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난 캐논을 좋아한다. 캐논 DSLR 특유의 둥글둥글한 바디와 EF L 렌즈들의 조합이 가장 이쁘다고 느끼는 편이다. 카메라는 스펙도 중요하지만, 결국 손이 먼저 가야 많이 찍게 된다고 생각해서 외관을 1순위로 본다. 그런 점에서 지금 캐논에서 나오는 미러리스, 특히 R6 Mark II도 바디 디자인은 마음에 드는데, RF 렌즈들은 어딘가 밋밋하다. 전자제품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어댑터를 끼워 EF 렌즈를 쓰는 방법도 있지만, 일체감에서 오는 만족감이 떨어질 것 같아서 선뜻 손이 안 갔다.

동급 기준으로 봤을 때 미러리스가 스펙상 DSLR을 모든 면에서 압도하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미러리스로는 “사진 찍는 맛”이 잘 안 난다. 결과물은 분명 더 좋고 편한데, 찍는 과정이 너무 완벽하고 효율적이라 오히려 재미가 없는 느낌이다. “사진이 잘 나오면 그게 최고 아니냐”라고 하면 할 말이 없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시점에서 내가 오막포를 산 이유를 정리해보면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DSLR의 OVF 감성이다.

DSLR은 렌즈를 통해 들어온 상을 미러와 펜타프리즘을 거쳐 광학식 뷰파인더（OVF）로 보여준다. 반면 미러리스는 말 그대로 미러가 없고, 센서에 바로 맺힌 상을 전자식 뷰파인더（EVF）로 보여주는 구조다. EVF는 디지털 이미지를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에, 사진이 어떤 색감으로 찍힐지, 노출은 적당한지 등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어서 편의성 면에서는 압도적이다. 하지만 EVF가 아무리 발전해도 ‘디지털 화면을 보고 있다’는 느낌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다. 실제 렌즈를 통해 들어온 상을 미러로 직접 보는 OVF의 감성과 몰입감은 EVF가 대체할 수 없는 부분이고, 나한테는 EVF의 편의성보다 OVF의 감성이 더 중요했다.

둘째는 사실상 DSLR은 단종 수순이라는 점이다.

나는 2012년에 캐논 1100D와 번들 렌즈로 사진을 시작했고, 그 이후로 줄곧 크롭 바디만 사용해왔다. 그래서 풀프레임에 대한 갈망은 항상 있었다. 특히 렌즈나 조리개를 이야기할 때마다 풀프레임 환산을 계속 계산해야 했기 때문에, 신경 쓰이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언젠가는 풀프레임을 사야지’라고 생각하면서도 비싼 가격 때문에 계속 미루고 있었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생겼다. 바로 캐논의 중심이 거의 완전히 미러리스로 넘어갔다는 점이다. EF 렌즈군은 하나둘 단종되고 있고, DSLR도 2020년쯤을 끝으로 신제품 소식이 없는 상황이다. 이런 흐름이라면 조금 더 미루다가는 새 제품은커녕, 중고로만 구해야 하는 날이 오는 건 시간문제라고 느꼈다.

그래서 “지금 사지 않으면 평생 신품 오막포는 못 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캐논 DSLR 중 가장 고급기（왕덱스 마크3도 있지만, 그건 일상용으로 쓰기엔 부담스러우니 제외하고）인 오막포를, 그것도 새제품으로 들이고 싶었다. 내 물건에 애착이 생기려면 중고보다는 신품이어야 한다는 생각도 컸다. 객관적으로 보면 비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지만, 나에게는 지금 이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