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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귀고 동거까지 하니까
행복하긴 했음.
근데 좀… 결이 바뀌었달까.

아침에 눈 뜨면
내 방인데 내 방 같지가 않았고
누가 옆에 있는 게 싫진 않은데
편하다고 말하기도 애매했음.

출근 준비하다가
양치하고 있는데
뒤에서 안기면 괜히 웃음이 나왔음.
이상하게 그런 순간들이
점점 짧아지긴 했지만.

돈 얘기는 안 하려고 했는데
같이 살면 안 할 수가 없었음.
“이번 달 좀 빠듯하다”
“다음 달엔 괜찮을 거다”
말은 계속 그렇게 했는데
솔직히 말하면
나 스스로를 못 믿겠더라.

이 친구는 계속
“괜찮아 괜찮아” 했는데
그 말 들을수록
내가 점점 작아지는 느낌이었음.

어느 날 둘이 바다를 보러 갔음.
노을 지는 방파제에 앉아서
말없이 파도만 보고 있었는데
담요 반 나눠 덮고
내 팔로 어깨 감싸고 있으니까
누가 보면 딱 연인 그 자체였겠지.

근데 그때
이상하게
‘이 장면 오래 안 가겠다’
이 생각이 먼저 들더라.

지켜줘야 할 사람을 안고 있는데
지킬 힘이 없다는 걸
그때 처음 제대로 알았음.

헤어질 때도
막 싸우거나 그러진 않았음.
어쩌다 보니
말이 줄고
그냥 거기까지 와 있었음.

마지막 날도
별일 없었음.
짐 싸는 거 옆에서 보고 있었는데
붙잡지도 못했고
이 친구도 울진 않았음.

문 닫히고
방이 조용해졌을 때
한참 그대로 서 있었던 건 기억남.

사랑이 끝난 것도 아팠지만
그것보다
어른인 척만 했다는 게
더 아팠던 것 같음.

그래도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할 수 있는 만큼은 했다고 생각함.

그리고 그 친구는
내 인생에서
제일 뜨거웠던 시기를
같이 지나간 사람이었음

그래서 지금도
노을 지는 바다 보면
괜히 말수가 줄어듦.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