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행(시작에 앞서)

에필로그

사람의 인생은 기찻길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앞만 보고 전진하다가,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았을 때 보이는 기찻길은 삶의 굴곡을 닮았기 때문이다. 어떤 굴곡은 그저 지나올 수 있었지만 어떤 굴곡은 온 힘을 다해 견뎌야 지나칠 수 있었고, 돌이켜보면 피할 수 없었음에도 즐기지 못했던 그때들이다. 그토록 버거웠던 순간들을 나름의 ‘기억’으로 만들어 줄 수 있었던 것은 어떤 것일까

개인적으로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은 영원하고, 상대적이지 않으면서 상대적으로 절대적인 것이기에 어떻게 보면 누구에게나 주어진 신의 위로다. 그래서 그런지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해 주겠지’, ‘지나보면 다 끝나겠지’라고 막연하게 조언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렇게 애매한 사고 끝엔 얼마나 걸릴지도, 언제 이 고통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사실 시간이 해결해준다고 말했지만 직접적으로 해결해주는 게 아닐 수도 있다. “나중엔 다 괜찮아질거야” 라고 말하지만 시간의 신이 내려와 “지금부터 위로의 3시간을 줄 테니 맘껏 쓰거라”하고 건네주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어떤 형체가 되어 나한테 떡볶이라도 사주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객관적으로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잠시동안이라도 고통을 잊게 해주는 순간들이 모여 그때를 지나오게 해주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위로의 도구로 ‘시간’을 말하는 것 아닐까 싶다.

지금부터는 조금 특별한 은행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각자의 고유 기업이름을 앞세운 타 은행과는 달리 단순하게 ‘시간은행’이라는 이름의 이 은행은 현실 위로가 필요한 인간들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다. 이 곳의 고객은 현실의 사연을 품은 인간의 영혼들이며, 인간들의 행복했던 추억과 현실을 과거로 만들어줄 순간들을 거래해주는 아주 특이한 공간이다.
특이한만큼 이곳은 ‘세상에 힘든 상황이 많은 만큼 이겨낼 방법도 존재한다.’라는 독특한 신념으로 운영된다. 그리고 그 신념 아래, ‘사람’자체가 바뀌는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단번에 동전 뒤집듯 현실을 바꾸기보단 자연스러운 상황을 연출하여 주저앉던 순간들을 거친 기찻길로 만들어주려고 노력한다.
이 책의 주인공인 갓 신입 은행원은 경험과 경력이 부족하지만 특유의 공감능력과 재치로 가장 최상의 상황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인간 입장에서 보면 위로의 ‘신’으로 보일 수 있지만 흥미롭게도 진짜 인간이었던 존재이기에 어느 정도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하며, 은행 정기물을 통해 시시각각 바뀌는 인간 세상을 좋아하는 은행원이다.
평범한 은행은 아니기에 더욱 평범하게 도와주려는 이 곳에선 오늘도 우울한 고객들을 상대하기 바쁘지만 언젠가 은행을 방문할 그대들을 기다리고 있다. 가지각색의 이유로 때론 치이고 때론 분노하여 현세에서 살짝 벗어나 나를 알아줄 시간이 필요하다면, 다음 장을 열어보시라. 어느새 나도 모르게 새삼 공감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할 터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