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동생 ‘하루’가 죽었다. 19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항암치료 끝에 죽었다. ‘하루’는 나에게 단 하나뿐인 가족이었다. 아버지는 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낳아준 어머니는 부모님이 이혼한 이후 보지 못했다.

실의에 빠져있을 틈도 없이 ‘하루’의 약혼자, 이제는 전 약혼자인 ‘토고’씨가 내게 찾아와 동생이 죽었으니 그 언니와 사귀어 보면 어떻겠냐는 얘기가 나왔다고 전했다. 

‘하루’와 그는 맞선으로 약혼을 하게 된 사이였다. 우리 집은 부자도 아니고 평범한 집이지만 과거에 아버지의 집안은 재벌의 핏줄이었다는 듯하다. 그리고 그의 집안이 원하는 것은 바로 그 혈통이었다. 나도 맞선 자리에 불려 나가긴 했지만 어떻게 생각해도 저쪽의 목적은 얌전하고 예쁘고 나와 달리 머리도 좋은 ‘하루’였고 이윽고 ‘하루’와 그는 약혼을 하게 되었다. 

‘하루’가 죽고 난 후 담담하게 그 말을 내게 전하는 그를 보고 나는 피도 눈물도 없는 짐승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한 가지 조건을 건 채로 수락해버렸다. ‘하루와 둘이서 갔던 장소에 나를 데려다 주는’ 조건으로.

그렇게 그와 사귀기 시작했고 ‘하루’와 그가 둘이서 갔던 장소를 함께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와 사귀기 시작한 그날부터 하루에 대한 죄책감에 잠도 잘 수 없었다. 3초에 한 번씩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루의 흔적을 이런 식으로 계속 찾을 바에야 직접 만나고 싶다. 그리고 지금 당장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나를 사로잡아 선로에 몸을 던지려 했을 때 그 남자 ‘토고’가 나를 붙잡았다. 

이후에도 나는 그가 ‘하루’와 함께 갔던 곳을 같이 가보며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그가 내 안에서 하루의 그림자를 찾고 싶어서 나와 사귀고 있다고 해주길 바랬다. 지금도 하루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해주면 좋겠다. 하지만 나는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 하루가 그에게 향했던 것 같은 시선을 이 사람이 나에게 보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9월 어느 날 그는 카페에 나를 데려가며 이 가게가 자신과 '하루'가 방문한 마지막 장소라고 이야기하며 나와의 교제의 끝을 고했다. ‘하루’와 같이 갔던 곳에 나를 데려다 주라고 조건을 내건 것은 나였는데 끝이 올 것이라는 것을 나는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그는 나와 교제할 수 있도록 가족들을 설득한 것은 자신이라며 자신이 나에게 호의를 품고 있다는 것을 나도 눈치채고 있었을 거라며 단지 착각일 거라고 일축했던 나의 생각을 자신의 입으로 긍정했다. 

오늘로 이제 교제는 끝인데 왜 이런 말을 하는건지 혼란스러운 와중 그는 또 나에게 내일이라도 죽을 생각인 것 아니냐고, 내가 죽으면 자신도 죽을 것이라며 나를 옥죄었다. 그가 죽으면 ‘하루’가 슬퍼할 거니까, 내가 죽어도 죽지 말아달라고 그와 한바탕 설전을 벌였고 그는 자리를 떠났다. 

집에 돌아온 후 무기력하게 누워 핸드폰을 보다 우연히 한 메신저를 보게 되었다. 

적혈구와 혈소판 수혈, 언니와의 병원진료, 마치 ‘하루’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시절이 떠올라 보던 중 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2년 전 9월 12일 오전 10시부터 진료, 채혈 있음, 수혈은 없음, 8월 19일 화요일 오후 2시부터 진료와 채혈, 적혈구 수혈 있음. 

이 메신저의 작성자는 분명 '하루'다. 메신저에는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하루’의 모습, 생각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하루’의 마지막 메신저를 보고 나는 온몸에 힘이 빠지고 머리가 핑 도는 감각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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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리뷰할 만화는 ‘아스카 코니시’ 작가의 ‘봄의 저주’ 입니다. 이 만화는 죽은 여동생 ‘하루’의 약혼자와 교제를 하게 되는 주인공 ‘나츠미’와 그 약혼자 ‘토고’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위의 내용은 주인공 ‘나츠미’의 시점에서 서술한 작중 중반부까지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죽은 여동생의 약혼자와의 연애’라는 도덕적으로 수용하기 힘든, 거부감이 느껴질 수도 있는 소재를 다루고 있는 이 만화의 가장 큰 키워드는 ‘죄책감’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츠미’ 에게 ‘하루’는 단순히 좋아하는 여동생을 넘어 삶의 목적이자 살아가는 원동력이었습니다. 그녀는 ‘하루’를 단 하나뿐인 가족이라고 지칭하며 ‘하루’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하루’에 대한 애착이 강했습니다. 또한 ‘하루’가 ‘토고’와 약혼을 했을 때 그를 죽여버리고 싶은 생각조차 들었다고 하며 한때 동생을 연애 감정으로 동생을 종아하는 건 아닌지 고민한 적이 있다고 할 정도로 ‘하루’에 대한 ‘나츠미’의 애정은 애착을 넘어 집착의 단계에 있었다고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반면 ‘하루’의 약혼자 ‘토고’에게 있어 ‘하루’는 부모님이 정해준 자신의 약혼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토고’는 재벌인 집안에서 어릴 때부터 한번도 반항하지 않고 부모님이 기대한 길을 그대로 걸어왔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있어 ‘하루’와의 약혼도 부모님이 기대한 길 중 하나였을 뿐입니다. 실제로 그는 연하의 여자와 사귀는 건 귀찮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회고하며 ‘하루’와의 연애를 타협과 계산만으로 시작된 연애로 말할 정도로 ‘하루’에 대해 큰 애착을 지니고 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나츠미’와 교제하기 시작한 후 ‘나츠미’가 그에게 있어 삶의 목적이자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나츠미’와 ‘토고’의 교제 종료와 설전 이후에 ‘나츠미’를 만나지 못하게 되자 ‘나는 이 몇 달 주말에 그 여자와 만나는 걸 목적으로, 그저 그것만을 위해 살아오기라도 했다는 건가?’라고 자조하는 부분은 그에게 있어 ‘나츠미’가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게 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듯 ‘나츠미’와 ‘토고’는 ‘하루’에 대한 애착의 정도에 있어 차이가 있기 때문에 둘의 교제에서 비롯되어 느끼는 죄책감의 차이도 극명합니다. 

‘나츠미’는 ‘토고’와 교제를 시작하면서 죄책감으로 인해 잠도 잘 수 없고 자살충동도 끊임없이 들 정도로 큰 죄책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특히 ‘토고’가 ‘나츠미’가 죽는다면 자신도 죽을 것이라고 말하자 그가 죽으면 ‘하루’를 만날 낯이 없다고 하는 대목에서 그녀의 ‘하루’에 대한 극심한 죄책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죽은 여동생의 약혼자와의 교제는 ‘하루’에 대한 애정을 ‘하루’에 대한 죄책감으로 변모시켰고 이 죄책감은 자신이 죽은 후 ‘토고’가 자신 외의 사람과 교제하지 않았으면 했던 ‘하루’의 마음을 나타내듯이 저주처럼 ‘나츠미’와 ‘토고’의 교제를 막아서고 있습니다. 

‘토고’의 경우, 그 역시 ‘하루’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으나 결코 ‘나츠미’의 그것에 비할 정도는 아닙니다. ‘하루에겐 미안하게 생각해’라고 말하는 부분도 있고 ‘나츠미’에게 교제하자고 했을 때 인생에서 처음으로 죄책감을 느꼈고 그것은 죽은 전 약혼자에 대한 죄책감이었을 것이라고 독백하는 등 ‘하루’에게 죄책감을 느끼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자신이 죽으면 ‘하루’가 슬퍼할 것이라는 ‘나츠미’의 말에 ‘죽은 사람은 슬퍼하지 않아’라고 말할 정도로 ‘하루’에 대한 죄책감이 극심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도 결코 ‘하루의 저주’를 피해갈 수는 없었습니다. 그가 사랑하는 ‘나츠미’는 동생인 ‘하루’에게 큰 애착을 지니고 있고 이로 인해 자신과의 교제에서 큰 죄책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비록 자신은 ‘하루’에게 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할지라도 그가 사랑하는 상대인 ‘나츠미’가 ‘하루’에 대한 극심한 죄책감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하루의 저주’는 그를 다른 사람에게 내어주고 싶지 않았던 ‘하루’의 마음처럼 ‘나츠미’와 ‘하루’의 교제를 막아섭니다. 

사실 지금까지 쓴 내용들만 보면 ‘토고’와 ‘나츠미’의 관계는 ‘토고’만 일방적으로 ‘나츠미’를 사랑하는 모습으로 보일 수 있으나 직접적으로는 아니더라도 간접적으로 ‘나츠미’ 역시 ‘토고’에 대한 호감을 드러내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이후에 서술할 ‘토고’씨가 죽으면 나도 슬프다고 말한 부분도 그 중 하나이고 교제종료 선언 당시 ‘그저 끝이 있다는 걸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렇다기 보다 생각하지 않으려 했던 건가?’라는 독백에서도 ‘토고’에 대한 ‘나츠미’의 호감을 엿볼 수 있는데 공교롭게도 이 독백은 ‘토고’가 ‘나츠미’와의 이전의 데이트에서 독백한 내용과 유사합니다.  

또한, ‘토고’와의 데이트 중 여름 축제에 가보자고 권유하는 ‘나츠미’의 모습은 자신이 교제의 조건으로 내걸었던 ‘둘이서 갔던 장소에 자신을 데려가달라’를 위배하는 모습으로 ‘하루’의 흔적을 쫓기 위해서 데이트를 하던 ‘나츠미’가 어느새 ‘토고’와의 데이트 그 자체를 즐겁게 느끼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이 만화에서 재미있게 느낄 수 있는 요소는 상대에 대한 마음의 표현을 마치 저주와 같이 표현하는 부분이었습니다. ‘나츠미’의 자살기도 후 ‘토고’가 ‘나츠미’애게 말한 ‘네가 죽으면 나도 죽을 거야’. 그리고 교제종료 선언 이후 벌어진 설전에서 ‘나츠미’가 ‘토고’에게 말한 ‘토고씨가 죽으면 내가 슬퍼요! 죽어도 죽을 수가 없어!’. 언뜻 보면 섬뜩한 표현들이지만 이 표현들의 본심은 상대에 대한 애정입니다. 

 ‘토고’의 발언은 ‘나츠미’를 사랑하는 ‘토고’가 ‘나츠미’가 죽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나츠미’의 발언은 이전까지는 ‘토고’가 죽으면 ‘하루’가 슬퍼할 것이라고 일관하던 ‘나츠미’가 처음으로 ‘토고’가 죽으면 자신도 슬프다고 말한 부분이고 이후 ‘나츠미’가 이 발언을 회상하는 장면에서 이 발언이 ‘토고’에 대한 ‘나츠미’의 마음을 무의식적으로 드러내는 대목이었음을 유추하게끔 합니다.

사실 중반부 이후 남은 부분을 더 리뷰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책의 중반부까지만 리뷰를 하고 나머지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책을 구매하셔서 감상하시는 편이 더 좋을 것 같아 ‘봄의 저주’ 리뷰는 이쯤에서 마치고자 합니다. 생전 ‘하루’가 작성한 메신저를 보고난 후 충격을 받은 ‘나츠미’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요? 두 사람은 과연 ‘하루의 저주’, 책의 제목이기도 한 ‘봄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일본어로 하루（春）는 ‘봄’을 의미합니다]

긴 리뷰글 봐주신 분들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