平書

평안하신지 당최 알 도리가 없어 이렇게 인터넷으로 평서 한 통 보내오. 나는 늘 그렇듯 한 시진을 이틀처럼 보내며, 무탈하고 무용한 삶을 근근이 잇는 중이라. 밤하늘에는 지상에 잔뜩 달라붙은 슈퍼문 한 덩이 황색으로 휘영청 떠서는, 밤이 밤인지 밤이 낮인지 영판 분간을 못할 와중에도, 나는 네온사인 아래에 무색한 입동처럼 서서 분별없이, 또 대책 없이 소스라치는 중이고.

기술이 시간을 바삐 내달려 서신을 전할 방도가 태산처럼 많아진 차에, 나는 카카오톡으로 존전께 메시지를 보낼까 하다 어째 그 직접성이 마뜩찮아 구태여 이리 각위께 보내는 양, 글 몇 자 적어 업로드를 하오. 혹 존전께서 나의 부끄러움을 나이브한 것이 아니라, 조심스러운 것으로 여기어줄까. 하여 나는 이어 적겠소. 존전이라 칭하고 예사높임 하는 불비한 문장이지만 애틋하게 여기어주면 좋겠소.

우리가 함께 버스를 타던 작은 고장의 톨게이트 어귀에서, 나는 그리던 마음의 몇 갑절이고 푹 물들어서는 겨우 버스 창가에 머리를 기대고 이어폰이나 꽂았소. 기어이 함께 듣던 풍악을 스트리밍하고는, 흐른 시간과 지난 공간에 버티어 선 흐렸던 마음을 잔뜩 헤집었다오. 가여운 가락이 보다 가여운 내 마음 도랑으로 줄줄 흘렀고, 나는 첨벙거리며 겨울잠 자던 가시 개구리를 잡았소. 혹 존전께서는 가시 개구리를 잡아 보았소? 폴짝 폴짝 뛸 때마다 움켜쥘 손이 피투성이가 된다오. 그러니 그 버스 속에서 나는 처절하진 않았으되 초연하진 못하였고, 그저 처연했을 뿐이외다.

시간이 하염없이 흐르는 동안 나는 셀 수도 없이 많은 아픔과 기쁨 사이를 서성였소. 서성이는 동안 존전께서는 늘 나의 곁에 있었고, 곁에 있는 나름의 연유도 있었으니, 내가 당최 무엇을 할 수 있으오리까? 나는 그저 시간을 한 포대, 두 포대 꽁꽁 여미어 흐르는 강가에 버리는 것 외에는 달아날 방도가 없었지. 허나 그것이 달아날 방도였냐고 존전께서 내게 하문한다면, 나는 또 어떤 첨언 하나 잇대지 못하고 송구하단 말만 되뇌리라. 나의 언동이, 혹여 그대의 멘탈에 해가 되었으면 영영 잊히는 것으로만 만족하겠다는 말만 끊임없이 되뇌리라.

참 오래도록 서성였지. 길고 긴 겨울이고, 아리고 슬픈 밤이었소. 마음을 품었던 시간에 비하면, 마음이 닿았던 시간은 찰나와도 같은 것만 같고, 어느 목에도 볕이 들지 않는 것 같았고, 동풍만 소매 속으로 들어차 사위어가는 온수매트, 타이머를 맞추어두고 틀어놓은 온열기가 꺼진 것 같은 시간이었지. 긴 아픔의 옷자락을 잡고 늘어지던 시간에게 나는 이제 종언을 고하려고 하오. 그러니 이 평서는 평서가 아니나, 이제 내가 기어이 평서이고자 하니 평서인 것이외다.

찰나라면 찰나, 미타찰이라면 미타찰, 구골플렉스라면 구골플렉스. 그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어 참 고마웠소. 나는 이제 나의 겨울을 끝맺고 봄으로 먼 길 떠나려 하니, 존전께서도 부디 긴 여행 기간 내내 평안하시오. 따스한 마음들 붙잡고 아름다운 산책을 떠나시오. 간곡히 바라리라. 영영, 앓지 말고 영영. 기쁘시오.

짧은 평서 속에 내 과거, 낡은 내 마음 하나 재중하여 보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