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흣...

원래 감질맛 나게 올리려던 게 제 의도였는뎁;;

글나 첫 재촉 코멘을 받고 특별히 바로 하나 올려드리겠습니다 ㅎㅎㅎ

중반부를 넘어서면서부터 스퍼트가 붙기 시작하죠?

이번에도 꽤 멋진 장면이 나오네요 ㅎㅎ

들어가 보아용~ （*__）s

========================================================================================

출처 : 어둠의 문（cafe.daum.net/blacknovel） & 붉은 벽돌 무당집

작가 : mypre



스스로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승현은 얼마 전 꾸었던, 자신이 최초로 유재훈의 미라를 보았던 꿈을 생각해냈다. 다음날 김성준이 사망했고 자신은 알 수 없는 일들로 인해 조금씩 유재훈이라는 인물을 알게 되었고...자신도 모르게 사립탐정에게 유재훈의 뒷조사를 의뢰한 뒤 주희의 집에서 그를 실제로 만났다. 격투 끝에 놈은 알 수 없는 의문들을 남긴 뒤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오늘 승현은 사립탐정에게서 그에 관한 많은 실마리들을 들은 것이다.
그의 주변에서 나타난 모든 불안한 징조나 끔찍했던 일들 중 승현이 직접 관련되어 있다거나...그가 했던 일은 없었다. 상당히 힘든 지난 1주일이었지만 승현은 사건들의 가장자리에서 뛰어다녔을 뿐이었다. 더군다나 수혁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 자신이 망설임없이 사립탐정에게 전화를 건 것도 조금 억지스러웠다. 유재훈과 승현은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었다. 김성준의 살인사건과 그가 연관된다 하더라도 승현과는 관계없는 일이었다. 어제 유재훈의 끔찍한 미라를 만났다고 하더라도 미라는 승현을 죽이지 않았다.
자신이 이 일 사이에 끼어서 뭔가를 밝혀보려 하는 것은 분명히 앞으로 일어날 뭔가 불안한 일들에 대비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렇지만 왜 하필 승현이 이것들을 스스로 밝혀내야 하는가? 나는 왜 이러고 있는 걸까... 많은 것들이 잘 연결되지 않았다. 다른 말로 하면 모든 것은 필연성이 없었다. 승현은 망가진 톱니바퀴 사이에 물려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삐걱거리는 그것의 톱니 사이에 단단히 낀 자신의 몸은 불규칙적으로 찢겨나가고 있었다.
'정말 나는 왜 이 일에 이렇게 매달리고 있는거지...'
잠시동안 생각하던 그는 결국 대답을 찾아낼 수 있었다. 언제나 가끔 생각나는 젊은날의 아픈 기억이 다시한번 가슴속에 떠돌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고객의 사정으로 전화를 받을 수 없으니.....
띠익...
"주희야...나야. 승현이...말년 휴가나왔어...무슨..일 있는거니? ..무슨 일이야..아무 일 없지?..차라리 니가 전화를 일부러 안받는거였으면 좋겠어....제발...부탁이니까..제발 전화좀 받아줘.."
그러나 말년휴가의 10박 11일간 그녀에게서는 전화가 오지 않았다. 대신 말년휴가를 마치고 부대로 복귀한 뒤 제대를 위해 짐을 싸던 그에게 한통의 엽서가 날아왔을 뿐이다. 엽서에는 아무 말도 쓰여 있지 않았다.
회색빛 엽서엔 워드로 인쇄한 듯한 작은 글자로 단 하나의 문장이 쓰여 있을 뿐이었다.
......승현씨...미안해요.....
그것을 마지막으로 승현은 김수산의 가족과 만나기 전까지 그녀를 보지 못했다. 그의 인생은 이후 주희에게서 받은 마지막 엽서의 색깔과 같은 회색빛이 되었다.

.....승현씨 미안해요....
성준이 끔찍한 방법으로 살해당하고, 유재훈이라는 사람을 김수산의 주변에서 감지하는 순간 유재훈의 복수가 김수산의 모든 남은 가족들을 향해 있었다는 것은 애초부터 생각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죽은 김수산의 가족들 안에는 주희가 있었다.
승현은 자신을 유재훈과 김수산의 가족들의 악연 사이로 이끌고 있는 어떤 힘의 정체를 깨달았다. 그것은 그들의 가족 사이에 끼어 있는, 회색빛 자신의 인생에서 유일하게 의미있었던 여자...바로 주희였다.
누구보다 사랑했던 여자, 누구보다 원망스러웠던 여자, 그리고 눈앞에 나타났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조카며느리뻘의 여자로 그녀는 자신의 주변을 계속 맴돌았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10여년동안 지켜본 승현에게 주희는 무엇보다도 강한 괴로움의 대상으로, 그리고 역설적으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로 점점 변해갔다.
그리고 김성준의 살인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의 무의식 아래에서 어떤 무언가가 이 사건과 주희와의 강력한 연관성을 포착하고 그를 계속 이 사건의 중심으로 나아가도록 이끌었던 것이다.
스스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자각한 승현은 잠시동안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너는 어느새 그 사건의 중심에 와있을 수 있어. 그순간을 조심해...'
수혁의 말이 머릿속에 다시 떠올랐다. 아직 늦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라도 외국, 혹은 아무도 모르는 지방으로 도망치거나...어쨌든 이 사건과 연관되지 않을 수 있는 곳으로 혼자 달아나면 자신에게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협에 대한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몰랐다. 일단 승현은 죽은 김수산의 일가족에는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남편을 잃고 그 자신도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애처로운 주희의 모습도 그의 주변을 계속 맴돌고 있었다.
승현은 아직 김일수의 당산동에 위치한 외진 사무실 건물앞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한시간째 차 앞에 서서 고민하고 있는 그의 주변으로 짙은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한참동안 고민하던 승현은 결국 결론을 내렸다.
'난 내 마음이 이끌었던 곳으로 따라가겠어...그곳이 어디가 되었든...혹시 수혁이...말대로 영혼마저도 지워져 버릴지라도...난 주희를 버릴 수 없어...'
자신과 주희의 관계는 자신이 김수산의 이복동생이 되고서부터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어떻게 될 수 없는 관계일지라도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를 지켜 주고 싶다는 남자로서의 지극히 어리석은 본능이 결국 생존본능을 억눌러 버린 것이다. 승현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단 하나의 결론으로 자신과 사건의 필연성에 대해 고민을 끝내버린 승현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다시 밤이 찾아온다. 붉은 달이 조금씩 멀리서 떠오르고 있었다.
'어떤 일이 눈앞에 닥칠지 모르지만 나는 있는 힘을 다해 헤쳐나가겠어..언제나 그랬듯이..'
승현은 다시한번 다짐했다. 주희와 자신을 위해서...승현은 차에 타고 시동을 걸었다.

그런 승현의 등뒤에 있는 김일수의 빌딩 옥상에서 무언가가 희미한 달빛에 반사되어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놀랍도록 빠른 속도로 옥상에서 승현의 차를 향해 날아와 차 지붕에 소리없이 앉았다.
유재훈의 미라는 차지붕 쪽을 향해, 즉 그의 발 아래 앉아서 시동을 걸고 있을 승현을 향해 앙상한 손가락을 내밀었다. 그리고 승현을 가리키며 미친듯이 웃어대고 있었다.
으슥한 당산동의 밤하늘 아래 소리없는 그의 웃음이 멀리멀리 퍼져나갔다. 양손가위를 머리위로 치켜든 유재훈은 멀리서 창백하게 떠오르는 달을 향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머리위에서 춤추고 있는 끔찍한 괴물도 알아채지 못한 채 승현은 시동을 건 뒤 엑셀을 밟았다. 차를 출발시키는 그의 눈빛은 아까보다 훨씬 담담해져 있었다.




16




철준은 신용불량자였다.
10년전 사기를 당해 아버지에게 받은 재산 5억을 공중에 날려버린 뒤로 그는 최소한의 생활에 필요한 돈（최소한의 생활비라는 것은 그 사람이 살고 있는 계층에 따라 유동적일 수 있다.） 밖에 집에서 지원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씀씀이는 줄어들지 않아서 10년의 세월 동안 쌓여온 빚이 그가 신용 불량자가 되도록 만들었다.
나이 40이 넘도록 아버지에게 경제생활을 의지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히 주변 사람들이나 친구들에게 좋지 않은 모습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그것이 대학 동기에게 당한 사기에 의해서라면, 사람들의 좋지 않은 시선은 더욱 무섭게 그에게 다가올 것이었다.
보통 나이가 쌓일수록 인생에 대한 어떤 깨달음이나 경륜도 함께 쌓이게 마련이다. 비록 구세대가 무시받고 있는 세상이지만 일시적인 경험이나 지식 습득이 결코 줄 수 없는 것을 인간이 살아가는 세월은 그에게 선물하는 것이다. 이것은 나이를 먹은 사람이 아니면 결코 경험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쇠퇴하고 있는 사회, 속도가 빠르고 변화에 대처하는 것이 능숙할 수 있는 세대가 지배하는 현대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닐 것이었다. 지극히 불안하게 변해가고 있는 지금의 세상이 그것을 반증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학생이 우등생이 아니듯이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 인간이 살아온 세월의 어떤 면에서는 객관적인, 다른 면에서는 주관적인 퀄리티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나이를 먹는 것이 언제나 놀라운 깨달음과 삶에 대한 철학, 경륜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세상에는 많을 것이었다. 그리고 철준은 그렇지 않은 사람 중 하나였다. 물론 철준의 머릿속에 인생에 대한 철학이나 깨달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것이 부잣집의 성격이 좋지 않은 아들로 자라난 유년기를 거쳐 거칠 것 없는 청년기와 무서울 정도의 실패를 겪은 장년기 동안 형성되었기에 지독할 정도로 비뚤어져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사업 실패후 그를 받아준 곳은 없었다. 돈을 벌 능력도, 직장도 없는 그는 자신의 인생을 한탄하며 아까운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렇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는 곧 자신에게 주어질,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곧 바꿔 놓을 천문학적인 액수의 유산을 기대하며, 역시 방탕한 생활을 계속했다.
매일 평균 세병 이상의 소주를 마시고 잠드는 생활을 계속하느라 그는 동생인 성준이 살해된 것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다.
"소주 한병 더주쇼!"
"네."
밤이 깊어 어느새 저녁 12시가 가까워 오고 있었다. 종로의 어느 한적한 골목에 위치한 술집에서 한 남자가 혼자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돼지기름이 희게 엉겨붙은 차갑게 식은 삼겹살 몇 점 옆으로 빈 소주병이 다섯개 놓여 있었다. 하품을 하며 종업원이 소주 한병을 들고와서 철준의 앞에 내려놓고 갔다.
철준은 흐릿해진 눈으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초저녁만 해도 좀 북적대던 술집엔 철준을 제외하면 손님이 없었다. 시간이 꽤나 늦었다.
멀리 주방 쪽에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술집 주인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철준 때문에 벌써 두시간째 문을 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보통 사람같으면 눈치를 보며 슬슬 가게를 비워주겠지만 철준은 그런 눈치도 없었을 뿐더러 지독히 취해 자신을 바라보는 다른 사람의 그런 눈빛을 느낄 상태도 아니었다.

그는 아까부터 누군가에게 말하듯이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흐흐흐...난...난..말이야..부자에요..부자...좀있으면...아부지가...아부지가...말이요.."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사람에게 헛소리를 중얼거리는 어떤 남자의 모습을 바라보며 술집주인의 곱지 않은 눈이 더욱 찌푸려졌다.
"아부지가 죽어서 나한테 10억을 넘긴다니깐..하하...좀있으면 부자여..뭐가 내눈앞에서 알짱대든 다 필요없다고!"
"그래그래...우리아부지가 김수산이야! 비행기잘못타서 여러사람 즐겁게 만들어준 분이거든..그분이..하하..."
"뭣이요? 당신이 우리아부지를 뭘안다고 그딴 소리를 하고 지랄이야!"
"어쩔씨구...계속해보시지 그래?"
"뭐가 어째! 그거 다 니돈이라고? 이새끼가..."
남자가 순간 소리를 지르며 무섭게 화를 냈다. 테이블을 주먹으로 쿵 치는 그의 힘에 소주병들이 딸그랑거리며 흔들렸다.
"야 이새끼야 너 잠깐 나와봐...이런...개 호로쉐끼를 봤나..."
그를 바라보는 술집주인의 눈은 찌푸림을 넘어서 불쾌함으로 변하더니 언제부턴가 어이없음으로 바뀌어가기 시작했다.
실제로 누가 눈앞에 있는 것처럼 남자는 허공에다 대고 손을 움켜쥐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누군가 앞에 있다면 그것은 영락없는 멱살잡이였다.
'저거...정신병자 아니야...'
"야 이새끼야! 니가 뭔데 ! 니가 뭔데 그딴 헛소리나 하고 자빠졌냐? 엉? 다시한번 말해봐!
이런 좀만한 새끼가! 다시한번 지껄여 보라니까!"
그가 팔을 심하게 흔들었다. 그의 팔이 정말 뭐라도 잡고 있는 것처럼 약간 부자연스럽게 위아래로 흔들렸다. 술집주인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그 상황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렇게 난리를 치다가 탁자라도 부술 것 같아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술에 취해 얼굴이 시뻘개진 사람의 아무도 없는 허공에의 실감나는 마임은 상당히 익살스럽고 재미있는 모습이었다. 술집 주인은 황당함 사이에서 느껴지는 역설적인 희극적 요소에 피식피식 웃기 시작했다.
"이 좆같은 새끼가! 에잇!"
콰당탕!
갑자기 당황스러운 일이 일어났다.
웃으며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술집주인의 눈이 순간 휘둥그레졌다. 그는 순간적으로 눈앞에서 일어난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키가 큰 그 남자가 허공에서 붙잡고 있던 뭔가를 집어던진 쪽에 위치한 테이블과 의자들이 기분나쁜 소리를 내며 우르르 무너졌다. 방금까지 그의 손은 허공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어떤 것도 그의 손에는 잡혀 있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남자가 뭔가를 던지는 듯한 동작을 한 쪽으로 날아간 것이 보이지 않은 것은 당연했다. 그렇지만 상당한 무게가 나가는 뭔가가 내던져진 것처럼 테이블은 형편없이 찌그러져 있었다. 옆으로는 볼썽사납게 넘어진 의자들이 굴러다녔다.
"뭐...뭐야..."
술집 주인이 신음하듯 중얼댔다. 그리고 비틀거리며 남자가 무너진 의자와 테이블 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거친 혀꼬인 소리가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일로 나와...이새끼야. 나오라고! 너 오늘 죽을 줄알아! 어쭈? 꼴아봐? 꼴아보면 어쩔꺼냐? 엉? 생긴건 부러진 이쑤시개처럼 생겨갖고 앙?"
다시 허공에 손을 들어올리는 남자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의 흐릿하면서도 부릅떠진 눈이 공중의 뭔가를 위협하듯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그 자세 그대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계산도 하지 않고 그는 술집을 걸어나갔다.
잠시 정신나간 듯 앉아있던 술집주인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저새끼 돈안낼라고 쑈하는거 아냐?'
눈앞에 보이지 않은 레이져라도 맞은 듯 무너져 있는 테이블과 의자들이 있었음에도 주인은 아무 생각없이 문밖으로 달려나갔다.
방금까지 술집에서 난리를 친 어떤 남자는 술집에서 몇 걸음 지나지 않아 있는 상가쪽 코너를 돌고 있었다. 술집주인은 소리를 지르며 남자를 뒤쫓았다. 뭔가 그의 눈에 보이지 않았더라면 그는 아마 이렇게 소리질렀을 것이다.
"이새끼야 쳐먹었으면 돈을 내야 될 거 아냐!"
그렇지만 술집주인은 소리지를 수 없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움켜쥐고 있지 않았던 그 남자의 손에는 작은 체구의 지독할 정도로 마른 누군가가 목을 붙잡힌 채 들려 있었던 것이다.
"크크.."
그리고 목을 잡힌 것도 아랑곳없이 그 누군가는 발아래에서 뭔가를 천천히 들어올리고 있었다. 술집주인은 처음에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시퍼렇게 드러나는 그것의 날을 확인하면서 술집 주인의 입에서 숨이 막히는 듯한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허..헉..."
게슴츠레하게 뜬 그것의 눈이 순간 술집주인의 눈과 마주쳤다. 허공에 붙잡혀서 목을 졸리면서도 그것은 그를 향해 씨익 웃어보였다. 그리고 오른쪽 손에 들려있는, 언뜻 봐도 수십 킬로그램은 나갈 듯한 엄청난 크기의 양손가위를 가볍게 들어올리며 자신의 목을 붙들고 있는 철준을 가리켰다. 그리고 상가쪽 코너로 알 수 없는 무언가와 철준의 모습은 자취를 감췄다.
코너를 돌아서는 중에도 철준의 입에서는 정신없이 욕설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이...이 씨발놈아. 넌 오늘 세상 하직할줄 알어. 엉? 나한테 잘못걸리면 뼈도못추리는거 아냐?"
술집주인은 떨리는 발걸음으로 뒷걸음질쳤다. 가게 문 안으로 들어간 그는 미친듯이 문을 닫고 문을 잠궈버린 다음 의자를 몇 개나 문앞에 올려놓았다. 주인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는 바깥쪽으로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멀리서 처참한 비명소리가 울려오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철준은 당황스러움과 두려움이 반반뒤섞인 표정으로 눈앞의 커다란 양손가위를 치켜든 괴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제서야 술이 약간 깨면서 눈앞에 있는 끔찍한 무언가에게 공포감이 들기 시작했지만 소주 다섯병 이상의 알콜 기운은 아직까지도 반사신경을 흐리게 하고 있었다. 다른 말로 하면 아직까지도 발이 꼬였다. 비틀거리며 등을 보이고 달아나려는 철준이 몇 걸음 가지 않아 다시 쓰러지고 말았다.
그런 그의 어깨가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언제 당했는지는 모르지만 팔의 관절이 절반 이상 잘려나가 있었던 것이다.
엄청난 공포와 고통 속에 술이 깨면서 주위의 사물을 조금씩 식별하게 된 철준은 자신도 모르게 잔인한 웃음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고 있는 미라와 같은 형상의 메마른 그것의 얼굴을 보고 말았다. 가로등마저도 꺼진 어둠 속에 희미한 달빛에 비추었지만 놈의 얼굴은 워낙 흔하게 볼 수 없는 스타일인 탓에 끔찍함을 느끼며 떨기엔 충분했다. 더군다나 철준은 그 얼굴을, 아니 얼굴에 선명히 드러나 있는 어떤 특징을 어디선가 본 듯했다.
주름투성이의 광대뼈와 턱뼈까지도 뚜렷한 그것의 이마에는 커다란 사마귀가 있었다. 철준은 자기도 모르게 비명같은 말을 내뱉었다.
"서..설마...당...당신은..아아..아악! 당신은! 안돼! 어떻게..어떻게 당신이!"
"크크크크크..."
말없이 그는 철준을 향해 다가왔다. 뭐가 그렇게도 좋은지 미라는 철준의 눈앞에 나타난 이후 계속 잔인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당신은...당신은...2년전에 죽었잖아! 어떻게 당신이...당신이..."
철준이 의미를 가진 언어를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거기까지였다.
휘익!
"으아악!"
비명소리와 함께 철준의 반 정도 잘라져 있던 팔이 완전히 육체의 구속을 벗어났다. 펄떡거리며 그것은 철준의 눈앞에서 저만치 날아갔다.
상당히 진지한 표정으로 변한 미라는 두 손으로 가위를 단단히 붙잡았다. 자신이 팔이 날아갔다는 것을 느낄 새도 없이 철준의 온몸으로 엄청난 고통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쩔꺽..쩔꺽..쩔꺽...쩔꺽....
"크아아아악!"
유재훈의 미라가 들고 있던 양손가위는 제일 먼저 철준의 두 다리에 아주 조금씩 칼집을 냈다. 발에서부터 종아리, 허벅지를 지나 그것은 조금씩 철준의 온몸을 찢어갔다.
철준은 비명을 지를 뿐이었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언제부터인가 몸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았다. 흥미로운 장난감을 가지고 놀듯 철준의 온몸에 가위질을 해대는 유재훈의 가느다랗게 뜬 눈을 바라보며 그는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지르며 허우적대고 있었다.
"크아악! 살...살려줘...살려줘요!"
어두운 골목길에는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았다. 설령 누군가 조그맣고 말라빠진 해골같은 것이 들고 있는 커다란 양손가위에 의해 아주 조금씩 난도질되어 가고 있는 철준의 모습을 보았다고 할지라도 그를 도와줄 수 있었을까? 그 잔인한 모습에 치를 떨며 도망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케엑..끄윽..끅..."
놈이 가위질을 시작한 지 10분이 지났다. 철준의 몸은 구겨진 종이로 만든 인형처럼 불규칙적으로 구부러져 갔다. 그의 피부가죽은 칼집낸 오징어처럼 찢어져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종로의 한적하고 음습한 골목이 철준의 피로 붉게 물들었다.
"킥킥.."
유재훈의 입은 귀밑까지 찢어져 있었다. 그는 철준의 공포와 고통을 즐기고 있었다. 철준의 공포와 고통으로 인한 몸부림이 사그러들고 있는 것이 아쉬운 듯 그의 얼굴에 가득한 주름이 깊게 패여갔다.
그것은 탐욕에 가득한 인간의 말로라고 보더라도 지나칠 정도로 잔인하고 그로테스크한 광경이었다. 이미 상당한 출혈로 인해 거의 실신상태였던 철준의 목숨은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케케케케케켁"
유재훈은 철준의 목숨을 완전히 끊어버리지 않았다. 희미한 의식 속에서 서서히 죽음을 맛보도록 죽음과 생명의 2/3지점에서 그의 가위질은 멈추었다. 피에 젖은 그의 양손가위가 유재훈의 잔인한 웃음을 받아 더욱 번들거리는 듯했다. 의식이라도 하듯 유재훈의 깡마른 온몸이 부자연스럽게 다시 움직였다. 유재훈은 하늘을 향해 앙상한 두 팔을 뻗었다. 그믐을 막 지난 이지러질 대로 이지러진 실같은 달이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런 그의 발밑으로 너덜너덜해진 채 형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찢어진 누군가의 시체가 좀비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유재훈은 손을 내밀어 너덜너덜한 그의 목에서 피를 짜낸다.
"끄르르륵...크악.."
단말마의 비명을 내지르며 꿈틀거리는 철준의 반항에도 아랑곳없이 미라는 양손 가득히 피를 받아냈다. 그리고 시냇물처럼 흘러내리는 유재훈의 피가 비교적 뿌려지지 않은, 그의 머리쪽에 어떤 숫자가 쓰여지기 시작했다.

김수산의 둘째아들 김철준은 2001년 8월 2일 오전 1시 17분 사망했다. 그가 사망한 곳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던, 철준이 술을 마신 곳으로 추정되는 어느 술집의 주인 역시 심장마비로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