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기 전, 평론을 본 게 잘못이었다.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중 첫 한 시간동안 인물이 너무 많이 나오고 별로 싸우지도 않아서 서사가 늘어진다는 것. 이순신의 죽음은 슴슴했으나 정작 마지막엔 신파라서 이도저도 아니었다는것.

그러나 영화를 보는 내내 그 평론은 전혀 공감되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영화 집중엔 오히려 방해가 되었다.

영화는 철저하게 4악장을 따라 갔으며, 평론가가 긴 전주라고 표현한 그 부분은 영화 중후반의 처절하게 길고 도무지 끝나지 않는 진짜 전쟁의 이야기를 표현하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가 끝나고 잠에 뒤척이며 떠오르는 재밌는 점은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었는 가이다.


이순신의 마지막 전투라는 아주 불고기같은 국밥 주제를 다루면서, 독특하게도 이 영화는 '이순신 멋있다, 이순신 슬프다, 전쟁은 나쁘다' 이런 쉽고 인기있는 주제를 전혀 다루지 않았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래서 이순신은 왜 그렇게까지 끝까지 싸우려 했을까"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영화에서는 계속되는 진린과의 갈등을 통해 왜 이미 끝난 싸움에 이렇게까지 집착하느냐는 물음을 보내고 있다.
진린의 마음도 이해되는 것이, 이미 이긴 싸움이기에 명분상으로도 더이상 피 흘릴 이유도 없고, 집에 가고 싶었을 것이다.
（솔직히 나라면 지금까지 내가 어떻게 겨우 살아남았는데,, 그 마지막 전투로 죽을수도 있기에 오히려 두려워서 이제 그만 끝나자고 했을 것이다.）


그 물음에만 오로지 집중하도록, 감독은
1. 진린이 이순신을 영웅으로써 인정하며 존경한다는 것을 호칭으로써 보여주며 진린과의 개인적인 갈등이 아니라는 점.
2. 누가봐도 아들 죽인 왜놈들이 맞는데 끝까지 아니라고 모른체 했다는 점.
이 두 장치를 이용하여 이 문제가 개인사를 바탕으로 한 원한 복수가 아님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순신 장군이 그렇게까지 끝장을 보려했던 이유가 영화에 직접적으로 언급되진 않았지만,
고니시 부하의 입을 통해, 일본이 항복한것이 아니라는 본인들의 입장을 확실히 보여줌으로써, 일본 내정이 안정되면 이전에 그러했듯 다시 조선을 침략하러 올 수도 있었다라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이순신은 그것을 알기 때문에 다시 침략하지 않도록, 후대의 사람들이 또 다시 전쟁으로 피흘리지 않도록 본인이 희생될지라도 전쟁의 뿌리를 뽑는 선택을 했다는 점을 감독은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전쟁을 할 때, 말은 쉽지만 최전방에서 언제든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서, 7년이라는 처절한 시간을 보내게 될 때, 나와 같은 사람들의 정신은 무너질 것이고 어떻게든 운좋게 살아남아서 따스하게 살고 싶을 것이다. 심지어 여기까지만해도 이미 조국에서 영웅소리 들으며 누구에게도 인정받을 수 있는데 자칫 실패하면 과거의 영광이 더럽혀질 테니까.


그런데 이순신이 진정한 영웅인 이유는 그 끝까지의 상황에서도, 나의 안위와 나의 복수를 생각해서 판단하는 것이 아닌, 백성과 후대를 지키기 위해 희생을 선택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현세대에 기록된 수 많은 전쟁영웅은 전쟁이 끝나고는 오히려 독재자가 되었으니까.

결론적으로 이 작품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맛이 아님은 분명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맛있고 먹을만 했다고 생각한다.

흑백과 적녹의 세계에서, 푸른 바다색은 그중 어느쪽에도 속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청색은 사랑받고 충분히 가치가 있듯이..


（추가로, 후반부 왜인과 수군의 전투가 원테이크로 이어지면서 장군님이 총에 맞을뻔?한 장면이 나오는데 그 연출이 이 영화를 보는 맛의 정점이었고, 극후반부 북의 묵직한 진동은 아직도 여운으로 남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