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드렸던 연재물 시작합니다*-_-*

'여름방학이 끝날 때 쯤'과 '지하실에서'를 쓰셨던 RoLLo님의 글입니다.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오컬트한 스탈을 추구하시는 분이라

괴기/엽기 만땅인 장면들이 줄줄이 쏟아집니다.

일단 앞부분은 등장인물과 중요 소재가 등장하는 단계라 정도가 덜하긴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괴기스럽고 끔찍한 장면과 인물심리들을

냉소적이고 장난스럽게 표현하는 RoLLo님 특유의 문체로

읽는 재미가 쏠쏠한 글입니다.

간만에 느낌 있는 글을 전해드리게 될 거 같군요*-_-*

전체 편수는 10편 내외가 될 거 같습니다.

한 편 한 편이 길어서 나누게 될 거 같은데 어떤 식으로 나눌지는 아직 못 정애서요.

그럼 어떤 장난이 펼쳐지고 그로 인해 어떤 일들이 벌어질 지 살펴보러 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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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어둠의 문（cafe.daum.net/blacknovel） & 리얼판타（www.realfanta.com）

작가 : RoLLo


금지된 장난






*** 부제: 바퀴벌레의 지구 점령기 ***




1




삐걱거리는 발소리를 듣고, 기천은 지금 새엄마가 계단을 올라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발소리는 문 앞에서 멈췄다.

" 똑 똑 "

" 예....... 일어났어요. " 기천은 귀찮다는 듯 빠르게 대꾸했다.

다시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기천은 저 삐걱거리는 발소리만 들어도 신경이 예민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곧 개에게 밥을 줄 때마다 종을 울리면 나중엔 종소리만 들어도 침을 흘리는 것처럼 기천에게 있어 새엄마의 발소리는 조건반사와도 같은 것이었다. 기천은 이제 계단 소리만 들어도 신경이 날카로워 지는 것이었다.

부엌에선 기천의 새엄마가 식구들을 위해 된장찌개와 계란말이를 정성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가스 렌지 위엔 구수한 냄새가 풍기는 된장찌개가 뚝배기 안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었고, 그 옆에선 계란말이에 넣을 파를 도마 위에 가지런히 놓고 잘게 써는 중이었다. 서재에 앉아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물고 있는 최준영（기천의 아버지）은 3일전에 새로 들어온 이태리 풍 수납장을 요리조리 살펴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기천보다 두 살 위인 고등학생 승지는 이번에도 자신의 생리일이 빨라진 것에 대해 짜증을 내며 신경질적으로 생리대를 팬티에 붙이고 있었다.

식탁에 앉은 식구들은 별로 말이 없었다. 새엄마는 오늘 아침엔 반드시 자신의 중대 발표를 가족들에게 공표하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하지만 침묵이 흐르는 아침식탁에서 어떤 식으로 이 얘길 꺼내야 할지 막막했다. 그녀는 누군가 먼저 이 식탁에 앉아있는 무거운 침묵을 깨주기 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승지였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가 바라던 것이 아니었다.

" 아씨........ 이게 뭐야......... 난 일본된장 밖에 안 먹는다고 했잖아. "

그녀는 난처했다. 오늘 같이 중대발표가 있는 날에 저 버릇없는 계집애가 초를 치기라도 한다면 중대발표는 흐지부지하게 끝나고 말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당연히 자신의 중대발표가 빛을 발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그녀가 이 집에서 6년 간 식모살이를 한 것에 대한 대가이기도 했었다.
그녀는 어떻게 해서든 승지를 잘 달래야만 했다.

" 미안해 승지야. 대신에 엄마가 오늘 저녁에 승지 좋아하는 샤브샤브 해줄게. "

" 됐어. "

새엄마는 귀가 빨개질 정도로 민망스러웠지만 아무도 그녀를 위해 이 버릇없는 아이에게 따끔한 한마디를 해 줄 만한 사람은 이 집에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녀의 남편마저도.........
솔직히 이 집에서 남편은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그는 자신의 일과 취미생활（골동품수집） 밖에는 모르는 사람이었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3일전에 새로 들어온 낡은 이태리 풍 수납장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조그만 문에 새겨져 있는 바로크양식의 날렵한 곡선을 따라 밑으로 내려가다 보면 금도금이 돼있는 젖꼭지같이 볼록 튀어나온 손잡이가 세월의 손때를 간직한 채 시간의 간격을 뛰어넘어 지금 자신의 서재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는 이 집안에 가장이기 전에 어쩔 수 없는 한 명의 못 말리는 수집광이었던 것이다. 아마 이 집에 불이라도 난다면 그는 가족들보다 자신의 애장품들을 먼저 챙길 그런 위인이었다. 믿지 못하겠지만 몇몇 지독한 수집광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 수집품들에게 지배당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고 한다. 그러니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하면 그건 이미 그 사람의 의지와는 상관없다고 일로 봐야 될 것이다.

" 오늘 다들 일찍 들어올 수 있죠? " 그녀가 가족들을 향해 말했다.

" 왜 그래?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야? "

" 네....... 아주 중요한 일이에요. 오늘 저녁에 파티를 할거거든요. "

그녀는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사실 자신의 입으로 자신을 위한 파티를 한다는 것은 여간 쑥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 무슨 파티를 연다는 거야? 오늘 누구 생일인가? " 남편이 시큰둥하게 물었다.

" 아뇨....... 실은 저........ 임신했어요. "

" 풋......... " 기천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 왜 진작 말하지 않았어? " 방금 전 시큰둥함이 충격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 저도 이틀 전에 알았어요. 병원에 가니까 의사선생님이 글쎄 3개월 째라지 뭐예요. 호호 "

" 풋........ "

기천은 아예 밥도 먹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어야만 했다. 남편은 그런 기천에게 눈치를 줬다. 승지는 그런 가증스러운 새엄마의 입을 꿰매버리고 싶었다. 이제 이 집에서 자기 자식까지 낳게 된다면 그녀는 더더욱 엄마 행세를 하려들게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었다. 승지는 만약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녀를 괴롭혀 이 집에서 쫓아내겠다고 다짐했다.

" 혹시 내 도시락에다 계란말이 집어넣은 건 아니지? " 승지가 새엄마에게 말했다.

" 넣었는데...... 왜? 계란말이 싫으니? 그럼 다른 걸로 싸줄까? "

" 됐어!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 "

승지는 신경질적으로 말하고 나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싱크대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 위에 놓인 분홍색 도시락 가방을 열어 안에서 노란 색 반찬통을 꺼냈다. 반찬통 안에는 금방 만든 따끈따끈한 계란말이가 일렬횡대로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 승지야, 엄마가 금방 새로 싸줄게. 뭐가 좋을까? 햄 싸줄까? "

" 아으~~~~ 지겨워! "

승지는 계란말이를 하나도 남김없이 설거지통 안에다 털어 넣었다.

" 야 임마, 그게 무슨 짓이야! " 남편이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 여보, 그만 하세요. "

" 승지야, 엄마가 새로 싸줄게. 그러니 그만 화 풀어. 응? "

승지는 새엄마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새엄마는 말없이 싱크대로 가서 설거지통에 떨어진 계란말이들을 손으로 줍기 시작했다. 그녀에게는 정말 몸이 떨릴 정도로 치욕스러운 일이었다. 뱃속의 아기가 이런 자신의 기분을 알까봐 두려웠다. 한심스러운 듯 옆에서 새엄마를 쳐다보던 승지는 들고 있던 반찬통을 설거지통에다 휙 집어던져 넣고는 부엌을 빠져나왔다.

" 쟤가 그런데.......... "

" 됐어요. 전 괜찮아요. 그만 두세요. "

" 휴~~~~~ "

남편이 항상 저런 식으로 승지에게 화를 내는 척 한다는 것쯤은 그녀도 잘 알고있었다.
그녀의 예상 대로였다면 지금쯤 즐거운 아침식사를 하고 있어야 했지만, 된장찌개와 계란말이가 모든 것을 망쳐놓고 만 것이다. 그녀의 중대발표는 색 바랜 벽지처럼 모두의 기억에서 쓸쓸히 지워지고 있었다.

승지는 학교에 가기 전에 못내 생리대가 불안했는지 화장실에 들어가 마무리를 짓고 가기로 했다. 교복 치마를 걷어 올리고 나서 팬티를 내렸다. 새하얀 생리대에 붉은 생리혈이 아주 약간 묻어 있었다. 승지는 생리대를 떼어내 동그랗게 만 후 새로운 생리대를 팬티에 붙였다. 그리고 떼어낸 생리대를 휴지통에 버리기 위해 허리를 굽혔을 때 좌변기 구석에서 머리카락 같은 가는 실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승지는 좀 더 허리를 숙여 그것을 확인하려 했다.

" 꺄아악~~~~~ "

비명소리를 들은 식구들이 일제히 화장실로 달려갔을 때 한 손에 생리대를 든 승지가 사색이 된 얼굴로 안에서 튀어나왔다.

" 왜 그래. 무슨 일이야?! "

" 아빠...... 안에 그게 있어....... 그게..... "

" 그게 뭔데? "

" 바퀴벌레! "

" 뭐야? "

" 어서 죽여줘 어서........ "

준영은 슬리퍼를 들고 좌변기 근처로 다가갔다. 하지만 예민한 더듬이의 감각은 준영이 일으키는 미세한 공기의 흔들림을 감지하고는 재빨리 갈라진 벽 사이로 달아나고 말았다.

" 쳇...... 빠르네. "

" 그게 아니라 아빠가 굼뱅이 같은 거겠죠. 큭큭. "

뒤에서 팔짱을 낀 채 방관만 하고 있던 기천이 우스워 죽겠다는 듯 말했다.

" 한 동안 안나온다 싶었는데..... 날씨가 더워져서 그런가 봐요. 여보 "

" 이것 참........ 완전히 박멸한 줄 알았는데. 생명력이 무지 길군 그래. "

" 어쩌면 당신이 새로 들여온 가구들 때문에 그럴지도 몰라요. 거기에 달라 붙어온 게 아닐까여? "

" 쓸데없는 소리........ 들여오기 전에 깨끗이 소독을 했다고. "

" 아빠, 바퀴는 생명력이 무지 강하다 구요. 아무리 소독을 했다고 해도 알 하나 정도는 끼어 들어올 수 있다 구요. 그게 한 마리만 부화됐다고 쳐도 지금쯤 몇 백 마리로 번식했을지 모르는 일이잖아요. 헤헤...... "

" 까악......... 그런 건 정말 싫어. 어떻게 바퀴벌레 나오는 집에서 살 수 있냐구. 그럴 바엔 차라리 미국 가서 엄마하고 사는 게 났지. "

" 진정해. 승지야. 아빠가 바퀴 다 없애줄게. "

" 그러긴 힘들걸요. 일단 한번 번식한 놈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거든요. 특히 이 집은 오래된 목조 건물이라 녀석들이 서식하기엔 안성맞춤이죠. 어디에 또 저런 갈라진 틈이 있는 지 알 수가 없거든요. 킥킥 " 기천은 재밌다는 듯 히죽거리기 시작했다.

" 넌 그만 나불거리고 가서 밥이나 먹어. " 남편이 기천에게 다그쳤다.

모두들 걱정스런 눈으로 바퀴벌레가 사라졌던 갈라진 타일 사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2




기천이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침부터 반 아이들은 또 준혁을 괴롭히고 있었다. 기천은 그런 준혁을 못 본 체 하고 자기 자리를 찾아가 앉았다. 사실 준혁은 기천과 초등학교 동창으로 지금도 같은 동네에 살고 있다. 어렸을 때는 함께 놀며 어울렸었지만 나중에 준혁이 간질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기천 쪽에서 준혁을 멀리하게 되었던 것이다. 기천은 아직도 중학교 입학식 날을 잊지 못했다. 입에 거품을 문 채 발작을 일으키던 준혁의 모습.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그때부터 준혁에겐 왕따의 인생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기천은 그런 녀석과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자신도 함께 도매 급으로 넘어가는 것이 두려웠다.

준혁을 괴롭히는 데 앞장선 것은 역시 이 반의 짱 방석호였다. 강자는 약자를 보호하기보다는 괴롭히고 짓밟는 것에 더 희열을 느끼기 마련이다. 방석호가 준혁의 한쪽 귀를 잡고 비틀었다.

" 아얏........ 그만해. 제발....... "

" 그러니까 빨리 해보란 말야. "

" 안돼..... 그것만은........ "

" 아~~ 정말 짜증나게 하네. 이게..... "

석호는 사정없이 준혁의 귀를 비틀었다. 이미 준혁의 귀는 시뻘겋게 부어있었다.

" 제발...... 아프단 말야........ "

" 그러니까 한번 해보라고 시발 새꺄 "

준혁은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 야, 석호야...... 안 되겠다. 화장실로 끌고 갈까? 거기선 할지 모르잖아. "

" 빙신. 그러면 재밌냐? 우리끼리 보자고? "

" 이 새끼 죽어도 안 할 것 같은 데? 어떻게 할까? "

갑자기 석호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 쳇..... 새끼 고집하고는...... 야, 태식아 그거 가져와라 "

모두의 시선이 태식에게로 쏠렸다. 준혁도 멀찌감치 떨어진 자신의 자리에서 이 광경을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짓궂게도 태식이 가지고 온 것은 준혁에게는 독과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얼마 전에 마대자루에 엉켜 죽은 바퀴벌레 한 마리였다. 준혁은 벌레라면 도망부터 가는 녀석이었다. 그 녀석만큼이나 벌레를 싫어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하다 못해 개미 한 마리에게도 쩔쩔 매는 녀석이었다. 만약 벌레를 손에 올려놓는 것과 63빌딩 꼭대기에서 떨어지는 것 중에 하나를 택하라 한다면 주저 않고 뛰어내릴 놈이었다. 기천은 어느 누구보다도 그것을 잘 알고있었다.

사태가 어떻게 돌아갈 것이라는 것을 이미 눈치 챈 준혁은 벌써부터 얼굴에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석호는 태식에게서 죽은 바퀴벌레를 건네 받고는 그것을 준혁의 얼굴에다 가져갔다. 준혁은 뒤로 도망치려했으나 이미 석호 일당에게 어깨를 붙잡힌 상태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준혁은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처럼 보였다.

" 제발....... 안돼...... 싫다구....... 살려줘....... "

코앞에 드리워진 바퀴벌레를 보자 준혁은 사색이 된 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이러다가 발작이라도 일어나면 큰일이었으나 석호일당은 그런 것쯤은 개의치 않다. 오히려 그렇게 된다면 더욱 흥이 날 것이기 때문이었다.

" 오~~~ 이 새끼 봐. 잘 버티는 데...... "

" 야. 바퀴벌레하고 뽀뽀시켜봐. 큭큭 "

" 그럴까? 준혁아. 이 놈이 너하고 뽀뽀하고 싶다는데...... 받아 줄 거지? "

" 와 하핫...... 어서 해봐. 어서....... "

" 안돼 안돼 안돼 안돼 ............. 제발 "

준혁은 마치 레코드판이 튀었을 때처럼 같은 말을 무의식적으로 되풀이하고 있었다.

" 알았어, 할게, 할게, 할게....... "

" 진작 그렇게 나올 것이지....... 드디어 준혁군의 쇼타임이군 크크 "

석호는 유쾌한 웃음을 지으며 준혁에게서 바퀴벌레를 거두었다. 석호의 저런 웃음은 항상 자신의 고약한 계획이 성공할 때 나타나는 것이었다.
준혁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주의에 있던 석호의 무리들은 짓궂게 그를 부추기고 있었다. 그러자 멀리서 방관만 하고 있던 반 아이들도 흥미를 느꼈는지 하나둘씩 주위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아무도 그런 짓을 말린 만한 생각은 갖고 있지 않은 듯 보였다. 기천도 궁금한 듯 그 근처를 기웃거리고 있었다.

준혁은 울상이 된 채 자신의 바지 지퍼를 내렸다. 그리고는 자신의 물건을 팬티 안에서 끄집어내었다. 아직 포경도 안된 소년의 성기가 부끄럽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러자 여기 저기서 킥킥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 뭐야...... 아직 고래도 안 잡았냐? 큭큭..... "

준혁의 성기는 친구들의 노리개 감이 되었다. 아무도 지금 이 순간 준혁이 받는 정신적 충격 따위는 신경 쓰지 않은 채, 다만 자신들의 것이 준혁의 것보다 낫다는 식의 농담만을 주고받을 뿐이었다.

" 야, 이런 번데기를 어디다 갔다 쓸래? 응? "

그러자 석호녀석이 의기양양하게 나서며 말했다.

" 임마, 다 꼴리면 쓸 때가 있단 말야. 킥킥..... 자 준혁씨 당신의 능력을 보여 주세요. "

준혁은 아까부터 고개를 처박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말을 씹는다며 화를 내는 석호가 준혁의 앞머리 채를 부여잡고는 그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 준혁의 눈에선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 이 새끼...... 뭘 그런 것 같고 울고 그래...... 사내새끼들끼리 다 보여주고 그러는 거지? 안 그래? 자, 어서 해봐. "

준혁은 머뭇거리며 오른 손으로 자신의 성기를 잡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그것을 앞뒤로 흔드는 피스톤 운동을 흉내내었다. 구경하고 있던 아이들은 모두 자지러지며 때굴때굴 구르기 시작했다. 준혁의 쇼타임은 학생주임이 교실 복도를 지나갈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는 자리에 앉고 나서도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러자 바로 뒤에 앉아있던 석호가 짜증난다며 준혁의 의자를 발로 걷어차 준혁을 바닥에 쓰러트렸다. 하지만 60명의 반 아이들 중에 준혁을 도와 주는 친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도와주기는커녕 그런 준혁을 쳐다보지도 않고 오로지 자신의 일만을 할 뿐이었다. 준혁을 도와주는 것은 곧 석호와 맞서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반 아이들은 모두 석호를 두려워했고, 자신이 준혁과 같은 왕따가 되지 않으려면 이 교실 안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폭력에 대해서도 모른 척 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들은 점점 무기력해져갔고 이젠 어느 정도의 폭력에 대해서는 무감각해질 수가 있었다. 이 반 아이들은 이미 폭력에 대한 불감증을 갖기 시작했고, 그것은 기천도 마찬가지였다. 기천은 석호에게 당하고 있는 준혁을 보며 한심하다는 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것은 기천 자신이 준혁보다 우월하다는 대해서 오는 자기 만족감 같은 것이었다.





3




학교를 끝마치고 집에 가던 중 기천은 동네 골목 귀퉁이에서 무언가를 보고는 잠깐 멈춰 서게 되었다. 그것은 미란의 집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준혁과 미란이었다. 미란은 준혁처럼 기천과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그랬던 것이 중학생이 되자 기천과 준혁은 남자 학교에, 미란은 여자 학교에 각각 따로 다니게 되어 서로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예전에 기천은 가끔 이곳을 지나다 미란을 볼 때면 어렸을 때처럼 짓꿎게 장난을 치기도 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것들도 차츰 사라져 갔고, 멀리서 보기라도 하면 일부로 못 본척하곤 그냥 지나치기 일쑤였다. 그것은 기천 쪽에서 더 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기천의 눈엔 미란도 여자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미란과 단둘이 있는 준혁의 얼굴이 무척 밝아 보였다. 오늘 아침에 교실에서 그런 치욕을 당하며 눈물을 질질 짜던 준혁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었고, 이젠 미란 앞에서 듬직한 남자인 척 행동하기까지 했다. 기천은 그런 준혁의 얼굴에 침을 뱉고 싶었다.

" 쳇, 병신새끼......... "

미란과 준혁은 사이가 아주 좋아 보였다. 언제부턴가 저 두 녀석들이 자기만 빼놓고 따로 놀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기천은 은근히 화가 났었다. 기천은 자신이 준혁보다 당연히 우월해야 한다고 줄곧 생각해 왔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준혁의 모습은 기천 자신보다 훨씬 행복해 보였고 또 우월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이 저런 덜떨어진 녀석보다 못하다는 것이 지금 이 순간 기천을 미치게 만들었다.




4




새엄마는 모처럼 자신을 위한 파티로 인해 한껏 들떠 있었다. 자신과 뱃속에 있는 아이를 위한 파티. 그녀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족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남편을 위해서 육회를 만들었고, 기천이 제일 좋아하는 잡채와 샐러드, 승지를 위해서 싱싱한 고기와 야채로 샤브샤브를 할 작정이었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이젠 가족들을 이 풍성한 식탁에 앉혀 놓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가족들은 그런 그녀의 기대를 무참히 짓밟아 버리고 말았다.

" 띠리리링~~ "

그녀는 거실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

" 음. 난데. 오늘 야근을 해야될 것 같아서. "

" 어머. 하필 오늘....... 꼭 당신이 해야되는 거예요? "

" 미안해. 중요한 일이라서. 늦게 들어갈 것 같으니까 기다리진 말고. 그럼 끊을게. "

" 여보....... "

" 뚜......... "

30분 후 한 통의 전화가 또 걸려왔다.

" 여보세요? "

" 저예요. 새엄마. "

" 음. 기천아..... 학원 끝난 거니? "

" 예. "

" 그럼 어서 들어와. 엄마가 맛있는 거 많이....... "

" 죄송해요. 오늘 친구 생일이라 서요. 좀 늦게 들어갈 게요. 아빠한테는 잘 말씀해 주세요. 뚝........ "

" 기천아...... "

그녀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나서 그만 기운이 빠져 소파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잠시 후, 승지가 파김치가 되어 들어왔다.

" 승지야. 밥 안 먹었지? "

" 안 먹어. "

승지는 새엄마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휙 하니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녀는 차갑게 식어 가는 음식들을 말없이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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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대략의 중심인물들이 출연을 마쳤습니다.

어딘가 비뚤어진 듯한 캐릭터들이 줄줄이 등장하는군요.

이들은 이기심과 욕심으로 점철된 비뚤어진 인간 본성을 표방합니다.

비뚤어진 이기심과 욕심 그리고 그로 인한 증오 등이 뻗어나가고 싶은대로 뻗어나갈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기대해 주세욧!>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