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군번 k9 자주포병 출신인데 다른 군생활썰은 친구들하고 웃으면서 아 힘들었다, 얘기할 수 있는데 지금 얘기할 건 단순히 힘들었다 뿐만 아니라 군생활이라는 나름 재밌고 의미도 있었을 추억을 회의라는 감정으로만 점철되게 할 수도 있는 얘기라 잘 언급은 하지 않는 주제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나의 군생활의 의의를 송두리째 뿌리뽑는 얘기임.

다른 견인포병, 박격포병은 내가 겪지 못해서 말을 못하겠지만 다른 k99?, k9포 자주포병은 알겠지만 대부분 부대가 최전방에 있더라도 오전 교통량을 생각해서 실사격 훈련이 있는 날은 새벽부터 진지로 이동하는 게 일종의 관례로 통한단 말임. 때는 내가 부대 최고참 서열로 있던 21년 11월에 있던 일임. 얼마나 억울했으면 아직도 기억이 나냐 슈바.

그 전날 fdc（fire direction center）와 기타 출동준비를 조정하고 끝맞춘 상태에서 새벽부터 기동을 했는데 우리의 목적지였던 진지 초입부터 그런 플래카드가 보이는 거임.
“포사격 너무 시끄럽다. 하지 말라”

이런 게 5개 쭈루룩 걸려있길래 그 순간에 내 군생활에 대한 회의가 빡 왔음. 물론 우리 모두가 끌려 온 입장에서 그런 국가와 국민을 수호한다 따위의 신성한 마음가짐 같은 게 크지는 않겠지. 그런데 그래도. 어쨌거나 1년 넘게 속된 표현으로 좆뺑이 쳐온 우린데 그 의무와 수호를 ai의 표현을 빌리자면 ‘국가적 희생자’인 우린데 우리는 그 피수호자인 국민에 의해 우리의 존재의의를 전면으로 부정당한 거였음. 고작해야 포사격이 시끄럽다는 이유로. 진짜 ㅋㅋㅋㅋㅋ 고작해야 그 이유로. 위험하다 이딴 것도 아니고.

이해를 못할 건 아님. 아무리 새벽시간대에 이동한다 해도 그 몇 십톤짜리가 이동하는 소리며 포 쏘는 소리며 오죽 시끄럽겠어? 그런데 그래도, 3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도? 아니 30년이 지났을 시점에서도 군인 때문에 시끄럽다고 훈련 자체를 하지 말라고 단체로 플래카드를 거는 관습은 절대 이해도 존중도 못하겠음. 막말로 꼬우면 다른 데서 살든가. 잘은 몰라도 그쪽이 최전방이라 집값이 싸서 사는 이유가 대부분일텐데 그정도는 감수하면서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