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너무 헛헛하네요
고민 게시판인데 저 스스로도 고민이 무엇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어서 그냥 글을 씁니다
꽤나 장문일 것 같으니 맘에 안드시는 분에게는 죄송한 마음 전합니다
그냥 속풀이라고 생각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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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내 부모님이 이혼함
내 나이 서른 중반이라 부모님의 이혼 그 자체에는 별 감정이 없음
다만 부모님 서로가 서로를 헐뜯고 자신을 보양하는 그 행태에 질려버렸다
그렇게 몇시간이고 떠들고 난 뒤의 마무리는 신기하게도 양쪽 다 똑같다
그래도 너네 엄마 혹은 아빠니까 잘 대해드리라고
그간 신명나게 보여준 인간성의 끝에 비해 이 포장지는 너무나 작고 하찮다

그렇게 서로 갈라선 뒤에 아버지는 어떤 아줌마와 재혼했다
한가위기도 하니까 일가친척들에게 소개해준다고 뻔질나게 돌아다녔나보다
인사해 새 큰엄마야, 인사해 새 동서야
이를 맞닥드린 친척 어른들은 곧바로 나에게 전화를 한다
그러고선 이게 무슨 개판이냐며 그들의 감정을 성토한다
그래 장손인 우리 형이 투병중이니 그들이 성토하기에 마땅한 존재는 나밖에 없겠지
연휴 시작부터 오늘까지 작은 아버지부터 막내 작은 아버지, 그리고 사촌까지 내 폰은 하루도 쉰 적이 없다
이 꼴 보기 싫어서 일부러 고향과 먼 위치에 직장을 잡았지만 21세기에 고작 물리적 거리로 벗어날 수 있을 리가 없지

일로 온 동네라 보니까 친구도 없다
한가위 당일에 나의 씁쓸한 주제로 대화할 존재도 없다
그나마 마음 붙여가던 상대는 본인의 행복을 찾았다
그렇다 멀리 떠나고 보니, 돌이켜 보니 나는 혼자다
어젯밤에는 마음이 너무 답답해서 근처 산의 전망대로 갔었다
다행히도 사람 하나 없고 빛조차 없더라
거기에서 소리치고 욕하다 보니 자정을 넘겼고 그렇게 한가위가 되었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던가?
겪어보니 거짓이다
모든 감정은 나누면 배가 된다 여기에 슬픔이니 기쁨이니 하는 정의는 필요없다
어제의 나는 내 슬픔을 산과 들풀과 나눴다
그들은 감정이 없기에 내 슬픔은 오롯이 내가 가진 하나 뿐이다

흐릿한 정신으로 오늘을 시작했다
역시 부재중에 찍혀있는 친척어른들
오늘도 우리 아버지가 한건 하셨나 보다
날 찾는 존재는 일 밖에 없어서 그런가 잠시 출근해서 잔업을 처리했다
그러고 나니 오후 세시, 갈 곳이 없다
근처 한바퀴 드라이브 다니는데 갑자기 마음이 너무 흔들렸다
바늘 하나만 톡 해도 몸이 터질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되지만 내 몸을 채우는 이 답답함을 빼내기 위해서는 피를 꼭 봐야한 할 것 같았다
그렇게 부리나케 집에 들어오고 부엌을 뒤져봤더니 끝이 뭉툭한 식칼 몇개 뿐이었다
역시 공산품이구나 어설픈 마음과 상황 가지고는 상처 입힐 수 없는 것들이구나 싶었다
거실 탁상 위에 약통이 보인다
사실 이미 우울증이 있어서 약을 처방받아 지내는데 갑자기 눈에 띄었다
저기에 내 평안이 있는가?
하지만 당연하게도 치사량 이상의 약을 처방해줄 일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분란을 만들 필요는 없겠지 그냥 술이나 마셔야겠다

술에 너무 빠져 지낸지 2년째여서 요즘엔 운동도 하고 좀 건강해져야겠단 생각으로 한달을 보냈는데
건강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이 더러운 꼴을 더 오래 봐야 하잖아

풍성한 한가위다
무엇이 풍성한지는 각자 다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그닥 좋지 않은 것들 인 것 같다
홀로 지내는 것에 충분히 적응했다고 생각했는데 고작 몇 주 정도 지팡이 짚었다고 거기에 금새 물들었나 보다
들은 물이 빠지고 나면 다시 나는 평안해질까 그때가 되면 이 거지같은 상황도 빛이 바래질까
일단 당장은 조금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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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평안한 연휴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