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려도 곧 희미해질 걸 알아도
마음 위에 어떻게든 그려보려고 애써

연필로 하도 눌러서 찢겨진 종이 틈 사이로
터져나오는게 미움이라는게 참 맘이 아파

"종이는 많으니까 뭐
덧대고 다시 그리면 되지" 하고 또 그려.

정신차리고 보니 펜을 쥔 손엔 피가
종이 위엔 형태를 못알아보는 누군가가

이 걸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어
suffering 한 단어로 축약하게 돼

"앞으로 터져나올 감정들을 꾸역꾸역 삼키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홀로 되대이는"
을 표현하는 단어가 있었으면 좋겠어

언어가 사고를 결정한다고,
이 단어가 있었다면 내가 구질구질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


엄마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시던 날
냉장고에 넣어둔 반찬을

딸이 10년이 지났는데도
못꺼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시간에 갇혀 인간이 마땅히 가지고 있는
망각이라는 기능이 작동을 못하는 거지.

망각을 못하는 사람도 어떻게 보면
신에 가까워진게 아닐까? 여튼

나는 신은 아니기에
널 그린 그림들은 망각 속으로 흘려보내야 할 것 같아

내가 이기적인 거지
위 말들은 결국 궤변일 뿐이고 결론은
"난 장거리 연애 못하니까 니가 알아서 판단해"니까

구질구질하게 길게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