음 정신병원으로의 실습 얘기를 들었을 때 설레이는거 두려운거 흥분되는거 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을만큼 무심했다.

그도 그럴것이 이 과도 내가 고르고 골라 온 과도 아니였고, 그렇다고 미래 비전이 있어서 온 과도 아니였다.

그냥 남들이 다 가니까 간거다.

누구는 생업에 치여 학교를 못갔을테니까 내가 학교 다니는게 복에 겨웠을지 모르겠으나

사실 나는 아빠가 없다.

그래서 어려 고된 일만하던 엄마 밑에서 그렇게 뒷말을 들어가며 억세게 사셨던 내 엄마가 나를 꼭 대학에 보내겠다며 우왁스럽게 쥐어준 통장에,

그 때 가득 꾸깃한 통장에 왈칵 눈물이 났었다.

그렇다고 정신을 붙잡고 자수성가 해야한다느니 이런 막연한 생각은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 역시도 그저 평범한 학생이였으니까.

그리고 자취방을 얻어주곤 나머지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교를 다녔다.

피곤이 덕지덕지 눌러붙어 아마도 야간 편의점에서 일을 해서 그런지 나는 피곤에 절여져 학교에 갔다.

무려 3년 동안을 그렇게 살았다.

그리고 떳떳하다고는 할 수 없는 아르바이트로 몸 대신 말을 팔며, 눈 속에 어떻게든 스무살짜리 꼬셔서 자빠뜨리겠다는 3~40대 손님들을 상대로

그렇게 살갑게 반년 웃었더랬다.

그랬더니 지금은 아르바이트도 않고도 백수처럼 집에서 살 수 있었다.

얼마만의 행복인지. 학교집 학교집을 반복했다.

언제 한번 바 사장님이 연락하여 술 한잔 하자고 불렀다.

드센 40대 남자고 성격은 털털한듯 했지만 눈은 또 어찌그리 큰지 금방 큰 눈에서 눈물이 쏟아질것 같은 눈을 하고 계신 분이셨다.

너는 어떻게 그렇게 매몰차냐, 사장님 안보고 싶었냐, 안부도 없고 서운하다. 등등

가만히 앉아 얘기를 듣고 있는데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물론 술을 먹어서 그런것일수도 있지만..

사장님의 따듯한 마음을 느껴서 그런건지 엉엉 울었다.

사장님이 술에 취한 나를 자취방에 옮겨 주시고, 등 토닥여 주시고, 100만원이 든 봉투도 신발장 위에 올려놓고 가셨다.

지금은 뭐 하실까 싶다.

보고싶은데 찾기는 또 애매해서.. 또 그때 갈색 수트에 턱수염이 너무 멋있어 보이기도 했고 말이지.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실습 하기로 한 첫날 지금 친해지게 된 동기 차를 얻어타고 병원을 향했다.

관계자 분들이 마중나오셔서 인사드리고 본관으로 들어섰다. 상상했던 그림이 아니라 조금 설랬다.

왠지 고려장 당한 사람들의 무덤같기도 했고, 인생 말로의 암환자들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였는데, 한마디로 "평화롭다"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벽이고 바닥이고 새것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깨끗해 보였고, 바닥 타일들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으레 병원이 그런것처럼..

소독냄새가 묘하게 풍길듯 말듯 따듯한 단 냄새가 풍겨왔다.

바깥은 따스한 빛으로 안을 비춰주고 대형 유리문 뒤로 풍경은 너무 아름다웠다.

정신병원이 이래도 되는건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동기와 들떠서 계단을 올라서는데 바로 2층으로 올라가니 분위기는 정말이지..

너무나도 정반대가 되어 있었다.

빛은 바스라들듯 빠르게 사라져 갔고, 차가운 냄새가 콧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혹시 내가 야간병동에 온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형광불의 안내판 외에 조명은 탁한 안개 속에 있는것처럼 그저 어디 부딪히지 말라는듯 말라 비틀어진 빛을 눈앞에 뿌려주고 있었다.

하얗게 페인트를 발라 놓았지만 누가봐도 단단하게 보이는 철창에 카드를 대며,

우리를 안내해주던 관계자분의 표정이 아직도 잊혀지질 않는다.

방금 밑에서 웃어보이던 그 웃음이 그대로. 따스함에서 기시감이 느껴지는 공포로 다닥다닥 목덜미에 소름이 돋아 났다.

문을 지나 덩치 좋은 남자들을 지날때는 무서워서 숨이 쉬어지질 않았다.

동기도 역시 말이 없었다. 서로 눈을 마주볼 필요도 없이 분위기가 그랬다.

그걸 아는건지 가드 한분께서 인사를 건냈다.

그냥 미소를 띈 인사였는데도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은 마음이 사륵하고 녹아내렸다.

다시 마음을 붙잡고 복도 끝 부원장실이라고 적혀져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는 다시 빛이 세어 나왔다.

몸도 마음도 녹여줄 것 같은 빛이 내 몸을 감싸며, 나는 그 방으로 들어갔다.













2）



부원장실에는 환한 빛이 가득했다.

그냥 단순히 형광등으로 밝혀진 빛이 아니라, 외부에서 들어오는 빛으로 가득했다.


어려서 나는 축농증에 시달렸는데 그것이 줄 곧 내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지 수술을 하고 깨달았다.

왜냐하면 냄새를 쫓다가 지쳐 냄새를 포기하고 다들 향수타령을 할 때 나는 찌그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냄새나지 않을 정도만 페브리즈를 뿌렸다. 의식적으로 음식냄새를 지우기 위해?

너는 매운 맛이 나? 너는 어떻게 맛을 느껴? 같은 소리를 팽팽 코를 풀어댈때마다 축농증때문에.. 라는 말미에 따라 붙었다.

그러니까 수술을 하고 난 뒤로는, 길가에 희미하게 맡아지는 냄새. 매연냄새, 담배냄새, 음식냄새들.

그리고 쓰레기 태우는 냄새를 맡거나 흙 내, 물 비린내, 소똥냄새 같은 내음을 맡고 유년시절이 스치듯 머릿속을 지나갔기 때문에

정말 기억하고 싶어도 기억할 수 없는 것들을 그저 냄새로만 바로 떠올릴 수 있게된 이례로,

난 무언가를 처음 보거나 만질 때 냄새를 맡는 습관이 들어 버렸다.

그래서 원장실에 들어갔을 때 무슨냄새가 났냐고?

지독히도 쌓여버린 먼지냄새, 구석구석 음습하게 쌓여버린 무언가가 풍기는 싫지는 않아도 결코 좋지 않은 냄새들로 그 방은 가득 차 있었다.

침을 꼴깍 삼키고 애써 긴장한 척 표정을 숨기려 했다. 희미하게 풍기지만 느끼하고 눅눅하게 빗물이 베어있는 것 같은 냄새들.


"어~"


동그란 안경을 쓰고 있는 남자는 정돈 안 된 짧은 머리털에 개기름이 흐르는 얼굴로 이상한 향수를 덧댄 채 우리들 앞으로 걸어와 악수를 건냈다.

양손을 손을 마주 잡히고 딱딱하게 손이 굳어버렸다.


"실습 학생들? 어서와요"


미소짓는 입가에 더러운 용모와 대비되는 하얀 이들이 가지련했다. 애써 좋은 사람이다. 또는 타고난 외모가 저런 것이다 해서

최대한 좋게 보려 노력했다. 내가 사람을 이유없이 무시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이게 비호감이 아닌가 싶다.

안내해주신 분이 웃으며 잠깐 얘기 좀 하고 있어요 하고 음료수? 하길래 말없이 손을 흔들었지만 나도 여기 있기가 싫어.. 라는 느낌으로

바삐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거기에 남겨진 나와 친구는 웃는 얼굴의 마네킹처럼 웃었다 풀었다를 반복했다.


"어차피 한달 반정도 같이 있을테니까 친하게들 지내자구, 여기 일하는 사람들 다 좋은 사람들이니까 너무 딱딱하게 안해도 되요"


그 말에 몸이 더 딱딱해지는 것 같았다. 한달 반이라...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듣고나니 표정이 어두워 졌다.

왜 무슨일 있냐? 정신병원이라 실망했냐? 하하? 따위의 말들을 했던걸로 기억하는데, 나도 반자동적으로 얘기를 주고 받아 그 뒤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내 친구는 돌아가는 차 안에서 생각보다 괜찮다, 사람들이 친절한 것 같다 등등의 말만 해댔던 걸로 기억한다.

그보다도 첫 인사자리에서 기억에 남는 부분은 바로 지금이다.

시속 40km라고 적혀진 구불구불한 길 끝에, 왠 치렁치렁 생머리를 한 눈이 큰 예쁜아이가 환자복 차림으로 천천히 걸어 올라가는걸 봤기 때문이다.

뒤로 부모처럼 보이는 사람도 봤는데, 환자복만 아니였다면 산보라도 걷는 줄 알았을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여자아이를 쫓아 눈을 돌려댔다.

왜? 라고 묻는 친구의 말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긴 했지만, 뭐 환자들도 저렇게 병원 외부로 면회가 되는건가? 싶기도 했다. 막연한 상상 속에서 환자들은 어디 침대에 묶여 있거나, 옹기종기 앉아 우울하게 말 한마디도 없이 그렇게 있을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닌듯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