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많은 분들이 관심을 보내주셔서, 원래는 소설과 애니를 다시 정주행하고 한참 뒤에나 작성하려 했지만 마지막 남은 소재들을 탈탈 털어 3편도 마저 이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번엔 어떤 이야기를 해야할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인기를 끌었던 3기, 슬레이어즈 TRY의 내용들을 많이 빼놓은 것 같아 이번엔 그 내용들을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슬레이어즈 TRY

위에 적어둔 대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인기를 끌었던 시리즈이지만, 사실 슬레이어즈의 '정사（正史）'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게, 2기였던 NEXT의 후반부부터 소설과는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됐기 때문인데요. 그런 고로 3기는 애니메이션 오리지널 스토리이자 원작의 패러렐 월드라고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스토리는 피브리조의 멸망 이후 과거 강마전쟁 당시 펼쳤던 결계는 사라지고, 이로 인해 외부 세계와의 왕래가 자유로워졌다는 배경 아래, 세일룬 왕국의 사절단과 함께 외부 세계를 향해 출항하려던 리나 일행 앞에 의문의 무녀 한 명이 나타나 종말로부터 세상을 구할 영웅으로 리나가 낙점됐다며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되는데요.

사실 정확히 말하면, '세상을 멸망시킬 존재가 조만간 나타날 테니, 이를 막을 수 있는 인물을 찾아라' 라는 신탁이었고, 그녀가 소속된 화룡왕의 신전에 있던 원로들은 최강의 인간이자 적룡신의 힘을 일부 나눠 받은 쉬피드 나이트, 루나 인버스를 지목하죠. 

그러나, 루나는 아르바이트가 바쁘다는 핑계로 리나에게 그 짐을 모두 떠넘기는데, 처음에는 리나 역시 이를 거절하려다가 루나의 이름이 거론되자 극도의 공포감을 내보이면서 결국 승낙하기에 이릅니다. 작가 피셜로는 루나가 나서면 스토리고 뭐고 그냥 한 방에 정리되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리나에게 일을 맡긴 거라고 하네요.

화룡왕의 무녀 피리아 울 콥트

금발 미녀 캐릭터이자 작중 초반부터 신비함과 엉뚱한 매력을 동시에 선보이며 많은 인기를 끌었던 피리아는 사실 골드 드래곤이자 화룡왕의 무녀입니다. 이전까지 작품에 등장하지 않았던 신성마법을 일부 구사할 수 있으며 종족 특성으로 매우 강한 힘과 변신 능력까지 지니고 있지요.

하지만, 그래도 본인은 되도록이면 인간의 모습으로 다니는 걸 선호하는 듯 합니다. 애초에 변신하는 장면을 누군가에게 보이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걸 수도 있지만, 애니메이션을 보다 보면 드래곤인 상태로 일행을 대하는 것도 꺼려하는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호신용으로 매우 무거운 메이스를 들고 다니곤 하는데, 일반적인 인간든 드는 것 조차 불가능할 정도의 무게라고 합니다.

그런 걸 치마 속에 넣고 다니는 피리아는 대체...

신을 모시는 무녀라는 점에서 마족인 제로스와 묘한 기류를 풍기기도 하고 마찰을 빚는 장면도 상당히 많이 묘사되는데, 이건 피리아가 신족은 아니지만 적룡신 자체가 용의 형태를 갖춘 신이었다는 점을 돌이켜봤을 때, 드래곤 역시 마족의 대척점에 위치한 종족이었기에 가능한 연출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다만, 아쉽게도 공식적으로는 제로스보다 슬레이어즈 TRY의 메인 빌런이라 할 수 있는 바르가브와의 커플링을 더욱 밀어주는 듯하네요.

바르가브

피리아와 마찬가지로 애니메이션 오리지널 캐릭터로 설정상 마룡왕 가브의 직속 부하라고 합니다. 뭐, 원작 소설에서는 용신관 랄타크와 용장군 라샤트가 직접 등장하는 만큼, 실제로 장군이나 신관급의 캐릭터로 그리려 했던 게 맞는지 확신할 수는 없으나, 작품 후반부에서 방심한 제로스를 제압하는 힘까지 보여준 걸로 미루어 봤을 때 충분히 그럴 듯한 해석이라고 보여지네요.

뭐, 사실 가브를 직접적으로 죽인 건 피브리조지만 그 원인이 리나 일행에게 있다고 여기며 그들에게 복수심을 품는데, 이 때 이세계의 신족인 아르메이스 일행과의 협력 관계 때문인지 빛의 검 고룬노바를 뺏으려 갖은 노력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저 강하다는 이유로 동족이라 볼 수도 있는 골드 드래곤에게 배신당한 에이션트 드래곤의 마지막 남은 혈통 답게 후반부로 갈수록 가브의 힘과 드래곤의 힘을 모두 제어하게 되며 점점 더 강해지는 모습을 보여주죠. 다만, 그만큼 내적 갈등과 신체적인 고통도 심해져서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느끼게 만들곤 했습니다.

위에서 소개한 피리아 역시 자신이 그렇게 정의라 믿었던 골드 드래곤들의 추한 과거를 마주한 뒤 깊은 고뇌를 거듭하는 모습을 보였고, 바르가브 또한 최후의 최후에서는 후회하는 듯한 모습을 살짝 내비추기도 하는 등 오리지널 캐릭터이긴 하지만 상당히 입체적이고 납득할 만한 개연성을 갖고 있어, 원작 팬들에게도 꽤 호평을 받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슬레이어즈 TRY의 끝에서는 다크 스타의 현신이 막히면서 결국 알로 돌아가 피리아의 손에 쥐어지게 되는데요. 이 때문인지 이 둘의 커플링은 뭔가 묘한 느낌이...

강마전쟁

뭔가 순서가 뒤죽박죽인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관통하는 이 사건을 제대로 다루지 않았던 것 같아 여기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약 1,000년 전 샤브라니구드의 일곱 조각 중 하나의 숙주였던 레이 마그너스는 마왕으로서 각성에 성공하게 되고 그런 그를 따라 5대 심복은 쉬피드의 네 분신 중 하나인 수룡왕을 없애기로 마음 먹습니다.

하지만, 단순 계산으로도 쉬피드의 힘을 1/4이나 갖고 있는 수룡왕을 상대로 1/7 샤브라니구드 + 5대 심복은 밸런스가 맞지 않았죠. 이에, 명왕 피브리조는 리나 일행이 활약하는 메인 무대인 카타트 산맥 일대를 결계로 둘러 쌓아 수룡왕의 힘을 약화시키고, 같은 용속성의 마족인 마룡왕 가브를 앞세워 그에게 힘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그를 상대하려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수룡왕은 죽었고, （이 세계에서 멸망과 죽음은 다릅니다. 극히 왜곡되긴 했지만 아주 쉽게 말하자면 멸망은 완전한 소멸로서 죽음의 상위호환.） 마룡왕 가브는 인간의 몸에 봉인되어 점점 그 힘을 잃어 가다 결국엔 일파 전체가 샤브라니구드를 배신하기에 이르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제로스의 밀어서 잠금해제 또한 이 때 있었던 사건으로 수룡왕을 구하기 위해 달려온 수 천의 드래곤을 단숨에 몰살시키면서 '용살자' 라는 별명을 얻기도 합니다. 때문에 슬레이어즈 TRY 초반부에서는 피리아가 제로스를 크게 두려워하죠.

데몬 블러드 탈리스만

3기인 트라이는 옴니버스 식으로 이어지는 여러 가지 사건 속에서 배후를 발견하고 숨겨진 진실에 점점 다가가는 형식으로 연출됐던 전작들과 달리 처음부터 피리아라는 캐릭터에 의해 거대한 사건에 발을 들이게 되는, 조금은 다른 형태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요.

그 때문인지, 아니면 원작 없이 그럴 듯한 스토리를 전개해 나가야 한다는 어려움 때문이었는지, 총 26화중 꽤 많은 회차가 별 의미 없는 이야기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결국엔 끝없는 전쟁에 지친 다크 스타 듀그라디구드와 흑룡신 볼피드가 융합하여 여러 세계를 멸망시키고 다니는 걸 막기 위해, 다크 스타의 5대 무구를 찾아 다니던 이세계의 신족 아르메이스 일행과 함께 그 마왕을 소환하려던 바르가브를 격퇴한다는 이야기가 완성되긴 합니다.

그 과정에서 리나는 한 곳에 모인 무구들에 기가 슬레이브를 사용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 주문을 사용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데몬 블러드 탈리스만'이 작동하지 않으면서 결국엔 피리아가 알려준 신마융합 마법을 사용하게 되지요.

여기에서 언급되는 데몬 블러드 탈리스만은 1기에서부터 꾸준하게 언급됐던 현자의 돌이자, 4세계 마왕들의 힘을 빌려올 수 있는 마력 증폭기입니다. 실제로 2기에서 제로스에게 구입한 뒤로 로오나의 주문을 사용할 때면 항상 사전에 탈리스만을 개방하곤 했죠. 

소설에서는 2부의 최종 보스 （그러니까 원래는 슬레이어즈 TRY 대신 3기가 되었어야 할 내용） 를 처치하기 위해 탈리스만을 깨물어 깨트린 뒤 해당 마왕들의 힘을 일시적으로 빌려올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그 뒤로는 사용하지 못 했구요.

이와 관련된 재밌는 에피소드라면 리나가 처음 이걸 강탈 구입하려 했을 때 최초에는 500골드의 가격을 제시했는데요. 그 터무니 없이 빈약한 액수를 들은 제로스가 그만 그 1만배인 500만 골드를 역제시 하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세계의 모든 도적들을 털어 먹고 다녔던 리나는 그 자리에서 그 돈을 지불해버리는 위엄을 보여줬거든요. 1편에서도 말씀드렸듯 마족은 거짓말을 하거나 약속을 깰 수 없는 존재였기에 제로스는 하는 수 없이 리나에게 이 물건을 팔아버렸죠.

이런 가공할 힘을 지닌 탈리스만의 힘을 개방하는 주문은 애니메이션 판을 기준으로

사계의 어둠을 지배하는 왕

그대 조각의 인연에 복종해

그대들 모두의 힘으로

나에게 새로운 힘을 부여하라

라고 하는데, 소설에서도 나왔는 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집에 소장하고 있긴 한데 안 읽은 지 10년이 훌쩍 넘은 관계로...）

또한 슬레이어즈 TRY의 대미를 장식했던 신마 융합 마법은

어둠의 왕이 낳은 별을 자아내는 다섯 개의 빛이여

그 힘으로

황혼보다 더욱 어두운 자

새벽보다도 더욱 눈부신 자

인도된 힘을 하나로 모아서

나에게 천공을 꿰뚫을

한 가닥의 화살을 부여하라

라는 주문을 갖고 있는데요.

여기에서 '황혼보다 어두운 자'는 모두 알고 있듯 루비 아이 샤브라니구드를 뜻하며 '새벽보다도 더욱 눈부신 자'는 플레어 드래곤 쉬피드를 뜻합니다.

또한 어둠의 왕은 다크 스타 듀그라니그두를 칭하는 문구이고, 다섯 개의 빛은 그가 만든 5개의 빛의 무구들을 이야기하는 것이죠.

오늘도 급발진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써봤는데, 솔직히 슬레이어즈 TRY는 오리지널 스토리이기도 하고 워낙 대중적인 팬덤이 두텁다 보니 해석이 다양해 제가 기억하고 있는, 혹은 찾아낸 내용들이 100% 정확한 것인지 확신하기가 조금 어렵네요. 

그래도 작가 본인 역시 3부를 재연재 하기 시작하며 설정들을 대부분 잊어버려 위키의 내용들을 많이 참고했다고 하니... 공식적으로 발표된 내용이 아니라면 정답이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건 그냥 사족인데 슬레이어즈 TRY 관련하여 OST인 Breeze와 피리아가 불렀던 Somewhere을 기억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더라구요. 저는 개인적으로 더빙판 기준으로는 Breeze가, 원어판 기준으로는 2기 OP인 Give a Reason을 가장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