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생각나서 적어봄

4학년 졸업반때, 다들 공기업이다 대기업이다 원서 돌리고, 면접 준비를 하고 있을때, 내친구 대민이는 남달랐다.
일단 이놈새끼는 4년 내내 학교를 출석만 하고 공부를 1도 안하고, 졸업만 간신히 할 수준의 선동렬급은 아니고 최동원급 방어율의 학점을 가지고 있었고,
그렇다고 공대 특성상 어느 한 분야를 잘 판거도 아니라서 이새끼는 그냥 치킨집이 답이다라는게 동기들과 교수님들의 공통된 의견이였다.

그런 상태였다면, 뭔가 나름대로 면접이나 포트폴리오 준비를 빡시게 해서 어떻게 비벼보거나, 아니면 빵구난 학점을 매우거나, 대학원을 생각해야 정상인데
이놈은 뭐가 그리 자신이 있는지 굉장히 당당하고, 자신있는 태도로 롤을 하고 있었다.
처음엔 걱정되기도 해서 잔소리도 해 보고, 같이 뭐좀 하자고 설득도 해 보았지만 항상 대민이는 '다 생각이 있다' 며 펀굴섹좌 급 미소를 날리며 피시방 너구리가 되어갔다.

그러다 4학년이 끝나갈때즈음, 아마 이친구는 이제 닭집을 차리는구나 싶어 아무도 그 친구에게 취업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지 않을때 즈음이였다.
한동안 피시방에서 안보이던 대민이는 어느날 갑자기 전화로 나한테 오늘 면접봤는데 붙을거같으니 밥산다면서 불렀다,
약속장소로 가 보니, 파크랜드에서 새로 산 듯한 정장을 빼 입고 여유로운 미소를 날리던 대민이가 앉아있었고, 나는 첫마디로

'야 참치 원양어선 면접도 요즘은 정장입고 보냐? 아 러시아 마피아가 운영하는 대게잡이 인력관리팀 면접이였니? 대단하긴 하다 너 똥양인이라 러시아 형들이 싫어할텐데'

'지랄하지마 임마 ㅋㅋ 그런거 아냐. 아주 유우우우망한 스타트업이란다'

하면서 받아온 명함을 건냈다.

받아본 명함에는 그럴사한 로고와, CTO 김xx라는 이름이 적혀있었고, 나름의 슬로건도 적혀있었지만 나는 믿을수가 없었다.

"어머 IoT 스타트업이구나. 혹시 옥장판을 IoT 컨트롤 하는 솔루션을 개발하니? 아니면 게르마늄 팔찌가 원적외선을 양자역학적으로 IoT 컨트롤해 방출하는걸 만드는건가?"

"아냐 멀쩡한 회사라니깐. 특허도 받았고, 사장이랑 CTO둘다 카이스트 출신이야"

" 야 그런데서 널 왜 뽑아?"

라고 의아해 하자, 일단 고기부터 먹자는 말과 함께 한동안 말없이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술이 몇잔 들어가고, 잡스러운 친구이야기 몇마디가 지난 후 대민이는 웃으며 취업 성공의 비결을 말했다.

자기도 자기 학점과 전공 실력으로 어디 좋은데 들어가긴 글러먹은걸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자기는 작은 회사에 들어가서 열심히 일을 하기는 싫었고, 대기업이나 중견기업급 나름 규모가 있는곳 중에서도 수도권 내에 취직을 하고싶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생각을 해 낸게, 왠지 대기업한테 팔릴거같은 스타트업에 취업을 하면 되겠다 란 아주 디테일한 나름의 꼼수를 찾아냈고, 이후 인터넷에서 대기업이랑 사업 영역이 비슷해보이는 스타트업을 찾아서 지원서를 미친듯이 넣었다고 했다.

그러나 제대로된 스타트업이라면 이런 븅신같은 친구는 원서에서부터 걸러졌고, 이에 고심하다 나온 방법이 일단 괜찮은 스타트업 중에서 규모가 소규모인곳을 찾아, 채용공고가 올라오기 전에 미리 다짜고짜 찾아가서 그랜절 박으면서 일을 시켜 달라고 해보는거였다고 했다. 어차피 괜찮은 성장하는 회사면 사람을 뽑을 일이 있을 것이고, 그 전에 먼저 가서 그랜절을 박아두면 그 때 채용공고를 올리기 전에 나를 한번 생각은 해 볼 거다! 라는 기적의 논리를 통해서였다.

그렇게 2학기 내내 수십군데의 스타트업을 찾아다니면서 그랜절을 박고 다녔고, 결국 한 업체가 얻어걸려서 이번에 최종 면접 비슷하게 보고 왔고, 아마 취업계 처리되는대로 출근할거 같다는 말을 하더라.

굼뱅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넌 역시 그랜절 박는 재주는 있었구나라며 나는 감탄하였고, 대민이는 나중에 자리 잡으면 너도 추천해준다며 당당한 미소를 내비쳤다. 그 후 대민이는 그렇게 그 스타트업에 취업을 해 학교를 떠났고, 그 친구의 카톡 커버사진은 대표이사와 악수하는 사진, 프로필은 '프로잭트 매니저 어시스턴트' 라는 영문 직함이 있는 명함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난 후, 대민이는 이 회사는 답이 없고, 사장과 기술이사 둘다 병신이라며 회사를 때려치고, 지방의 아버지 정육점을 물려받으러 내려갔다.
그리고 대민이 퇴사 5개월 후, 그 스타트업은 카카오에 인수되었다.