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렀던 곳마다 그리움을 묻어 두고 왔는데, 뭐가 어디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아. 그래도 당신에 대한 기억은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밤하늘에 띄워 둘게 ★★★★☆

"시간은 약이 아니야. 반창고 정도는 되겠지."

층층이 쌓은 이야기 속에서
이젠 우리가 더 이상 볼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을 보여 주고
옅게 깔린 회한과 그리움 속에서 관객을 다시 현실로 꺼내는
그런 악랄한 취미를 가진 감독의 작품이다.
하룻밤 꿈 같기도 하고, 허풍 같기도 한 누군가의 이야기 속에
관객은 문득 향수를 품지만 막상 떠올려 보면
어디쯤에서 무엇을 그리워하는지도 알기 어렵다.
어쩌면 내 그리운 마음도 싸구려 모텔의 샤워 부스 옆에 묻어 두고 왔을지 모를 일이지.

분명 이 영화의 예술은 스크린에서
시종일관 강박에 가까운 형식으로 표현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전하는 메시지는 형식과 강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잠들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종극에는 깨어나 자유로워진다.

오기는 왜 버너에 손을 댔을까. 그러게.
배우는 끊임없이 질문을 해 왔지만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오기 스타인벡이 되었던 바로 그 순간부터 말이다.
이유는 모르지만 그는 언젠가 버너에 손을 대야 할 인물을 완벽히 연기하고 있었다.
실제로 버너에 손을 댈 때,
나 또한 굉장히 자연스러운 행동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관객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그들은 다 같이 있다.
타인은 지옥이며,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지만
정말 사소한 연대에서도 타인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허락을 받지 않는 사진 기자의 항상 잘 나오는 사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