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2년~3년쯤 됐을 시기임
대한민국 평균 남편과 마찬가지로 곧 있을 주말엔 침대와
한 몸이 되리라 다짐하며 피곤한 몸을 이끌고 퇴근을 마침

그러나 한참 봄이 만연한 시기에 와이프가 그걸 두고볼리 없었고 아니나 다를까 이번 주말엔 벚꽃을 보러가자며 졸라대는 와이프를 마주앉혀 휴일이란 휴식을 위한 요일이라는 말을 내뱉었으나 생각해보니 와이프와 단 둘이 집안에만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의무방어시간이 비례한다는걸 깨닫곤
급히

'나의 휴식은 당신이 행복해 하는 시간이 제일 편한 휴식이야'

라는 말을 내뱉고 말았음
경솔한 새끼....

다음날 그 먼 거리를 차타고 이동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 기차를 타기위해 대전역으로 행했는데 그 곳에서부터 우리 여행의 심연을 들여다본듯 한 장면들이 펼쳐짐

한 구석에는 엄청난 효녀이신듯한 분이 자꾸 아버님을 외치셨으나 그 아버님은 매우 엄하신듯 틈만나면 지옥불을 보내신다 하셨고 한쪽에는 날이 풀린 따듯한 햇살을 맞으며 과한 광합성을 통해 건강을 챙기시는 분들이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담배와 잔돈들을 요구하고 있었음

가장 놀라웠던건 그 대낮에도 어디서 무얼하는지 와이프가 잠시 화장실을 가서 자리를 비운틈에 흡연실에 있던 나에게 접근한 할머니 한분이셨다.

"싸게해줄게 쉬었다가 총각"

뭘...? 뭘 싸게해준다는 것인가?
동음이의어를 만든 세종대왕님에 대한 존경이 물씬 풍겨지는 말이였다.

우라질, 여러모로 싼게 싫어서 여기까지 왔더니 무슨 개소리를 하느냐는듯 할머니를 노려보았으나 낄낄거리며 유유히 사라지는 모습은 과연 프로였다.

하지만 프로는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하지.

나는 당장 대전역 앞에있는 의경인지 순경인지 모를사람을 찾아가 다급히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나는 임자가있는데 할머니 한 분이 다가와 나에게 무언가 싸고 싼걸 요구했다 그 분은 아직도 저기 계시다'

라고 하였으나 나태한 공권력은 나의 청을 무참히 무시했다.
아뿔싸. 아마 이 공무원도 사주가 되어있음이 분명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나의 간절한 호소를 저리도 차가운 눈빛으로 무시할수 없었을테니까.
마음같아선 청와대앞에서 신문고라도 치고싶었다.
내 학창시절 업적인 동내북 칭호를 걸고서라도 꼭 이루고 말것이리라 다짐한 후 기차에 몸을 실었다.

경주로 향하는 기차에선 아무일 없이 평온했다.
하지만 이미 도착한 시간은 3시를 넘어가 이동시간을 감안해도 꽤 늦은시간이였지만 와이프는 괜찮다며 미소를 지었다.

괜찮겠지. 자기때문에 늦었으니까
도대체 왜 여자들은 자기가 먼저가자고 해놓고 준비를 늦게하는걸까...

그렇게 벚꽃이 만개한곳으로 이동하자마자 4륜 전동차를 대여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봄날씨치곤 꽤나 쌀쌀했지만 날은 맑았고 바람또한 강하게 불어주니 그곳엔 연을 날리는 사람들이 꽤 많이보였었다.

자신은 살면서 한번도 연놀이를 해본적이 없다는 와이프의 말에 노점상으로 가 옛날 문방구에서 팔던 싸구려 가오리연을 찾았다.

'쓸데없이 하늘에 삽질하는 가격으로 5천원이면 적당한거같아 여보 게다가 잘못하면 전신주에 걸려 사고나 치는 연줄도 같이주더라고'

라며, 즐거운 거래를 마친 나를보며 닥치고 연이나 하늘에 날려보라며 뜀박질을 강요한 와이프는 연이 어느정도 궤도에 오르자 휘리릭 돌아가는 연줄몸통을 빼앗아 하늘높이 날아가는 연을보며즐거워했다.

휘리릭 휘리릭...휘릭...

멀리도 날아간다 저 높은 하늘위로 작은 가오리 연은 실을 풀며 스스로의 존재감을 서서히 지워가며 높이 높이 올라갔다..

와이프의 손에 쥔 연줄몸통은 더이상 돌고있지 않은데말이다
이미 몸통에는 실 끄트머리조차 남지 않아있었다.

5천원짜리 연 에는 실의 매듭은 포함되지않은 가격이였나보다.

"오빠!! 잡아!!"

와이프의 외침에 정신차린 나는, 마치 백화점에서 엄마의 손을 놓친아이처럼 황급히 뛰어가며 달리기 시작했다.

누군가 나에게 기회의 여신이 어떤 모습이냐고 묻는다면
그 날 경주에서 본 가오리연의 뒷꽁무니를 말하리라.

10분? 15분? 상공에선 바람이 꽤나 거친지
떨어질듯 말듯 자유를 얻은 연이 나를 희롱하고있었다.

멀리 날아가지도 않고 그렇다고 땅에 떨어지지도 않고있던 연이 어느 초등학생의 연과 부딪혀 드디어 땅에 떨어졌다.

큰 일을 해낸 아이에게 다가가

"넌 오늘 정말 큰 일을 해낸거란다 니 덕에 사고를 막을수 있었어"

라며 칭찬을 아끼지않았고 상으로 우리의 가오리연을 줌으로써 자연스러운 짬처리를 잊지않았다.

이미 지칠대로 지친우린 다음 코스로 가기위해 전동차를
탔으나 이번엔 자기가 운전해보겠다는 와이프에게 순순히 앞자리를 내어주곤 뒤에앉았다.

그러자 와이프의 급출발을 시작으로 마치 드라마 같은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화창한 날씨, 흩날리는 벚꽃잎, 그에따라 자연스레 같이 흐드러지는 머리카락, 맞바람에 휘날리는 옷, 그리고 앞을 똑바로 보기위해 희번뜩 뜬 눈

추노.

그래 그녀는 어느새 도망간 노비를 잡으러가는 한명의 추노꾼과 같았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당당한 표정으로 나를 뒤돌아봤을땐
역시 이여자를 사랑하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중간중간 멈춰서 사진도찍고 근처에 카페에 들러 휴식을취하자 금방 해가 저물었다.

해가 저문 경주는 마치 화장 전 후의 누군가의 와이프처럼 돌변해 있었다.
안그래도 쌀쌀하던 날씨는 더욱 추워졌고 바람역시 매서운 칼바람으로 바뀌었다.

그 위용앞에 카페 앞에서 멍때리고 있으니 무언가가 나의 뒷통수를 딱! 소리나게 날아와 부딪혔다.

학창시절 동내북 마스터칭호인 나는 빠른 눈치를 통해 상황을 판단했다.

'지우개 뭉친건가? 아니야, 이 경쾌한 소리와 따가움은 종이구긴걸 고무줄로 쏘아낸것이다. 누구지? 혹시 아까 카페에서 눈을 이쁘게 뜨지않아 누군가의 심기를 불편하게했나? 아니면 혹시 내가 누군가의 여자를 몰래 훔쳐봤다고 오해하는건가? 그렇다면 오해가 아니라 할 말 없긴하지만...'

그렇게 깊은 고민을 하고있을때 와이프가 놀란눈으로 나를 보며 외쳤다.

"오빠! 우박내려!!"

"우박?"

우박. 정말로 우박이였다.
그때를 회상하는 지금도 믿기어려운 일이였지만 때론 자연은 사람이 믿지못할 광경을 보여준다.
왜 하필 그것이 그날 그시간 그때여야만 했는지 한낱 미물인 인간은 가슴깊이 한탄할 수 밖에 없을뿐이였다.

"뛰어! 대가리빵꾸나!"

내말을 들은 와이프는 지붕없는 전동차를 향해 뛰기시작했고 자연스레 앞자리를 차지했다.

"여보 내가..!"

라는 말을 외치기도전에 이미 출발을 시작한 와이프를 바라보며 정말 강한 여자라고 생각했다.

나는 아직 안탔는데.....

뒤늦게 그것을 눈치챈 와이프가 멀리서 뒤돌아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마치 '니가 왜 거기있어..?'
라는 모습에 순간 버림받은 강아지가 된것 같아 눈물이 핑 돌았지만 오해라는것을 깨닫고는 전력으로 뛰어가 뒷자석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는 빠르게 처음 전동차를 빌렸던 대여점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해가 진 풍경은 너무도 살벌했다.
한정된 시야, 흩날리던 벚꽃대신 화살처럼 쏟아지는 우박, 아까보다 훨씬더 거칠어진 칼바람과 그에 호응하듯 흩날리는 머리카락들.

아까의 추노꾼은 어디가고 어느새 와이프는 한 명의 대장군이 되어있다.
이상태로 창한자루만 쥐어주면 장판교를 누비는 장비를 가로막고 모가지를 따낸뒤

'너희 형제는 곧 보내주마 한날 한시에 가야하지 않겠는냐 껄껄'
이라며 호쾌하게 웃을수 있을것만 같았다.

"사랑해"

그런 그녀의 모습을보며 이 여자를 평생 사랑하겠노라는 맹새를 다시한번 되새겼다.

내 자그만한 염원을 듣지 못했는지 그녀는 희번뜩인 눈과 진지한 얼굴로 운전에 여념이 없었다.

하. 여자들은 정말 남자를 한 끗 차이로 모른다는게 실감이 났다.

가령 단골가게에 혼밥하러 간 남자에게 말을 건낸다던가
시킨일을 끝마친 남편에게 일을 추가로 던져줘서 다음엔 시킨일은 커녕 시키지 않은일만 해서 사고쳐놓는다는걸 여자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지금같이 이상적인 상황에선 이상행동을 보여줬어야 했다.

예를들어 '남자는 겁탈하고 여자와 아이는 모두 죽여라!!' 라고 외쳤다면 그날 나는 스스로 의무방어가 아닌 공격을하는 우를 범했을지도 모를 일이였다.

하지만 와이프는 한 끗 차이로 그걸 알아채지 못했고 그 선택으로 인해 내 손은 와이프의 허리가 아닌 머리채로 향해 거칠게 휘어잡았다.

"누나 달려!!"

나의 외침은 그 급박한 상황에서도 뚜렷하게 전달되었고 아무리 바퀴가 달렸어도 시속 20키로를 넘지못하는 전동차에 주변인들의 시선은 따라왔다.

이윽고 늦은 시간까지 도착하지 않은 우리를 걱정했는지
대여점의 사장님이 우리를 마중 나와계셨고
와이프의 양손에 목이잡혀 숨이 넘어갈것같던 나를보며
'관 공 어찌하여 목만 졸리고계시오?'
라는 눈빛으로 우리를 쳐다봤다.

사장님덕에 위기를 넘긴 나는 와이프의 손을 뿌리치고
덕분에 잘 놀았다고 초과된 값을 치루려 했지만
유독 귀가 컸던 사장님께선 한사코 거절하시는 인덕을 보이시며 손님들이 즐거우셨다면 됐다며 전동차를 이끌고 빠르게 사라지셨다.

어느덧 우박에서 진눈깨비가 된 하늘을 보며 우린 빠르게 숙소를 잡기 시작했고 마침 근처에 모텔이 있기에 들어가자마자 방이 딱 하나 남았다는 모텔사장의 안내를 받을수 있었다.

'어휴 운이 좋았네요'
라며 방을 달라는 나의 말에 모텔 사장은 한순간 침묵을 지키고는 우리를 쳐다봤다.

"특실밖에 안남았는데..."

"네 주세요"

"여기가 관광지라..."

"네 꽃이 이쁘더라고요"

무엇이 문제였을까 서두를 길게끈 사장 입에선 믿지못할 말이 새어나왔다

"12만원만 줘요"

"안녕히계세요"

12만원, 나와 와이프는 분명 똑똑히 들었다.
그리고 나는 귀를 의심하는 대신 내 판단을 믿고 빠르게 뒤돌아나가려 했다.

"어딜가도 이시간엔 방없어요 다들 예약하고 놀러오지"

꽤 그럴듯하다 하지만 여기서 택시를타고 시내를 나가서 방을잡아도 12만원보단 적게나올 것이다.

"그리고 여자친구도 추울텐디..."

제법이다. 여자앞에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은 남자는 없다.
하지만 사장은 몰랐을것이다. 우린 연인이아닌 내돈이 니돈이고 니돈이 우리돈인 부부라는것. 그리고 나는 원래 와이프보다 나약하다는것.

"아뇨 괜찮습..."

"아 그럼 만원빼줄테니까 그냥 들어와요"

한순간에 만원이 빠졌다. 혹시 모텔이름이 （주）모텔이던가?
1분도 안되서 만원이빠졌다. 지금들어가면 고점에 물린 개미신세라는걸 뼈저리게 깨닫게 될것이다.

그럼에도 미련없이 나가려는 우리를 본 사장은 갑자기 태도를 바꾸며 가실거면 빨리 나가라며 재촉하기 시작했다.

'왜지?'

한 순간 바뀐 사장의 태도에 의아함을 느끼며 뒤돌아보자 아니나 다를까 벌벌떨며 멀리서 걸어오는 젊은커플이 보였다.

와이프와 나는 눈을 마주치고는 미련없이 밖으로 나가 그 커플이 있는방향으로 걸어갔다.

10미터...
5미터...

"12만이라..."

혼잣말같은 내 목소리를 추위에 떨고있는 젊은여자는 듣지 못했지만 젊은 청년은 분명히 들었다.

그 증거로 자신을 지나쳐가는 나에게서 눈을 때질 못하고 있었으니까.

20초반으로 밖에 안보이는 남자와 여자,
갓 군전역을 했거나 아직 대학생으로 밖에 보이지않는 청년의 지갑사정이 두꺼울리 없었다.
더군다나 한창 풋풋할때의 연애, 그런 상황에서 기가 죽기싫은것은 수컷의 본능일것이다.

그런 청년의 눈은 분명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부디, 빈방이 없어서 우리가 나온거라고.
지금 저 앞에있는곳으로 가봐야 헛고생 일것이라고.
나의 입이 열리기를 간절히 기대하고 있었다.

'오빠...'

옆에서 나를 부르듯이 쳐다보는 와이프의 눈빛이 느껴진다.
우리도 저런때가 있지 않았느냐고, 허례허식 없는 연애도 좋지만 저런 속사정을 감춘 사랑도 충분히 아름답지 않냐며.
와이프는 그런 나를 다독였고 이에 나는 화답하듯 입을 조용히 열어 똑똑히 그 청년이 들릴수 있도록 혀를 굴렸다.

"굿 럭"

강해져라 청년이여! 자고로 남자는 담금질 할수록 강해지는법이다. 견뎌라. 견뎌서 그날밤 승리의 포상을 받아라!

나의 목소리를 들은 청년의 표정은 어떠했을까
눈을 질끈 감았나? 아니면 입을 굳게 다물었을까?
이미 지나쳐버린 나는 알수없었다.
그저 와이프의 눈총을받으며 희미한 미소를 지을수 밖에 없을뿐.

결국우린 50미터정도 떨어진 모텔로들어가 6만원에 1박을 할수 있었고 피곤했던 와이프는 곯아떨어져 무사히
의무방어를 회피할수 있었다.

3줄요약

1. 경주 놀러감

2. 우박내린 와중에 와이프를 다시한번 사랑함

3. 의무방어전 회피 성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