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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적인 감상평
개봉 당일이었던 어제 파묘를 보고왔어. 장재현 감독의 전작인 <사바하>를 워낙 인상깊게 봐서, 이번 작도 상당히 기대를 하고 보러갔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름 괜찮은 작품이지만 아쉬운 부분도 작지는 않은 작품이야. 왜 그렇게 느꼈는지 뒤에서 마저 설명할게.
압도적인 분위기의 1부
1부의 내용은 예고편만 보더라도 예상할 수 있을만큼 뻔한 내용이야. 친일파의 묘에 무슨 문제가 있어서, 그 후손들이 피해를 입고, 결국 어찌저찌 주인공 일행이 해결한다. 꽤나 단순한 내용이지만, 그렇기에 관객들이 영화에 몰입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에피타이저 역할을 할 수 있지.
그런 파트이기에 연출이 상당히 중요한데, 장재현 감독의 역량이 빛나는 순간이야. 영화의 소재가 되는 부분에 대해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는 감독답게 연출을 비롯한 디테일적인 부분이 정말 잘 드러나. 특히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공감하겠지만 대살굿 장면이 이런 부분에서 상당히 인상깊지. 디테일한 소품들, 편집, 배우들의 혼신의 연기로 관객들이 영화의 분위기에 좀 더 몰입하게 만들어주는 인상 깊은 장면이었어.
1부의 대략적인 사건들이 종료되고, 2부로 향하며 그 몰입감은 한층 더 강해져. 바로 "첩장된 관"의 등장이지. 관이 첩장되어 있다는 반전 요소에 이어, 그 관이 "세워진" 채로 묻혀있었고, 심지어 "말도 안되게 큰" 관이다? 심지어 그런 관이 윤형 철조망으로 묶여있는 광경은 관객들로 하여금 두려움에 휩싸이게 할만큼 압도적이었어.
'저게 도대체 뭘까? 너무 두렵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 관객들은 2부로 돌입하게 돼.
참고로 난 이 관 처음에 봤을 때 사람 여럿 같이 넣어놓은 건가 싶었음. 그런데 그 정체는..
갑자기 장르가 바뀌는 2부?
밤이 되고, 여러가지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게 돼. 봉길은 보국사 아재가 끔찍한 몰골로 자신의 몸 위에서 뛰는 가위에 눌리고, 축사에서 형언할 수 없이 잔인한 광경을 목격하지.
화림도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관을 안치한 창고에 가는데, 관이 개박살나있고, 창고 천장에는 구멍이 뚫려있는 현장을 맞닥뜨리지.
나도 이 장면에서 영화가 심상치 않게 흘러가고 있다는 낌새를 느끼게 되는데, 해당 장면이 영화 "더 씽（2011년작）"에서 냉동 괴물이 갇혀있던 빙하를 박살내고 천장을 부수며 도망가는 장면을 오마주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야. 여러 리뷰를 찾아봤는데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더라구..ㅋㅋㅋㅋㅋ
어쨌든 그 장면에 뒤이어 화림 앞에 나타난 관 속의 존재는 바로...
"빅 뻐킹 오니짱"이었던거임...ㄷㄷ;;
이 실체화된 무시무시한 존재의 등장에 나를 비롯한 관객들은 오줌을 지리긴 커녕 1부에서 풀꽉으로 충전되어있던 몰입도가 반쯤 날아가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거야. 아...호러영화에서 "실체화"라는 장치를 함부로 사용해버리다니...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 없는 부분이었어.
잠시 딴 얘기를 하자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포 영화는 "유전"이야. 이 영화를 정말 무섭게 만들었던 핵심 포인트는 "영화의 결말 지점까지 치밀하게 끌고가는 긴장감"과 그걸 마지막의 마지막에서야 연쇄폭발하듯이 터뜨렸다는 점이야. 이 영화를 보고 호러 영화를 평가할 때의 기준이 생기게 됐어. "긴장감을 얼마나 잘 길게 끌고 가는가".
이런 부분에서 볼 때 파묘의 해당 파트는 정말정말 아쉬웠어. 아니 1부의 그 개쩌는 노력으로 쌓아올린 양질의 긴장감을 이런 식으로 놔버리다니! 영화를 본 모두가 공감했겠지만 이 긴장감을 끝까지 끌고 갔었다면 아마 명작이 됐을 거야. 난 확신함.
어쨌건 뭐 "진짜 악"이 나타났으니 주인공 일행이 또 해결해야겠지? 진짜 존나 쎈 일본산 도깨비라 리얼로 좆될 뻔했지만 "풍수지리식 카운터"라는 신박한 발상으로 결국 오니짱을 퇴치하는 데에 성공하게 돼. 오니의 등장만으로도 참신했는데 저지른 김에 끝까지 저질러야겠다는 생각이었는지, 이 퇴치 방식도 참으로 기발했어. 나무의 호흡 1형 "피에 젖은 나무"라...
그렇게 최민식류 히노카미 카구라로 사건이 종료돼. 이후 여러 후유증이 조금씩 남은 주인공 일행들의 모습과, 풍수지리사와 그 딸의 아이러니한 국제결혼식을 보여주며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나게 돼.
영화의 여러 디테일과 이야기들
아쉬운 부분이 남는 영화였지만 어쨌든 장재현 감독 특유의 디테일을 다시 한번 엿볼 수 있는 영화라 나쁘진 않았어. 후식 느낌으로 영화의 디테일적인 부분과 관련된 비하인드 썰들을 들려줄게.
1. 의외의 배우들
영화를 본 사람들은 눈치챘겠지만, 허무하게 가버리신 보국사 보살 아재 배역을 맡은 배우님은 영화 추격자에서 "쒝쓰를...해본적이 읎어요?"라는 명대사를 남긴 분석관 배역으로 나왔던 분이야.
첩장된 관 속에 있던 오니의 목소리를 연기한 성우는 나루토에서 야마토 대장, 명탐정 코난에서 유명한 탐정의 목소리를 맡은 성우와 동일 인물이야.
섹스를 해본 적이 없냐고 묻던 사람이 섹스를 하면 안되는 사람이 되고,
목둔술사가 젖은 나무에 카운터 당하는 세계관...
2. 등장인물들의 이름
주요 등장인물로 나오는 배역들의 모든 인물은 모두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이야.
유해진 배우님이 맡은 배역인 "고영근"의 경우 찾아보니까 독립운동가라고 하긴 조금 어려운 행적이더라구.
캐릭터와 어느정도 매칭이 되지?
이런 점이나 스토리의 전체적인 주제로 볼 때 사실상 대놓고 반일 영화라고 해도 딱히 할말은 없겠는걸. 상업영화라 관객을 끌어모을 포인트로 이걸 삼았나 싶기도 하고. 그래도 똑같이 반일 갬성을 내세웠던 비상선언이랑 비교하자면 파묘한테 미안할 정도긴 해ㅎㅎ
3. 배우 이도현이 맡은 배역 "윤봉길"은 실존 인물을 모델로 삼은 캐릭터
온몸에 보호용 문신을 새긴 매력적인 캐릭터 "윤봉길"은 장재현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실존 인물을 그대로 따온 캐릭터래. 그 사람도 고등학교 때 야구부를 하다가 신내림을 받고, 온몸에 보호용 문신을 하고 다닌다고.
4. 영화의 첫 장면과 포스터
다들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영화의 첫 장면은 비행기 창문과 그 너머로 보이는 하늘의 모습을 비추며 시작돼.
파묘의 포스터에서도 이와 비슷한 이미지가 존재하는데, 바로 땅에 묻힐 때의 죽은 자의 시점이야.
죽은 자 - 산 자
구덩이 - 비행기 창문
하늘 - 하늘
로 연결되는 시각적 모티프를 형성하는 장면인데,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고군분투할 주인공 일행들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감독의 디테일이 묻어나는 연출이라고 생각했어.
5. 첫번째 관 파묘 후 튀어나온 인면뱀은 뭐임?
일본의 "누레온나"라는 요괴인걸로 추정됨.
아마 뒤이어 나올 오니에 대한 복선으로 쓴 듯?
6. 한국 귀신이랑 달리 일본 귀신은 왜케 아묻따 자세로 좆같이 구는 건가요?
본 작품에서도 언급되었고（엮이면 무조건 다 죽인다）, 다른 여러 매체에서도 일본 귀신, 요괴들은 하나같이 좆같이 군다.
이건 문화 차이에서 비롯된 거라고 볼 수 있어. 우리나라 사람들은 나름 합리적인 이유가 존재한다면 스탠스를 바꿀 수 있는 편인데 비해, 일본은 장인 정신, 할복 등으로 대표되는 엄청난 집념이 문화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아무래도 섬나라라 자신들의 영역을 지켜야 한다는 정서도 존재해.
여기에다 민속학적인 개념을 추가하자면, 본디 "령"이란 것이 어떠한 상념의 집결체라고 볼 수 있음. 쉽게 말해 인간이 살아있을 때는 여러 감정이 존재하지만, 죽으면 한 가지 감정만 남게 되는 거지.
그래서 한국의 경우 흔히들 말하는 "한의 정서"가 깊게 자리하기 때문에 귀신들이 보통 "한, 억울함"의 형태로 존재하게 돼. 그래서 억울한 거 풀어주면 더 안 괴롭히고 성불하는 데 반해 일본 귀신들의 경우 "악의"라는 좆같은 상념으로 존재하기에 그냥 엮이면 죄다 본인만의 메커니즘으로 죽여버리는 것. 심지어 어떤 사연이 있는 게 아니라 그냥 거기에 있으니까 나온다는 케이스도 있지.
마무리
이래저래 아쉬움이 있었던 영화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민속학을 소재로 이런 고퀄리티의 영화를 찍었다는 거 자체로도 나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무엇보다 흔치않은 오컬트 장르만 집요하게 파는 감독이니 앞으로의 행보가 더 기대되고. 그래도 각본은 좀 더 손을 봤으면 하는 마음은 왜일까...ㅎㅎ
장재현 감독의 작품들 중 어떤 게 더 낫냐를 비교하자면 개인적으로 사바하 > 검은 사제들 > 파묘 라고 할 수 있겠다.
오니 실체화만 아니었다면 진짜 개명작 될 수 있었는데...ㅠㅠ
아무튼 앞으로 더 좋은 작품들 많이 만들어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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