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자의 탕웨이 글을 보고

요양원에 치매 어르신 목욕 봉사 갔다가

어떤 할머니가 해주신 얘기가 생각나서 써봄.




할머니는 말도 못하게 가난한, 형제까지 많은 집안의 장남과 결혼하심.

할아버지는 해뜨기 전 일터로 나가서 해가 지면 기술을 배우셨음.

그렇게 모은 돈으로 20평 미용실을 구해서 의자 세 개를 놓고

한쪽벽은 미닫이 문으로 막아서 시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3살 첫째 아들과 살았음.

그리고 둘째 딸이 태어난지 얼마 안되어

할아버지는 리비아에 가서 목돈을 벌어와서 카센터를 열겠다고 하심.

그렇게 할머니는 한국에서 두 아이와 시어머니와 함께 남아 일을 하심.

아침 6시 반에 문을 열어 출근길에 머리 깎는 손님을 받고

둘째를 포대기에 싸 등에 업고 밤 9시까지 일을 하곤

시어머니도 그때쯤 일을 하고 오셔서 낮에는 못한 반찬 만들기, 수건 빨기를 하다보면

열두시를 넘기기 십상이었음.


그러던 중 몸살 걸린 시어머니를 대신에 문을 닫고 잠시 시장에 다녀온 사이

도둑이 들어서 한주 매상을 싹 털어가는 일이 벌어짐

시어머니는 애들이 헤꼬지 당할까봐 벌벌 떨면서 아이들을 안고 계셨고.

그 일이 있고나서는 마음이 꺾인 할머니는 집에 남자만 있었더도 도둑이 들지 않았을텐데

둘째가 더 클때까지 기다렸다가 갔으면 안되었을까

하면서 서러움이 그리움으로, 그리고 원망으로 바뀌면서 점점 우울한 해져

매일 밤마다 수건을 빨며 눈물을 흘리셨다고함.


그러던 언젠가

손님도 없고 시어머니를 둘째를 데리고 병원에 에방 접종 맞으러간 날

할머니는 가게 앞 은행나무 아래 평상에 걸터 앉아 계셨고

앞에는 첫째가 보도블럭에 주저 앉아 있는 돌조각으로 뭔가를 그리고 있었음

그런 첫째를 물끄러미 보면서 오늘 새로 꺼내 입힌 하늘색 바지에 흙인 잔뜩 묻은걸 보고선

저걸 또 빨 생각에 한숨을 쉬면서 신세 한탄을 하시다가

문득 보도블럭에 첫째가 그리던 그림을 보게 되었는데,

전부 자전거였다고함

할머니는 그걸 보고

- xx야, 자전거 그린거야?
- 응, 이건 파란 자전거인데, 여기 누르면 번쩍번쩍 빛이나고 소리도 난다
- xx, 자전거 타고 싶어요?
- 아니, 괜찮아. 엄마 힘들자나.

4살 첫째 입에서 나온 '엄마 힘들자나'라는 말에 할머니는 머리를 한대 얻어 맞은 것 같았다고함.

할아버지가 리비아로 가던 날 첫째를 꼭 안고선

'아빠가 돌아올때까지 엄마 힘들게 하지 말고 말 잘들어야해?'

라고 했던 말도 떠올랐고.

생각해보니 첫째는 때를 쓴 적도 없고 항상 눈에 닿은 곳에서

샴푸병을 가지고 놀거나, 보도블럭에 그림을 그리거나 TV를 보고 있었음

흔한 반찬투정도 안했고.

아마도 갖고 싶어서 온 보도블럭에 그림을 그렸을텐데

이 녀석이 내 생각해서 참고 있었다고?

할머니는 그 자리에서 바로 첫째 손을 잡고 자전거 가게로 달려갔다고함..

너무 비싸면 어쩌지, 반찬은 좀 여유가 있나? 하면서.

사장님은 평소 억척스럽다고 소문한 미용실 새댁이 아이를 데리고

큰 결심을 한듯한 떨리는 목소리로 아이 자전거를 사러 왔다는 말을 듣곤

붙어있던 가격보다 훨씬 싸게 자전거를 팔았다고함.


첫째는 공터로 가면서도 새 자전거를 보고 흥분 하면서도 되었는데도

괜찮은 건가? 타도 되나? 하면서 혼란스러워했다고함

그렇게 할머니는 자전거를 뒤에서 밀면서 같이 놀았는데

노을이 물들 때쯤 첫째는 밀어주지 않아도 혼자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고함


그리고...

까르르 웃으면서 '엄마 고마워, 사랑해!' 하면서 자전거를 첫째의 모습을 보고

할머니는 펑펑 울었다고 하심

그리고 그 모습은 기억이 아닌 영혼에 새겨졌는지

치매를 앓으시면서도 아이들이 웃으며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보시면

해맑게 웃으시며

자전거 타는 아이들이 웃는 목소리가 세상에나 얼마나 이쁜가요 하면서 이 얘기를 해주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