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기말고사도 다 끝났네. 난 지금 나이 퍼먹을 만큼 퍼먹고 대학 다니고 있는데, 느낀 게 정말 많지만 주변에 이야기할 사람이 없어서 여기에 끄적여봐. 생각도 정리할 겸...


0. 뭐 하다 30살에 대학을 감?

사연을 말하자면 너무 길어지니까 생략할게ㅋㅋㅋ 암튼 정신 차리고 보니 군 복무 포함 아무것도 안 하고 20대 중반이 되어있더라. 어영부영 하다가 28살에 공군에 입대하고, 군복무 중 안산의 모 4년제 대학에 편입학함. 그리하여 전역 후 30살에 3학년으로 인생 첫 학교 생활 시작...!




1. 모든 게 낯설다.

수강신청, 수강, 과제, 팀플, 시험.... 전부 겪은 지금에야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지만, 처음에는 정말 모든 게 낯설고 서툴렀음. 수강신청 전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모르고, 신청 버튼을 정직하게 정시에 클릭했다가 서버가 터져서 망할 뻔하기도 하고 ㅋㅋ

과제는 어느 수준으로 작성해야하는지, 시험은 얼마나 준비해야하는지 정말 아무것도 파악이 안 되더라 ㅠㅠ 그와중에 첫 학기부터 영어로 진행되는 과목과 팀플이 있는 과목을 듣게 되어 너무 혼란스러웠지.. （교수님 영어 겁나 잘하심）

물어볼 사람이라곤 유일하게 연락이 되는 또다른 편입생 한 명과 나한테 교재 팔아준 같은 과 학생 한 명뿐이었어서, 정말 무슨 짓을 해도 답을 못 찾는 것만 고심 끝에 물어보곤 했다...부끄럽네


2. 생각보다 빡세다.

나는 학은제 출신 편입생이었기 때문에 제때 졸업하려면 신입생보다 훨씬 머리를 많이 굴려야했음. 전공과 교양을 가리지 않고 원치 않는 수업 들어야하는 건 당연했고 ㅋㅋ... 덕분에 3학년 내내 주 5일 나갔고, 여름방학에도 쉬지 못하고 계절학기를 두 과목씩 들었음. 이 짓을 왕복 2.5~3시간 거리를 통학하면서 했다고? 믿기지가 않네 허허......

물론 체력적으로도 힘들었지만, 퀴즈와 팀플에서 나의 무능함을 수시로 재확인하면서 자신감이 뚝뚝 떨어지는 게 더 힘들었어. 뭐, 결국 내가 공부를 안 한 탓인데, 이에 대한 핑곗거리도 당연히 준비되어 있지.


3. 진짜 문제는 의욕상실

내 전공은 전공 살려 취업하려면 사실상 대학원이 필수야. 과에서 공부 좀 잘한다 하는 애들은 다 대학원 준비하고 있더라고. 나도 이걸 몰랐던 건 아니야.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처음 대학 가려고 했던 4~5년 전에는 내가 내 나이를 너무 과소평가했고, 지금은 그 때보다 취업시장 상황도 훨씬 나빠졌어.

그래서 부모님과 상의 끝에 대학원 진학은 포기했지. 부모님도 연세가 적지 않은데 석사 학위가 있다 해도 34살에 취준을 한다는 건...? 듣기만 해도 참 어렵긴 하잖아ㅋㅋ

그래서 사실상 졸업장만 따려고 학교를 다니는 모양새가 되어버렸지. 덕분에 시작부터 의욕이 안 나더라고. 전공 안 살리면 뭐할건데..? 애초에 나같이 나이 많고 공백기만 더럽게 긴 인간에게는 공무원, 공기업 정도가 고점이었을텐데 말이야.

첫 학교생활의 낯섦, 어려운 과목, 팀플 등이 아니라, 이게 진짜 문제였어. 웃긴 게, 수업 내용 자체는 꽤나 흥미가 돋더라? 물론 수업 끝나고 공부를 안 해서 성적은 망했지만ㅋㅋㅋ... ㄹㅇ 공강 때 도서관 가서 교재 뒤져보기도 했음ㅋㅋ



4. 돌아가기엔 늦었다

공부까지 재미없었으면 진짜 관뒀겠을텐데 그렇지는 않고, 4년제 학위조차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합쳐져서 꾸역꾸역 3학년을 마쳤네.. 여전히 친구도 없고 의욕도 없긴 하지만, 기회비용을 생각해서라도 졸업은 하기로 마음 먹었어.

게다가 내년은 아마 올해보단 편할 것 같아. 운좋게 학교 옆으로 이사를 가서 통학 시간이 엄청 줄어들 예정이고（매우 중요）, 학점도 24학점밖에 안 남았으니 ㅎㅎㅎ

그리고 교수님께서도 슬슬 내 존재를 인지하셨는지 가끔 말 걸어주시던데 이제야 비로소 구성원이 된 것 같아서 기분 좋더라. 공부를 너무 안 한 게 민망하긴 해....

암튼 4학년 때는 진지하게 공부해서 A+도 노려봐야겠다! 여전히 미래는 막막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