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알람소리.
거칠게 눈을 비비고 일어난다. 또 하루의 시작이다.
어제는 오늘과 같고 내일 또한 오늘과 같을것은 매한가지일것이다. 그럼에도 변할것없는 하루에 감사해하며 또한 만족해가며 하루를 시작해보자.
일해서 먹고살아야지. 전국민. 아니 전세계 사람이 같은 생각을 하며 살고있지 않겠는가. 평범하디 평범한 지루한 내 삶에 평파가 없다는것.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어제 입고 의자에 던진 옷을 주섬주섬 주워입는다.
어짜피 회사가면 작업복으로 갈아입을텐데.
출퇴근 30분도 안되는 시간을 위해 새 옷으로 갈아입는것은
너무 비효율적인 일이지않을까.
스스로의 게으름을 합리적이라 억지로 납득시키고 어제 짬뽕 배달시켜 먹고 남은 군만두를 입에 쑤셔넣는다
저 시키는 정규속도라는걸 모르나 아무리 그래도 70길에
70킬로를 밟는건 상식아닌가.
짜증으로 자동차 헨들을 내리친다. 조금 일찍 가서 모자란 아침잠을 보충하려고 했는데 글렀다 글렀어
차에서 나오는 노래나 흥얼거리다 에라이 때려치자. 아는 노래도 없네.
회사에 도착한다.
그래도 한시간 반 일찍 왔다고 회사앞은 한산하다.
왜 일찍 출근했냐고? 회사에 이쁨받고 싶어서라던지 일에 충실하고 싶어서 라는 거창한건 아니고.
아침에 안 막히고 오고싶고 회사 앞 좋은 자리에 주차해두고 싶어서. 그래야 퇴근도 수월히 가지않겠는가. 뭐 혹시나 회사 높은분이 본다면 어쩌면 이뻐해줄지도 모르잖아.
10년 넘게 다녀도 그런일은 없었지만.
먼저 온 동생들과 인사를 나누고 내 개인 보틀에 커피를 탄다.
일회용 아메리카노 두개. 찬물 가득.
작업복으로 갈아입는다.
코를 찌르는 화학약품의 냄새.
세탁기를 돌릴까? 아니다 어짜피 일 시작후 30분이면
똑같아질텐데. 하루만 더 입도록하자.
동료들과 잡담을 나누며 깔깔댄다.
그래 사는데, 힘들게 일하는데 이정도 낙은 있어야하지 않겠는가. 아직 일 시작까지 한시간이나 남아있다.
베개를 꺼내 탈의실에 드러눕는다.
그래. 이려려고 빨리오는거지.
일 시작 40분전.
관리자가 들어온다. 표정이 좋지않다.
또 불량이라도 떴나? 아니면 일이 너무 많아 주말 특근을 말하려나.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한번 떠보도록 하자.
주말 휴식시간을 빼앗기는것은 피하고 싶으니 가급적 기회를 노려 주말에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핑계를 머릿속에 구상해보자.
일 시작 30분전
인축 감원이라고?
이 무슨 난데없이. 아니 좋지않다는 눈치를 못챈건 아니지만 잔업축소나 주간근무. 이정도의 예상만했다.
갑자기 10년 넘게 다니다 잘리게 된다면...
집담보대출이자 부모님병원비 지난주 아무생각없이 지른 할부금이 떠오른다.
안된다.
내가 잘려서는 안된다고 어필할 이유를 찾아본다.
10년넘게 충성한 사람에게 어떻게 이럴수 있냐고?
안된다. 동생 몇을 제외하고는 다들 나보다 더 오래 일한 사람들이다.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를 어필해볼까 회사 미래를 생각해달라고?
그것도 웃기는 소리. 40이 넘은 나이에 나 창창하고 젊소라고 외쳐봐야 누가 아 그렇군 하고 납득하겠는가.
가여워보일것같은 눈빛만 보이려다 포기한다.
젠장 나만 미혼이구나. 상대적인 절박감에서 밀려날수 밖에 없다. 망할. 망할이구나.
일을 마치고 저녘에 감원될 사람을 지목. 혹은 자청하라고?
지금 말해주면 안될까? 굳이 가슴 저려가며 하루종일 일을 해야할 필요가 있을까. 일이 손에 잡힐것 같지도 않는데.
좋아 일 마치기까지 11시간.
내가 짤리지 않아야할 이유를 머릿속에 정리해보자.
8시 작업 시작
몸 아픈 부모님을 활용해보도록하자.
부모님의 병원비로 허리가 휘어 회사를 잘리게 되면 살아갈 방법이 없다고 어필해 보자.
적어도 동정표라도 얻어 짤리지 않아야 할 이유를 어필할수 있지 않겠는가
마치고 모일때 이렇게 하는것이다.
표정에 근심을 가득 싦고 눈에 눈물이 뚝뚝 떨어질것 같은 표정을 하고
계장님 제 사정 아시지않습니까.
아버지가 많이 편찮으세요 병원에서 계속 입원하라고.
어머니 몸도 이제 연세가 있으셔서 하루하루 안좋아지시구.
이 상태에서 회사마저 나가라고 하시면 저는.
그저 아무것도 없이 거친 황야의 찬바람을 맞아야하는 여리디 여린 가냘픈 아이가 되어..
이런 식으로 어필한다면 계장포함 관리자들은 동정의 눈물을 줄줄 흘리며 나를 달래겠지.
그래 니 사정이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너를...
...이겠냐?
바로 저번주에 부모님 모시고 단풍구경갔다왔다고 말한게 나고
얼마전에 할부로 거액을 지르고 그것을 동료들에게 낄낄대며 자랑했던것도 나이다.
원래 모든 화는 입에서 시작된다 했다.
이 놈의 입! 입! 입!
자식이나 와이프 핑계를 대볼까.
와이프 친정에 일이 있어서.
아니면 아이들 학교 학원 걱정을 꺼내는 것이다.
하지만 난 결혼을 하지않았지.
없는 가족 만들어낼 방법은 없을까.
망할. 일단 이 방법은 글러먹었다
9시
사실 내가 알고보면 사장과 잘 아는 낙하산 인사일 경우.
그게 말이나되냐라고 하고싶겠지만
오늘 아침까지 평온했던 내 삶이 갑자기 흔들리는건 또 말이 되냐? 될까 안될까를 고민하기보다는 머릿속에 계획을 짜보는것이다. 그것만큼은 내 자유 아닐까.
저녘에 다 모인 자리에서 계장에게 이렇게 말하는거다.
내가 누구지 아세요? 이렇게 막대할 사람 아닌데 사실을 알고나면 후회하실수 있어요. 저한테 이런말 하는거 위에서는 알고 있나요?
그 한마디에 모두가 놀랄것이다. 그리고 다시 직원 명단을 살펴보면서 나를 감원명단에서 빼려고 그리고 노한 나를 달래려 모두가 땀을 뻘뻘흘리겠지.
그 앞에서 나는 내려다보는 거만한 눈빛으로 말하는거다.
사실 이 모든게 현장직원 잘못이 아니잖아요.
관리자가 제대로 계획을 짜지를 못해 이렇게 된것 아닙니까.
책임을 질 사람이 바뀌었잖아요.
이러면 관리자들은 허둥지둥대면서 사장에게 의견을 구하고 오겠다고 고개를 숙이게 되겠지.
그들앞에서 내려다보며 말하는거다.
그러시던가요.
화급히 사장의 의견을 물으러 갔다와서 내게 말하겠지.
걔가 누군데? 나 그런애 모르는데.
...
될거라는 말 애초에 안했다.
그냥 방법을 구상만 한것이다.
나도 안될거 알고 있다.
어이쿠 10시 쉬는 시간이 울린다.
회사 잘리는건 잘리는거고 쉬는 시간은 쉬어야 하지 않겠는가.
10시
쉬는 시간 아침에 타두었던 냉커피를 벌컥벌컥 마신다.
속 끝에서 짜릿하게 전해지는 차가움.
넘실대는 커피향.
사실 내가 커피맛이라는걸 어떻게 알겠나.
커피향나고 시원하면 그게 커피지.
50원차이로 고급커피 저급커피를 구분하는 나에게 커피맛을 묻는다면 그것보다 허망할 질문이 없겠지.
빠르게 들이키다 목에 걸려 캑캑 된다.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한가지 생각.
그래 아픈척 그래서 병원에 실려간척하는거다.
명답안이다.
설마 아파서 쓰러진 사람에게 너 나가라 라는 통보를 하진않을것 아닌가. 설마 저녘의 회의에서 아파서 쓰러진 이를 감원대상으로 삼지는 않지 않겠는가.
그 자리만 피하고 하루이틀 아팠다고 연차를 쓴후 복귀하면
누군가가 감원되어 있을것이고
나는 그 사람을 아쉬워하는척 하며 가식스러운 위로의 말 던져주는것이다.
완벽하다. 이걸로 가보자고!
...일리가 없잖는가.
대기업, 중견기업도 아닌 지방의 작은 중소기업이 아픈 사람을 기다려준다고? 기회다 외치면서 나부터 자르겠지.
11시.
그래 굴릴 머리는 다 굴렀다.
애초에 자른다는 말에 당황하지않고 당당할 나라면
이렇게 작은 회사에서 충성충성 외치면서 다니지도 않았겠지.
현실로 돌아와보자.
내 나이 40대 초중반. 특별한 기술은 없고 10년 넘게 해온것은
단순한 기계돌리는것.
그렇다고 이것을 다른 회사에서 써먹을수 있나.
그건 또 아닐것이다.
동종의 회사를 가려면 수도권을 가야겠지.
좀 봐줬으면 좋겠다.
나 집 산지 이제 1년 됐다고.
부모님께 이제 제가 모실게요라고 큰소리 친지 이제 반년됐다.
그렇다면 근처의 중소기업에 취직한다라..
지금와서 최저시급으로 이 나이에 신입을?
물론 배부른 소리라는것도 알고 어차피
결론은 그런 결론이 나버릴거라는 것도 알고있다.
하지만. 머리로는 알고있다지만
내 마음이 싫다고 하잖아, 나름 마음 여린 40대라는것을
감안해줬으면한다. 생긴것과 다른게 여린마음도 있다고.
그렇다고 다른 수가 있는가.
지인이나 친구에게 부탁한다?
다 그런건 아니겠지만 대체적으로 친한 사람끼리 형편은 다 비슷하더라고. 하나같이 파리목숨. 안됐다는 동정의 눈빛만을 받겠지.
그렇다고 아...
점심시간이다.
먹는 시간에는 행복한 마음만 가지도록하자.
먹으려고 사는것 아니겠는가 허허.
짜장밥만 안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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